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6화
PAYLUA ORIGINAL · 제26화

26화. 상자 속의 반대편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3,923자

오프라인 책장
김예린은 직접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는 얼굴을 보여 주거나 현재 주소를 알려 주지 않고, 자신이 동의한 분량의 자료만 전달하겠다고 했다. 민석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십 년 전 함께 일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현재 삶을 들여다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예린의 첫 번째 자료는 녹음이 아니라 텍스트였다. '강민석에게. 2016년 당신이 삭제한 것은 나의 이름이 아니라 나를 대신해 책임을 인정했다는 가짜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 조치 이후 원장은 당신을 영구 검증자로 등록했다.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민석은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나는 당신의 희생에 동의한 적이 없다. 당신도 나의 침묵을 동의로 취급하지 말아 달라.' 그것이 예린이 보낸 첫 번째 메시지의 전부였다. 민석은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는 십 년 전의 자신이 누군가를 구했다고 생각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대가를 치르겠다는 결정도 당사자에게 설명하지 않은 일이었다면, 그 역시 누군가의 선택을 빼앗은 것일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해?” 민석이 준성에게 물었다. 준성은 오래된 일기장을 펼쳤다. “네가 ‘내 이름으로 묶으면 다른 사람은 안전하겠지’라고 했어.” “그랬구나.” “윤 교수님은 말렸어. 하나를 보호하려고 다른 사람을 담보로 넣는 규칙은 결국 더 큰 담보를 요구하게 된다고.” 민석은 고개를 숙였다. 십 년 전 그의 선택은 나쁜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나쁜 구조를 바꿔 주지는 못했다. 오전 열 시, 서윤의 기사 초안이 완성됐다. 제목은 선정적이지 않았다. '미래 잔액 화면과 실제 계좌 거래는 다릅니다 — 의심스러운 동의 요청에 주의' 기사는 확인된 제보만을 담았다. 숫자가 정확히 일치한 소액 이자 사례도 실었지만, 그 사실만으로 뒤이은 선수령 권유가 신뢰할 만하다고 보지 않았다. 언론사가 화면 자체를 검증한 것은 아니라는 단서도 분명했다. “이 정도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죠?” 민석이 물었다. “일부에게는요.” 서윤이 대답했다. “기사로 모든 걸 막을 수는 없어요. 그래도 확인할 질문을 알려 줄 수는 있죠.” 기사가 나간 지 한 시간 뒤 제보가 폭증했다. 이른바 ‘내일의 잔액’에 대한 경험담이 인터넷에 퍼졌고, 일부는 취재 내용과 관계없는 광고 링크였다. 누군가는 원장을 사칭한 화면을 만들어 올렸고, 또 누군가는 기사 자체가 금융 시장을 흔들 음모라고 주장했다. 서윤은 원장이 없어도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게 남의 내일을 팔 수 있는지 실감했다. 그녀는 유사 광고 링크를 기사에 싣지 않고, 공식 금융기관을 통한 확인 방법을 강조했다. 오전 내내 민석의 휴대전화에는 사람들이 보내 온 화면이 쌓였다. 어떤 화면에는 대출이 승인됐다고 쓰여 있었고, 또 어떤 화면에는 이미 갚았던 돈이 다시 빚으로 계산돼 있었다. 대부분은 실제 계좌 내역과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은 어제 원장이 보여 준 손실 금액과 오늘 카드 결제 금액이 정확히 같다고 주장했다. 서윤은 그 제보를 따로 분류했다. “맞은 사례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더 위험해요. 맞은 숫자 하나가 나머지 문구까지 진짜라고 느끼게 할 수 있으니까.” 준성은 계산기를 두드렸다. “동일한 금액이 반복된다고 해서 같은 거래인 건 아니야. 반대로 한 건의 거래가 여러 장부에서 다르게 적힐 수도 있고.” 민석은 십 년 전 금융 분석 일을 배우던 날을 떠올렸다. 그는 숫자를 좋아했다. 숫자에는 감정이 없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숫자를 보고 안심하거나 겁을 먹고, 그 감정으로 또 다른 돈의 선택을 한다. 기태는 확보된 제보 표에 세 개의 색을 칠했다. 실제 발생이 확인된 거래, 아직 발생하지 않은 예고,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기록. 색을 칠했을 뿐인데 혼란스럽던 화면들이 조금 읽히기 시작했다. “모든 게 가짜라고 말하면 실제로 맞은 사람은 우리 말을 안 듣습니다.” 기태가 말했다. “그러면 사실대로 말하면 되겠네요.” 민석이 대답했다. “맞은 건 맞았고, 거기서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는 따로.” 오후 한 시, 오세린은 회의실로 달려왔다. “원장 C의 급여 정산 제보에서 새로운 종류가 나왔어요. 의사 표시는 '재직 유지 동의'입니다.” 직원들의 급여가 내일 줄어든다는 예고를 띄우고, 감소를 피하려면 미래의 급여 조정에 동의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제보자는 민간 요양시설의 행정 직원이었다. 근무표가 빼곡한 곳에서 급여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었다. 다음 달 교통비와 생활비, 아이 돌봄 비용이 달려 있었다. “단체로 사인하라고 강요받았습니까?” 민석이 물었다. “아직은 아니에요.” 세린이 말했다. “제보자는 휴대전화에서 문구를 봤고, 회사의 실제 급여 규정과 무관하다고 확인했어요. 그런데 동료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고 있어요.” “동료들이 믿으면 서로에게 누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원장이 회사의 진짜 권한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예요.” 세린은 근로자들의 동의와 공식 계약 절차는 원장과 별개라고 설명할 수 있는 안내문을 작성했다. 민석은 예전처럼 직접 원장을 고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당사자들의 확인과 대응이 먼저라는 사실을 배운 덕분이었다. 그날 오후 세 시, 예린의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상위 원장은 의외로 단순하다. 열두 개 운영 원장을 모아 하나의 채무를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다. 열두 개 원장이 서로의 동의 기록을 보증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열두 개 중 하나라도 의심스러운 동의를 진짜라고 인정하면 다른 원장은 그걸 복제한다.' 민석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들이 동결한 A, B, C가 여전히 나머지 아홉 개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예린의 메시지는 이어졌다. '그걸 끊을 수 있는 건 마스터 버튼이 아니다. 당사자에게 확인할 수 없는 기록은 다른 원장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아주 오래된 검증 규칙이다. 그 규칙은 2016년 당신이 넣었다.' “그런 규칙이 남아 있다고?” 준성이 놀랐다. 기태는 낡은 문서함에서 인쇄된 프로토콜 페이지를 찾아냈다. 맨 아래에 젊은 민석의 필체가 있었다. '검증 불가 상태는 미동의 상태와 동일하게 취급한다.' 그 아래에 승인자가 둘 서명돼 있었다. 강민석, 김예린. 그리고 제삼자의 이름은 지워져 있었다. “그냥 다시 적용하면 되겠네요.” 준성이 말했다. “안 될 수도 있어요.” 기태가 대답했다. “규칙을 적용하기 전에 누가 원본을 보관하는지 확인해야 해요. 한쪽에서 변조한 자료를 원본으로 인정하면 사태는 더 커집니다.” 저녁 여섯 시, 세린의 사무실에 작은 상자가 도착했다. 발송인은 예린이 지정한 문서 보관 업체였다. 정식 절차와 열람 범위를 확인한 뒤, 세린은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서류가 두 묶음 들어 있었다. 하나는 검증 규칙의 초안. 다른 하나는 그 규칙을 폐기하자는 이사회 의결서였다. 의결서 아래에는 강민석의 서명이 있었다. 날짜는 2016년 11월 1일. 민석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며칠 전에 만든 규칙을 내가 없애자고 했다고요?” 세린은 문서를 뒤집었다. 뒷면에 두 번째 서명란이 있었다. [폐기 반대: 김예린] 그 아래 작게 인쇄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의 제기자는 십 년간 복원 요청 권한을 보유한다.' 기태가 달력을 보았다. “십 년이면… 내일입니다.” 민석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났다. “예린 씨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겠죠?”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고백을 듣는 게 아닐 거야.” 서윤이 조용히 물었다. “그럼 뭘 원하죠?” 민석은 의결서 위에 놓인 서명을 보았다. “우리가 자기 이름을 또 빌려 쓰지 않는 거요.” 그때 원장에 경고가 나타났다. [이의 제기권 만료까지: 05:59:59] [복원 요청이 없을 경우: 검증 불가 규칙 영구 폐기] 서명 하나를 되살릴지 말지, 이번에는 김예린 자신이 결정해야 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26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26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