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자 확인용 질문]
[2016년 10월 25일, 회의실 문을 처음 잠근 사람은 누구인가?]
민석은 손가락을 입력창 위에 올렸다가 내렸다.
서문재.
가장 쉬운 대답이었다. 십 년 전 영상에서 문재는 잠긴 회의실 문 옆에 서 있었다. 준성도 그렇게 기억했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글자가 마음에 걸렸다.
“이름을 모르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서윤이 말했다.
새벽 세 시를 넘긴 세린의 사무실에는 식은 커피 냄새가 퍼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원장을 멈추기 위해 모았던 접수증과 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어떤 것은 한 장의 종이였고, 어떤 것은 동의를 받아 가린 신분증 사본이었다. 열두 개 운영 원장은 보류됐지만 증거는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분류해야 했다.
민석은 답을 쓰는 대신 메시지의 출처를 눌렀다.
[번호 000]
[원장 가입 기록 없음]
[이용 권한: 열람 불가]
[전송 경로: 보관용 출력 단말]
“출력 단말이면 프린터인가요?” 준성이 물었다.
“원장 바깥에서 종이 기록을 출력하던 장치일 수 있죠.” 황기태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화면 자체가 출처를 보증하는 건 아닙니다.”
민석은 발신자에게 질문했다.
'누가 잠갔는지 확인할 자료를 보내 주세요. 기억을 시험하는 방식으로는 답하지 않겠습니다.'
십 초가 지났다. 화면에 작은 회색 글씨가 떠올랐다.
[정답 입력 거절]
[증거 요청 접수]
“이상하네요.” 서윤이 말했다. “거절도 기록해 주잖아요.”
“좋은 뜻인지는 모르죠.”
응답이 하나 더 왔다.
'종이로 남아 있는 것은 지우기 어렵습니다. 다만 종이를 쥔 사람을 지우는 일은 쉬웠습니다.'
문장 끝에는 파일이 붙어 있었다. 2016년 10월 25일자 시설관리 작업일지의 사진. 노란 종이 모서리가 구겨져 있었고 세로 줄에는 잉크가 번져 있었다.
21:07, 자료보관실 내부 잠금 확인.
21:19, 외부 출입카드 사용 — 서문재.
21:26, 회의실 녹화 중단.
“문재가 잠갔다는 말은 두 번째였군요.” 준성이 중얼거렸다.
세린은 사진을 확대했다.
“이 문서가 진짜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건물에 그런 기록 양식이 있었는지도 대조해야 해요.”
민석은 그 말이 반가웠다. 의심이 일을 지연시키는 게 아니라 방향을 잡아 주었다.
일지 하단의 서명은 흐릿했다. 그러나 읽을 수 있는 숫자가 있었다. ‘보관실 B-07’. 지금까지 그들이 찾은 회의실은 207호였다.
“두 방이 다른가?” 민석이 물었다.
준성은 잠시 눈을 감았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어. 207호에서 회의를 하고, B-07에는 원본 서류를 뒀지.”
“왜 그걸 이제 말해?”
“너도 알던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내가 열쇠를 가져다줬거든.”
목소리가 끝에서 흐려졌다.
민석은 화가 치밀었지만 말을 삼켰다. 준성이 숨긴 것은 아직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모든 기억이 거짓인 것도 아니다.
“누구한테?”
“이름은 기억이 안 나. 정규 연구원이 아니었어. 작업복을 입었고, 오른손에 하얀 붕대를 감고 있었어.”
서윤이 수첩에 적었다.
“그 사람은 회의 참석자 명단에 없었겠네요.”
“없었지.”
그때 민석은 처음으로 000이라는 번호를 다르게 바라봤다. 누군가를 지운 자리라기보다, 애초에 참가 번호조차 받지 않았던 사람의 표시일 수 있었다.
민석은 옛 수첩의 맨 뒤에 꽂혀 있던 사진을 꺼냈다. 서문재가 젊은 연구원들과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처음 볼 때는 한 줄로 서 있는 사람의 수만 세었다. 지금은 배경을 확대했다. 회의실 뒤쪽 유리문 너머에 작업복 차림의 인물이 흐릿하게 비쳤다.
“사진 찍은 날짜가 언제야?”
준성이 사진의 뒷면을 보았다.
“10월 25일이라고 썼네. 내가 그때 인화한 거야.”
“시각은?”
“없어.”
이 사진이 21시 7분 이전인지 이후인지 알 수 없었다. 민석은 그 인물을 바로 000이라 부르지 않았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번호부터 붙이는 습관을 경계했다.
서윤은 자료를 한 곳에 섞어 놓지 않고 두 폴더로 나눴다. 첫 폴더는 출처가 확인된 기록. 두 번째는 실제일 가능성이 있어도 원본 대조가 필요한 기록. 방금 받은 사진과 작업일지는 두 번째였다.
“기사로 쓰려면 최소한 이 건물에 B-07이 실제로 있었는지부터 알아야 해요.”
기태가 오래된 소방 설비 도면 일부를 찾았다. 공공 열람 가능한 시설 변경 이력에는 회의실 옆 기록 보관실이 분명히 표시돼 있었다. 다만 도면은 2017년에 수정된 판본이었다.
“방이 있었다는 건 확인됐네요. 그 안에서 누가 어떤 일을 했다는 건 아직 아니고요.”
민석이 말했다.
서윤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이제 뭘 모르는지 좀 정확해졌어요.”
사건을 추적하는 첫날에는 그런 말이 답답했다. 이제는 어둠 속에서 벽을 짚는 것보다 문고리부터 찾는 기분이었다.
전화기가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강민석 씨죠?”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 이름은 남기철입니다. 한빛자산신탁 건물에서 경비 일을 했습니다.”
“어떻게 제 번호를 아셨습니까?”
“한서윤 기자의 기사를 봤습니다. 기사에 나온 이메일로 연락을 남겼는데 회신이 왔어요. 번호는 제가 공개된 연락처로 확인했습니다.”
서윤은 자신의 취재 계정을 확인했다. 남기철이라는 이름과 연락 요청이 실제로 접수돼 있었다.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회의실 문을 잠근 사람을 찾는다면, 제가 한 가지는 알려 줄 수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그날 잠긴 문이 두 개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 개만 기억하더군요.”
“누가 처음 잠갔습니까?”
남자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질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게 있어요. 왜 안에 있던 사람이 문을 잠글 수밖에 없었는지.”
통화가 끊겼다. 서윤이 연락처를 다시 확인하려는 순간 원장 밖 메시지가 마지막으로 깜빡였다.
'대답을 서두르지 마세요. 그날 문을 잠근 사람은 도망치려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민석은 작업일지의 21시 7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열 해 동안 아무도 계산하지 않았던 열두 분이, 이제 처음으로 숫자보다 중요해졌다.
제3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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