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46화
PAYLUA ORIGINAL · 제46화

46화. 칠십삼억 원의 구매자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3,158자

오프라인 책장
11월 6일 오후, 익일금융 본사 앞에 검은 승합차 세 대가 섰다. 그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시위대도 기자도 아니었다. 회계사와 법무 담당자들로 구성된 투자 실사팀이었다. 칠십삼억 원의 정산권 묶음에 대해 실제 매입 의사를 밝힌 운용사 측 사람들이었다. 서윤은 건물 건너편 카페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곁에 앉은 동료 기자가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운용사 이름은 미래에셋 같은 큰 회사가 아니에요. 새빛파트너스라는 비상장 투자조합 운용 법인입니다. 등기상으로는 실제 존재해요.” “돈도 있대요?” “그건 모르죠. 등기가 있다고 칠십삼억이 계좌에 있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서윤은 웃음이 났다. 평소 자신이 하던 말을 다른 기자가 해 주고 있었다. 기자가 당사자가 되는 순간, 그만큼 기본적인 확인도 놓치기 쉬웠다. 새빛파트너스가 공개한 투자 검토 자료에는 ‘장기간 미확인 상태인 정산권의 할인 매입’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누군가 받지 못한 돈을 받을 권리로 만들어 거래한다는 뜻이었다. 법적 양도가 가능한 권리인지, 채무자가 누구인지, 애초에 지급 의무가 성립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러면 회사가 떼먹은 돈을 되찾아 주는 좋은 일일 수도 있지 않나요?” 동료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어요. 문제는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권리를 누구한테서 사느냐는 거죠.” 그날 같은 시각 민석은 오세린의 사무실에서 한 장의 계약서를 보고 있었다. 세린이 공식적으로 확보한 투자 설명서였다. 적힌 액면가는 73억 원, 투자자가 실제 지급하겠다고 검토한 금액은 그보다 낮았다. 칠십삼억 원 자체가 이미 송금된 돈은 아니었다. 계약서에는 이상한 조항이 있었다. 기태는 투자 설명서의 숫자를 다른 문서와 맞춰 보았다. 같은 정산권 번호가 한 페이지에서는 액면가로, 다른 페이지에서는 회수 예정액으로 쓰였다. 두 금액을 합산하면 원래 한 번만 계산해야 할 돈이 두 번 나타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천억까지 부풀릴 수 있다는 겁니까?” 준성이 물었다. “그럴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실제 천억 원 산식 전체를 보지 않으면 단정하지 못합니다.” 기태는 문서의 한쪽 끝에 빨간 줄을 그었다. 민석은 지금껏 천억 원을 단 하나의 숫자로 보았다. 그러나 종이 속에서는 액면가, 예정 지급액, 회수 가능액, 손실 보전 요구액이 모두 비슷한 자리에 적혀 있었다. “얼마나 받을 수 있는 돈인지와 누구에게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인지가 서로 다르군요.” “그리고 다른 권리라고 해도 두 번 팔면 안 되죠.” 세린이 말했다. “양도 가능 여부와 원소유자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준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난 예전에 숫자가 큰 회사가 잘나가는 회사라고 생각했어.” “지금은?” 민석이 물었다. “돈이 실제로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회사가 더 믿을 만한 것 같아.” 민석은 웃지 않았다. 친구가 한 말을 이해하는 데 자신도 몇 주나 걸렸기 때문이다. ‘기초 정산권에 관한 외부 정보의 중대한 오류가 판명될 경우, 확인 제공자는 손실 보전 책임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확인 제공자는 누구죠?” 민석이 물었다. 세린은 별도 첨부 표를 가리켰다. [한서윤] “기자 이름을 여기에 넣었다고 기자가 책임지는 건 아닙니다.” 세린이 말했다.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은 계약은 그 자체로 문제입니다. 다만 이 회사가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일 수 있습니다.” 민석은 이번에도 서윤에게 먼저 연락했다. 첨부 표와 조항을 공유해도 되는지 확인하고 보냈다. 서윤의 답장은 빨랐다. '공개하지 않은 제 이름으로 확인 제공자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전달하겠습니다. 제 서명이 들어간 문서가 있다면 원본을 요구할게요.' 오후 네 시, 민석은 범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급여 대행사에서 공제 경위를 다시 조사하겠대요. 그런데 지금은 돈을 못 돌려준대요.” “사유는 들으셨어요?” “선지급 내역이 취소 처리된 기록이랑 맞지 않는다고요. 며칠 더 기다리래요.” 범우는 목소리를 낮췄다. “기다리는 동안 제가 못 낸 돈은 누가 책임져요?” 민석은 대답을 쉽게 내지 못했다. 회사에 문제가 있으니 신고하라고 말하는 건 간단했다. 하지만 그 절차 사이에서 아이에게 생활비를 보내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은 또 다른 문제였다.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관련 기관이나 계약 상대방에게 즉시 문의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당신 대신 계약을 바꾸지는 않겠습니다.” 범우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맞죠. 그래도 미안하다고는 안 하셔도 돼요. 제 돈 문제니까요.” 통화를 마치자 민석은 한동안 계단에 앉아 있었다. 십억, 백억, 천억. 숫자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쉽게 흥분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생활비 칠십삼만 원은 흥분이 아니라 책임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했다. 저녁 여섯 시. 서윤은 새빛파트너스에 공식 질의서를 발송했다. 정산권의 실재 여부, 양도 권한, 외부 검증 자료의 작성·동의 경위, 취소 신청자의 공제가 매입 목록에 들어가는지를 물었다. 답변 기한도 적었다. 그러자 정태겸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기자님, 확인되지 않은 자료를 내세워 실사를 방해하는 건 신중하셔야 합니다.” “저는 제 이름이 들어간 문서의 작성 경위를 묻고 있습니다.” “설명드릴 자리는 마련할 수 있습니다.” “문서로 답변해 주세요.” 태겸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문서로 답변하면, 기자님의 오랜 취재 경력에도 흠이 갈 수 있습니다.” 서윤은 녹음 사실을 다시 고지했다. “제 경력을 언급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때 기사를 내지 않은 것도 기자님의 판단 아닙니까?” “맞습니다.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급을 확인했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통화가 끝난 뒤 서윤은 한참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소송이나 실직이 아니었다. 십 년 전에 인터뷰했던 누군가가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취재용 메일함에 익명의 제보가 도착했다. '2016년의 원고를 취재원에게 다시 보여 주십시오. 그 사람은 기사가 나가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첨부에는 사진 한 장만 있었다. 임금 지급 명세서의 뒷면.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한서윤 기자에게. 미지급이라고 말한 것은 제가 아닙니다.' 서윤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자신이 알던 십 년 전 사건의 증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46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4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