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오전.
“그 문장 하나만으로 취재원이 말을 바꿨다고 볼 수는 없어요.”
서윤은 동료 기자에게 사진을 보여 주며 말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결론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일수록 반대되는 단서에 과잉 반응하기 쉽다. 그녀는 그래서 더욱 천천히 움직였다.
임금 명세서 뒷면에는 이름이 가려져 있었다. 날짜는 2016년 10월. 작성자는 알 수 없었다. 종이가 실제 그 시대의 것인지, 글씨가 누구의 것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혜진은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십 년 전 네가 인터뷰한 사람을 기억하니?”
“한 명은 기억해요. 남기철 씨요. 손을 다쳐서 일을 쉬고 있었어요.”
그 이름은 류지안의 대조 노트에도 나온 적이 있었다. 남기철은 마흔여덟만 원의 야간수당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지급됐다는 회사 기록과 실제 입금 여부를 비교해야 했던 사람이었다.
서윤은 대리인에게 먼저 문의했다. 기철이 자신의 이름과 증언을 공개할 뜻이 있는지 물어 달라고 했다. 그가 원치 않으면 취재를 진행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답은 뜻밖에 빨리 왔다.
'한 번은 직접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단, 카메라 없이 만나겠습니다.'
오후 두 시. 기철은 버스터미널 근처 국숫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손가락의 움직임이 조금 불편해 보였다. 십 년 만에 만나는 사람이었지만 서윤은 단숨에 그를 알아봤다.
“기억하시겠어요?”
“밤늦게 전화하던 기자님이잖아요.”
기철은 먼저 웃었지만, 서윤은 쉽게 웃지 못했다.
“그때 기사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설명해 줬어요. 입금 기록이 없으면 확인 중이라고요.”
“서운하지 않으셨어요?”
“서운했죠.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건 저도 알았어요.”
서윤은 낯선 손글씨 사진을 보여 줬다. 기철은 보고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내 글씨 아닙니다.”
“이 종이를 본 적은 있으세요?”
“명세서는 비슷한 걸 받았어요. 하지만 뒷면에 이렇게 적힌 건 처음 봅니다.”
기철은 자신의 낡은 수첩을 꺼냈다. 당시 자신이 회사에 낸 이의 제기 신청서의 접수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는 이름과 계좌번호를 가린 사본을 보여 줬다.
수첩의 모서리는 여러 번 접혀 있었다. 번호 옆에는 버스 시간과 통화한 사람의 성이 함께 적혀 있었다.
“왜 그때 이걸 이렇게 자세히 적으셨어요?” 서윤이 물었다.
“처음엔 돈 받을 때 필요해서요. 나중엔 자꾸 내가 잘못 기억하는 것 같아서 적었죠.”
기철은 손바닥을 폈다. 오래전 다친 손가락이 끝까지 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상처를 들이밀며 동정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서류에 지급 완료라고 찍혀 있으니 사람들이 다 받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내가 직접 일한 날인데, 다른 사람의 종이 한 장 때문에 내 말이 틀린 게 되는 게 이상했어요.”
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제가 글을 못 낸 것이 선생님에게는 어떤 의미였습니까?”
“처음엔 아무도 안 믿어 주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기자님이 자료를 더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 적어도 내 말이 사라지진 않았구나 생각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윤은 눈가가 뜨거워졌다. 십 년 전 자신이 겪은 실패에만 매달려 있었지만, 취재원은 그 뒤로도 자기 삶을 살아냈다. 서윤의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과 그의 미지급 돈이 해결되는 것은 여전히 다른 문제였다.
“앞으로도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범위만 여쭙겠습니다.”
기철은 수첩을 덮었다.
“그게 서로 편하죠.”
“이 번호부터 확인해 보세요. 저는 돈을 못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 말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는 국수를 한 젓가락 먹었다.
“그런데 기자님.”
“네.”
“내가 돈을 못 받은 게 사실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도 전부 그랬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들 이야기가 다 달랐어요.”
서윤은 그 말을 그대로 적었다. 기사라면 가장 필요한 문장이었다. 하나의 사례가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말.
국숫집을 나온 뒤 서윤은 민석에게 연락했다. 기철이 자신의 의사로 제공한 범위에서만 자료를 함께 확인해도 된다는 동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분이 아직 기억하고 계셨군요.” 민석이 말했다.
“네. 그리고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하게 해 줬어요.”
그날 오후 새빛파트너스의 답변이 도착했다. 투자조합은 외부 검증 자료의 진위 논란을 인지했고 관련 채권 매입 검토를 일시 중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래 자체를 영구 취소한 것은 아니었다. 각 정산권의 소유와 지급 근거에 관한 추가 확인을 요청했다고 했다.
“하루는 벌었네요.” 준성이 말했다.
“하루뿐일 수도 있습니다.” 세린이 말했다. “일시 중지는 원본이 확정된다는 뜻이 아니니까요.”
민석은 그래도 조금 웃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원장이 미래를 잘못 예측했다고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자기 증언을 직접 전하고, 한 회사가 검토를 멈춘 사실을 각각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밤 열 시, 범우에게서 새 메시지가 왔다.
'급여 대행사가 칠십삼만 원 공제에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을 인정했어요. 아직 반환 입금은 안 됐습니다.'
민석은 그 메시지를 세린에게 전달해도 되는지 먼저 물었다. 범우는 허락했다.
곧이어 서윤의 원장에 표시된 예상 손실 액수가 변했다.
[-7,300,000,000원]
[재산정]
[-730,000원]
“바뀌었어요.” 서윤이 말했다.
민석은 숫자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같은 사건을 가리킨다고 볼 증거는 아직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줄었다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줄이 떠올랐다.
[잔여 손실 미반영 항목: 51건]
[예상 손실 이전 대상: 미지정]
준성이 낮게 욕을 했다.
“하나 막았더니 쉰하나가 남았다고?”
“한 사람의 이름으로 묶은 것이 문제였어요.” 서윤이 대답했다. “원장이 이번엔 다른 사람을 찾겠죠.”
그 말이 끝나자 민석의 화면에 문구가 나타났다.
[후보 조회: 강민석]
[검증 책임 이관 제안]
민석은 재빨리 화면을 캡처하는 대신 외부 카메라로 기록했다.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원장이 이름 하나를 고를 때마다 누군가가 뒤따라 자신의 결정을 잃는다는 것을.
그런데 화면 마지막 줄은 이전의 어느 알림과도 달랐다.
[이관 제안 발신 시각: 2036년 11월 7일]
미래의 날짜였다.
누군가 또 십 년 뒤의 강민석을 불러오고 있었다.
제4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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