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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4화
PAYLUA ORIGINAL · 제24화

24화. 지워진 이름의 주소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4,221자

오프라인 책장
강민석은 어머니 집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달려가고 싶었지만, 서문재가 남긴 봉투는 그가 바라는 방식으로 열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봉투를 뜯고, 글자를 읽고, 거기 적힌 사람을 뒤쫓는 것. 그럴수록 원장은 그를 더 쉽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민석은 어머니에게 봉투를 보관해 달라고 하고 세린에게 전화했다. 세린은 발신인이 특정되지 않은 편지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 뒤, 당사자인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함께 열어 보자고 했다. “제가 편지 받아도 돼요?” 민석이 물었다. “어머니께 온 겁니다. 어머니가 선택하셔야죠.” 집에 도착한 민석은 현관에 놓인 낯선 신발을 먼저 찾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방문객이 이미 돌아갔다고 했지만, 민석은 서문재가 혹시 다시 왔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물었다. “그 사람이 위험한 사람이니?” “확인되지 않은 말도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그럼 왜 네 이름을 그렇게 잘 알던데?” “그것도 알아보려고요.”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그 사람이 차를 한 잔도 안 마시고 갔어. 내 이름을 먼저 부르기에 오래 아는 사람인 줄 알았지. 그런데 네 대학 친구냐고 물으니까 대답을 안 하더라.” 민석은 방문 시간을 확인했다. 어머니는 오후 세 시쯤이라고 했다. 그 무렵 민석의 원장에는 서문재 관련 경고가 없었다. 원장이 모든 움직임을 알려 준다는 믿음이 얼마나 틀린지 보여 주는 작은 공백이었다. “엄마, 다음부터는 모르는 사람이 오면 문 밖에서 이야기만 하세요. 그리고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당당하게 대꾸했다. “네가 모르는 사람한테 더 잘 속을 것 같구나.” 민석은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어머니는 강민석의 참가번호 414를 몰랐지만, 아들이 급한 일이 생기면 덜컥 움직인다는 것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봉투를 식탁 한가운데 놓았다. 전날과 같은 멸치볶음이 작은 접시에 담겨 있었다. 세린이 종이를 꺼내자 오래된 프린터 잉크 냄새가 났다. 표지에 적힌 문장은 간단했다. '강민석이 처음 지운 사람의 이름: 김예린.' 뒷장에는 2016년 연구실 배치도가 복사되어 있었다. 강민석과 박준성의 이름 옆에 김예린이라는 이름이 작게 적혀 있었다. 직책은 자료 검증 조교. “이 사람이 누구지?” 어머니가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게 가장 서늘했다. 연구실에 함께 있었을 사람의 이름인데, 낯선 이름을 처음 보는 것처럼 읽고 있었다. 편지 마지막에는 자필 문장 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구하려다가 기록을 지웠다. 당신 아들은 그 아이가 왜 사라졌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 대가를 누가 받았는지 묻기 전에, 아직 살아 있는지부터 확인하라.' 서문재의 서명은 없었다. 민석은 글쓴이를 단정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종이를 다 읽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대학 다닐 때 친구가 집에 온 적 있잖아.” “준성이요?” “아니. 여자애. 큰 우산을 쓰고 왔는데 네가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수건 갖다 준 애.” 민석은 기억을 더듬었다. 우산, 운동화, 젖은 복도.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이름 기억하세요?” “예린이었던 것 같아.” 민석은 침을 삼켰다. 원장에서 지운 이름이 어머니의 기억에는 남아 있었다. 누군가의 삶을 지운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기억에 뚫린 구멍이 조금 더 커졌다. 어머니가 물었다. “그 애한테 무슨 일이 생겼니?” “확인해야 해요.” “네가 뭘 잊었어도, 그 애가 네게 잘해 준 일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야.” 민석은 그 말을 수첩에 적지 않았다. 어떤 문장은 기록해 두는 것보다 기억하려 노력해야 했다. 같은 날 오후, 서윤은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2016년 연구 발표 자료에서 김예린의 이름을 찾아냈다. 공개된 발표자 목록에 한 번, 감사의 글에 한 번. 자료집을 보낸 연구실은 이미 폐쇄됐다. “주소는 못 찾았어요. 사적인 정보를 추적하는 건 본인의 동의가 필요해요.” 서윤이 말했다. “하지만 연락할 방법은 있습니다. 연구 발표에 공동 저자로 적힌 사람에게 정식 취재 요청을 보내 보는 거예요.”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떠오른 첫 생각이 원장을 열어 예린의 미래 주소를 찾는 것이었기에, 서윤의 절차가 고마웠다. 민석은 연구 발표 자료를 두 번 읽었다. ‘김예린’의 이름은 보조 연구원 명단에서 지워졌는데, 발표 말미의 감사의 글에는 남아 있었다. 누군가 계약상 책임을 지우면서도 학술 자료를 한 번에 고치지 못한 듯했다. 도서관 담당자는 자료집이 접수된 연월과 기증 경위까지만 안내했다. 민석은 개인정보를 알려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오래된 연구자 명단이라고 해서 지금 사는 주소를 알려 줄 의무는 없었다. 서윤은 그 옆에서 자료 사진을 정리했다. “민석 씨가 제보자 명단을 빨리 찾아보자고 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는 사람이 어딨는지 알면 일이 해결될 줄 알았어요.” “사람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연락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게 다를 때가 있어요.” 서윤은 연구 발표를 공동 작성한 교수에게 취재 요청서를 보냈다. 예린이 연락을 원한다면 자신의 공개 이메일을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문장도 끝에 붙였다. 민석은 휴대전화의 원장에 이름을 입력해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렀다. 그것이야말로 열 해 전의 자신이 누구에게서 빼앗았을지도 모르는 선택이었다. 오후 다섯 시, 준성과 마주 앉았다. 그는 봉투를 보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예린이를 기억해?” 민석이 물었다. “응.” “왜 말 안 했어?” 준성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넌 그 이름이 들리면 심한 두통을 겪었어. 한동안은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도 원장 화면이 켜졌고.” “그래서 네가 대신 잊기로 했어?” “아니. 난 잊지 않았어. 잊지 못했지.” 준성은 찻잔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예린이는 연구실에서 서류를 검토했어. 투자자 동의란에 똑같은 필체가 수십 번 나타난 걸 처음 발견했지. 서문재는 그걸 자료 입력 오류라고 했고.” “예린이가 원본을 찾으러 갔어?” “그날 밤. 도현이랑 같이.” 민석은 정도현이라는 이름에 눈을 들었다. 이미 죽은 검증자의 이름과 사라진 자료 조교의 이름이 연결됐다. “예린이는 돌아왔어?” “다음 날 오전에. 그런데 본인이 서명하지 않은 연구기여 동의서가 생겼다고 했어. 앞으로 발견되는 오류를 연구팀 공동 책임으로 인정한다는 문서였지.” “그래서 내가 지웠구나.” “네가 지운 건 예린이의 이름이 아니라 그 위조된 책임 연결이었어. 원장 화면에서는 참가자 삭제라고 표시됐지만.” 민석은 다시 봉투를 보았다. ‘첫 번째로 지운 사람’이라는 표현은 원장이 좋아할 만한 문장이었다. 무서웠고, 불명확했고, 죄책감을 자극했다. 하지만 현실의 행동은 서류 하나를 지운 것이었다. “그럼 예린이는 지금 어디 있어?” 준성이 고개를 저었다. “십 년 전에 연락을 끊었어. 나는 찾으려 하지 않았어. 그게 약속이었거든.” “무슨 약속?” “예린이가 우리에게 먼저 연락할 때까지는 찾지 않기로.” 민석은 그 약속을 존중하기로 했다. 원장에 등장했다고 누군가의 조용한 삶을 허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밤 서윤의 취재용 공개 이메일로 짧은 편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김예린은 살아 있습니다. 다만 연락을 원한다는 증거는 아직 없지요. 당신들이 진짜 묻고 싶은 것은 이름이 아닐 겁니다.' 첨부 파일에는 연구 설계도 한 장이 있었다. 열두 개의 원장이 가운데로 모이는 그림. 중앙의 사각형에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미래 동의 원본 창고.' 그리고 아래에 아주 작은 주석이 붙어 있었다. '원본 창고는 돈을 보관하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사과를 보관한다.' 서윤은 파일을 열람한 뒤 수상한 링크나 실행 파일이 없는지 확인하고 사본을 분리 보관했다. 같은 그림이 윤 교수의 편지에도 있는지 대조했다. 도형은 닮았지만 중앙 명칭이 달랐다. “이 두 자료 중 하나가 변조됐을 수도 있어요.” 서윤이 말했다. 민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의 화면에는 전혀 다른 문구가 나타났다. [참가자 김예린] [대체 승인 연결: 해제 유지 중] [재연결 요청자: 강민석] “나는 요청한 적 없어.” 준성이 화면을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럼 누군가 네 옛 권한을 다시 쓰고 있어.” 민석은 휴대전화에 남은 요청 시각을 확인했다. 2036년 10월 30일 17시 04분. 열 해 뒤의 자신이 이미 잊었던 사람을 다시 원장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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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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