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철을 만난 곳은 폐업한 은행 건너편의 작은 해장국집이었다.
오전 여덟 시 반. 시장으로 들어가는 트럭들이 좁은 도로를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그사이 남기철은 뚝배기를 앞에 두고도 수저를 들지 않았다. 낡은 회색 모자 아래로 흰머리가 드러났다.
“제 얼굴이 기사에 나가면 안 됩니다.”
서윤은 녹음기를 켜기 전에 취재 범위를 설명했다. 남기철은 목소리 녹음에는 동의했지만 얼굴 촬영과 실명 보도는 거절했다. 민석은 그 조건을 메모했다.
“그날 작업일지에 대해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서윤이 말했다.
“열 해나 지난 종이를 누가 아직 갖고 있나 싶군요.”
“보신 적 있으세요?”
“내가 쓴 겁니다.”
민석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남기철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작업일지 사진을 보더니 오른쪽 아래의 번진 잉크를 가리켰다.
“이건 커피 자국이 아니에요. 경비실에서 먹던 보리차를 엎지른 겁니다. 그래서 기억이 나죠.”
그가 옛 근무일지를 보관한 이유는 소송 때문이었다. 건물주가 경비 용역업체와 계약을 끊으면서 경비원들이 야간수당을 받지 못했다. 남기철은 자신이 일했던 시각을 증명하려고 근무표 일부를 합법적인 절차로 보관했다. 민석은 처음 듣는 사정이었다.
“그날 저는 B-07 문을 잠근 사람이 아닙니다. 바깥 복도에 있었으니까.”
“그럼 안에서 잠근 사람을 보셨습니까?”
“직접은 못 봤습니다. 인터폰으로 목소리만 들었어요. 젊은 여자였죠.”
“무슨 말을 했습니까?”
남기철은 숟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서류가 사라지면 사람들이 돈을 두 번 냅니다.’ 그랬어요. 당장 문을 열면 안 된다고요.”
준성은 고개를 들었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사람이었습니까?”
“아마. 그날 복도 바닥에 유리가 깨져 있었어요. 누군가 손을 베었다고 했지요.”
“이름은요?”
“류지안.”
그 이름은 식당의 소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민석은 처음 듣는 이름을 수첩에 썼다. 참가자 명단의 네 자리 번호로 대조하지 않았다. 먼저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어떤 업무를 했나요?”
“문서 스캔하고 창고 정리하는 계약직이었어요. 연구팀에서 급하게 사람을 썼거든요. 돈 되는 일이라는 말만 했죠.”
남기철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번 저었다.
“서문재가 나중에 왔습니다. 문을 열라고 했지요. 하지만 안에서는 ‘원본을 건네기 전에는 안 연다’고 했어요. 제가 경찰을 부르려 하자 서문재가 말렸습니다.”
“그리고요?”
“21시 19분에 카드로 회의실 문을 잠갔습니다. 원래 두 문은 별개의 시설인데, 나중에 사고 보고서를 보니 ‘서문재가 연구실 전체를 폐쇄했다’고 한 줄로 적혔더군요.”
열두 분. 사람이 원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시간. 나중에는 마치 문재가 모두를 가둔 것처럼 하나의 사건으로 압축된 시간.
“류지안 씨는 그 뒤에 어떻게 됐습니까?” 서윤이 물었다.
“퇴사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제대로 돈도 못 받았을 겁니다. 우리 경비원들처럼.”
남기철은 비닐봉지에서 오래된 급여명세서를 꺼냈다. 야간근무 열한 시간 중 네 시간이 빠져 있었다. 누군가 숫자를 고쳤다는 정황이 있었지만, 그 자체로 누가 고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도 그때 돈이 급했어요. 아내가 병원에 있어서. 그래서 회사가 ‘정산 완료’라고 찍은 종이를 그냥 받았죠.”
민석은 갑자기 알았다. 원장이 사람들의 내일을 다루기 전부터 누군가 오늘의 임금을 빼앗고 있었다.
“혹시 그날 인수증이 남아 있나요?”
남기철은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냈다. B-07에서 반출할 수 없는 서류 상자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보관상자 0-17]
[반출 사유: 당사자별 동의 원본 별도 대조]
“정도현 씨가 이 상자를 지키려고 왔습니다.” 남기철이 말했다.
민석은 017번을 떠올렸다. 원장에서 사망한 사람으로, 또 2036년에는 기록을 거부한 사람으로 표시됐던 이름.
“도현 씨가 지안을 도왔습니까?”
“제가 본 건 도현 씨가 빈손으로 들어가서 무거운 상자를 들고 나오는 장면뿐입니다. 그가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요.”
남기철은 그날을 말하는 동안 자꾸 계산대 위 시계를 바라봤다. 민석이 이유를 묻자 그는 허공에 숫자를 적는 시늉을 했다.
“그날은 내가 두 시간 일찍 출근한 날이었어. 경비 회사는 그 두 시간도 없던 시간이라고 했지.”
“기록에 남지 않은 시간이네요.”
“그렇지. 내가 일을 안 했다면 상관없는데, 분명히 여기 있었거든. 그게 화가 나는 거야.”
서윤이 말했다.
“그 시간에 발생한 일을 증명할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까?”
“야간 청소하던 분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양반도 당시에 이미 나이가 많았고, 지금은 연락이 안 됩니다. 내가 찾아달라는 건 아닙니다. 그분 가족을 귀찮게 해서는 안 돼요.”
남기철은 반쯤 찢긴 근무표를 보여 줬다. 회사 직인이 찍힌 표와 손으로 써 놓은 숫자가 서로 달랐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만 남겼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라며 그는 두 장을 함께 보관했다고 했다.
“둘 중 뭐가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틀렸다는 건 알잖아요.”
민석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아뇨. 둘 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각을 증명하는지 확인해야 해요.”
남기철은 그를 쳐다보더니 소리 내 웃었다.
“맞아. 십 년 전에 그런 말을 들었으면 화가 났을 텐데, 지금은 이해가 가네.”
식사가 끝날 무렵 남기철은 계산서를 먼저 집었다. 민석이 자신이 내겠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돈 필요해서 나온 사람 아니에요. 내가 낼 밥값은 내가 냅니다. 그러니 나중에 남의 돈을 대신 받아주겠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마쇼.”
민석은 그 말을 수첩에 그대로 적었다. 정말로 누군가의 선의를 믿어도 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자기 몫을 스스로 계산대에 올려놓는 이런 순간일지도 몰랐다.
남기철은 자리를 일어났다. 그리고 계산대로 향하다가 돌아섰다.
“그 여자분 찾으면 이 말은 전해 주세요. 문을 잠갔다고 해서 잘못한 게 아니라고. 저는 그날 인터폰으로 겁먹은 목소리를 들었으니까요.”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차가웠다. 바로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일의 잔액 예고: +4,800,000원]
[조건: 류지안의 소재 확인]
그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열 해 전에는 시간당 얼마의 야간수당도 주지 않던 장부가, 이제 사람 하나를 찾는 값으로 사백팔십만 원을 내걸었다.
서윤이 화면을 봤다.
“이거… 현상금이네요.”
민석은 새 수첩 페이지를 폈다.
'사람을 찾기 위한 돈인가, 사람을 넘기는 대가인가.'
그 질문을 적자 예상 금액 옆에 새로운 칸이 나타났다.
[정보 제공 대상: 현재 비공개]
좋은 소식일 리 없었다.
제3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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