“십 년을 기다렸는데 천 원을 이야기하러 왔어요?”
최은정이 계산대 뒤에서 웃었다. 웃음에는 반가움보다 피로가 더 많이 섞여 있었다. 그녀가 운영하는 동네 수선집 창문에는 '수리 기간 삼 일'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었고, 안쪽 작업대에는 낡은 교복 재킷이 걸려 있었다.
민석과 서윤이 그곳을 찾은 것은 류지안의 대조 노트에서 정식으로 열람을 허락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은정은 2016년 연구시설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며 야간 대조표를 정리했다. 미확인 수당은 총 481,000원. 그중 480,000원은 이후 지급 여부를 확인 중이었고, 나머지 천 원은 정산 수수료의 차액으로 남아 있었다.
“천 원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다면 제가 커피라도 사 드려야 할 텐데.” 은정이 말했다.
서윤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천 원만 확인하려고 온 건 아니에요. 그때 어떤 설명을 들으셨는지 여쭤보려는 겁니다. 답하기 어려운 부분은 넘어가셔도 됩니다.”
은정은 재봉틀에서 손을 뗐다.
“그 사람들은 자꾸 내일 들어온다고 했어요. 내일, 다음 주, 다음 정산일. 나중에는 날짜 말하는 사람이 무서워졌죠.”
“정산 서비스 이름도 들으셨습니까?”
“그런 걸 알았겠어요? 전 일하고 돈 받으면 됐어요. 다만 한 번은 남자가 와서 서명을 해 달랬어요. 지연된 돈을 빨리 돌려받게 해 주겠다고.”
민석의 등이 굳었다.
“서명하셨나요?”
“안 했어요. 돈을 받을지 말지를 왜 다른 사람이 결정해요? 제가 받기로 한 돈인데.”
은정은 서랍에서 갈색 봉투를 꺼냈다. 구겨진 안내문에는 고객용 금융 상품 번호가 찍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문서를 보여 주되 사진 촬영은 허락하지 않았다. 민석은 그 자리에서 내용을 메모만 했다.
“이거 가져가도 됩니까?”
“안 됩니다. 십 년 버린 적 없는 건데 왜요.”
민석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십 년 동안 품에 안고 있던 종이를 처음 찾아온 사람에게 넘기라는 건 무리였다.
안내문 마지막 줄에는 '연락 거부 시 표준 처리'라는 문구가 있었다. 은정은 그 부분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 거부해도 처리가 된다는 뜻입니까?” 민석이 물었다.
서윤이 그의 말을 잘랐다.
“우리가 여기서 결론 내릴 수는 없어요. 당시 실제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은정은 두 사람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저는 그날 서명 안 했다는 걸 기억해요. 그런데 어느 날 우편물이 왔어요. '처리 동의가 완료됐습니다'라고.”
“그 우편물도 있으세요?”
“네. 그걸 버렸으면 저도 제가 동의했다고 믿었겠죠.”
서윤은 더 묻기 전에 은정의 동의를 확인했다. 봉투를 받은 날짜는 2016년 11월 1일. 주소는 옛 집 주소였고, 우체국 소인이 일부 남아 있었다. 문구가 적힌 편지와 원장에 올라온 거래번호가 연결되는지 검토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가장 아래 작게 찍힌 거래 유형이 눈에 들어왔다.
'선지급 수취권 전환 예정.'
천 원의 차액을 해결해 주겠다던 안내가 어느새 그녀의 지급 권리를 다른 형태로 바꾸는 절차로 변해 있었다.
“저는 그때 아이가 아팠어요.” 은정이 말했다. “돈이 급했죠. 그래서 '내일'이라는 말을 믿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그 편지를 보면 제가 돈이 급했다는 사실을 누가 거래의 조건으로 사용한 것 같아요.”
서윤은 녹음기를 켜지 않았다. 은정이 말한 것 중 기사에 사용할 수 있는 문장을 별도로 확인했다.
은정은 방문을 마치기 전 두 사람을 다시 불렀다.
“잠깐만요. 하나 더 보여 줄 게 있어요.”
그녀는 재봉틀 옆 벽에 붙은 사진을 떼어 보여 주었다. 십 년 전 겨울, 어린 딸이 커다란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은 사진이었다. 배경에는 지금보다 작은 수선집 간판이 보였다.
“그해 가게를 접을 뻔했어요. 차라리 일을 더 하면 밀린 돈이 들어온다는 말을 믿었죠. 실제로는 일을 더 할수록 수선집 문을 못 열어서 매출이 줄었어요.”
은정은 사진을 다시 제자리에 붙였다.
“그러니까 저한텐 사십팔만 원보다 잃어버린 저녁이 더 아파요. 아이가 열이 나는데도 야간 대조표를 보던 날이 있었거든요.”
민석은 책상에 놓인 교복 소매를 내려다봤다. 한 땀 한 땀 꿰맨 실이 아주 곧았다.
“그때 지급된 걸로 처리된 돈을 실제로 받으셨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확인이 끝나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말이 낫네요.”
은정은 그에게 작은 종이를 건넸다. 거기에는 은정 자신이 확인하고 싶은 질문 세 가지가 적혀 있었다. 지급일, 지급 방법, 동의 기록의 출처. 그밖의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서윤은 수첩에 질문을 그대로 옮겼다.
“기사에 돈 때문에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는 부분을 써도 될까요?”
은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제 딸 이야기예요. 딸이 허락한 일이 아니니까요. 돈이 안 들어왔다는 사실만 쓰세요.”
서윤은 미소를 지으며 수첩의 해당 문장을 지웠다. 민석은 그 광경을 조용히 바라봤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알아내는 것과 그 이야기를 사용할 권리를 얻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서윤이 말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가게를 나왔을 때 민석은 말이 없었다. 길 건너에선 초등학생 둘이 문방구 앞에서 동전을 세고 있었다. 천 원짜리 한 장이 굴러갔다. 그중 한 아이가 동전을 주워 친구에게 돌려주었다.
“너무 거창한 미래를 보고 있었네요.” 민석이 말했다.
“거창한 미래도 있어요.” 서윤이 대답했다. “하지만 누가 기다렸는지는 숫자만으로는 안 보여요.”
오후 네 시, 민석은 준성과 함께 안내문의 상품 번호를 이미 확보한 공개 자료에 대조했다. 상품 번호는 2016년 당시 존재한 파일 형식과 맞았지만 그 자체로 계약이 유효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신탁권의 매입 검토 자료에 그 번호와 비슷한 묶음이 들어간 것은 확인됐다.
“그럼 은정 씨 천 원이 천억 원의 일부야?” 준성이 물었다.
“비슷한 구조로 묶여 있을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그 천 원이 진짜 거래됐다는 자료는 아직 없어.”
준성은 책상 위 영수증을 보았다. “천 원이 열 자리 숫자로 늘어났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치네.”
“천 원은 천 원이야. 그걸 놓치면 안 돼.”
밤이 되자 원장은 새로운 숫자를 보여 주었다.
[미래 정산 신청자: 최은정]
[예상 지급액: 1,000원]
[예상 지급 시각: 11월 13일 오전 9시]
[대리 수취 동의: 필요 없음]
민석은 곧바로 화면을 캡처해 은정의 이름을 가렸다. 요청하지 않은 사람의 돈을 대신 수령할 수 있다는 말은 터무니없었다. 누구도 그런 처리를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줄이 나타났다.
[입금 경로: 은정 명의 계좌 아님]
민석의 목에 식은땀이 흘렀다.
누군가는 돈을 돌려주면서도, 당사자에게 돌려주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제5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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