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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화
PAYLUA ORIGINAL · 제2화

2화. 선택의 가격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6,295자

오프라인 책장
[선택 기한: 00:09:58] 민석은 휴대전화를 다시 껐다 켰다. 전원을 내리면 숫자도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잠금 화면에 은행 로고 대신 낯선 문구가 떠 있었다. [정산 절차 진행 중. 전원 종료는 선택의 취소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손가락이 차갑게 식었다. 빗줄기가 처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 "저 돈, 진짜 내 통장에 있는 겁니까?" 서윤이 대답하기 전에 도로 건너편 검은 승합차에서 박준성이 내렸다. 검은 코트가 빗물에 젖었지만 그는 우산을 펴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는 무슨 대답이든 자신이 먼저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던 친구였다. 지금도 똑같았다. "숫자만 보면 그렇지. 하지만 네 돈은 아니야." "그럼 누구 돈인데?" "내일의 네가 이미 받은 돈. 정확히는 아직 받을 자격이 없는 돈." 민석은 욕이 나올 뻔했다. 말장난으로 백억 원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은행 앱의 이체 버튼을 눌렀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일백만 원을 자신의 다른 계좌로 보내려 했다. [출금 가능 잔액: 3,287,901원] "보이냐?" 준성이 말했다. "장부 잔액하고 출금 가능 잔액이 달라. 누군가 내일의 돈을 네 이름으로 예치했지만, 아직 인출 권리는 없다는 뜻이야." "누군가 누군데?" "그걸 알려면 선택해야지." 서윤이 민석의 팔을 붙잡았다. "저 사람 말대로 하면 안 돼요. 조금 전 보여드린 직원도 똑같이 시작했어요." 준성이 고개를 돌렸다. "정도현 이야기라면 기사가 다 틀렸다는 것도 말해 줘야지. 그는 거절해서 죽은 게 아니야." "죽기 전에 한 말을 제가 직접 들었어요." "그럼 왜 녹음은 공개 안 했는데?" 두 사람의 시선이 충돌했다. 민석은 그 사이에 끼어 자신을 두고 진행되는 협상을 듣고 있었다. [선택 기한: 00:08:41] "둘 다 입 다물어요." 민석이 말했다. "제가 지금 확인하고 싶은 건 하나예요. 수락하면 뭘 수락하는 겁니까?" 준성이 기다렸다는 듯 손바닥만 한 태블릿을 꺼냈다. 거기에는 민석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뒤 네 자리가 별표 처리된 전자 계약서가 있었다. 출처가 은행인지, 사설 투자사인지 표시되지 않았다. 계약서 제목은 '내일의 정산 권리 이전 확인서'. "수락하면 선입금된 백억 원의 권리를 취득해. 대신 그 돈이 만들어 내는 결과도 네가 책임져야 해." "결과가 뭔데?" "아직 발생하지 않았어." "발생하지도 않은 결과를 어떻게 책임져?" 준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봤다. 은색 줄이었다. 민석은 꿈속 창구에 앉아 있던 남자의 손목을 떠올렸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우연일 수 있었다. 은색 시계는 세상에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은행 창구의 꿈도, 그 꿈에 관한 메모도 이미 우연의 범위를 넘었다. "거절하면요?" 이번에는 서윤이 답했다. "권리를 되돌려놓게 돼요. 그런데 되돌려놓을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면 미이행으로 처리됩니다. 그때부터 예고에 있던 마이너스 금액이 확정돼요." "사람이 백억 원을 빚지는 순간 죽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제가 아는 한, 빚 때문에 죽은 건 아니에요. 도현 씨는 선택 직후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고, 다음 날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단순 추락사로 봤어요." 준성이 짧게 웃었다. "이야기의 절반만 해 주는 재주가 여전하네." "당신이 거기 있었다는 나머지 절반도 말해 줄까요?" 준성의 웃음이 멈췄다. 민석은 준성의 태블릿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주 사소한 사실을 떠올렸다. 은행에 입금된 백억 원이라면 거래 상대방의 이름과 계좌번호가 남아야 한다. 두 사람이 말을 싸우는 동안에도 기록은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앱에서 입금 내역을 눌렀다. 가장 위의 '선입금 백억 원'을 터치하자 상대 계좌가 전부 별표로 표시됐다. 대신 거래 식별번호는 선명했다. HBT-2016-07. 민석은 숫자를 종이에 적었다. "그 번호 알아?" 준성이 고개를 돌렸다. "네가 어디서 봤는데?" "백억 원 거래번호야. 십 년 전 날짜처럼 보이네." "그 번호를 다른 사람한테 보여 주지 마." "왜?" "그건 돈이 이동하는 번호가 아니라 사람이 연결되는 번호니까." 준성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태블릿을 꺼 버리려 했지만 민석이 손으로 막았다. "당신이 정말 친구라면, 지금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눌러야 이익을 보는지 알려 주는 게 아니야. 누가 이 화면을 보게 만들었는지 알려 주는 거지." 준성은 이상할 만큼 긴 시간 민석을 보았다. 대학 시절 그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는 버릇이 있었다. 상대를 읽어야 이긴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 버릇이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한테 이게 뜰 줄은 몰랐어." "그럼 원래 누구한테 뜨게 할 작정이었는데?" 준성은 서윤을 힐끗 보았다. "그건 내 허락만으로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민석은 짧게 비웃었다. "백억 원을 떠넘길 때는 허락이 필요 없고?" 서윤이 끼어들었다. "강민석 씨, 지금은 저 사람이 답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번호가 남았다면 꼭 적어 두세요. 화면이 사라져도 물리적인 메모는 남을 수 있으니까요." 민석은 볼펜으로 거래번호 아래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때 은행 앱에 쓰인 회색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정산 전표는 현금 이동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은행에서도 익숙한 말이었다. 대금 지급 요청서와 실제 지급 내역은 다르다. 주문서가 있다고 돈을 지불한 건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기묘한 시스템은 요청서에 적힌 액수를 진짜 잔액처럼 보여 주고 있었다. "너희가 사람을 속이는 방법은 간단하네. 아직 지급되지 않은 돈을 이미 받은 돈처럼 보여 주는 거야." 준성은 씁쓸하게 웃었다. "사람들은 그걸 미래라고 불러." "난 그걸 미지급금이라고 부르는데." 서윤이 처음으로 민석의 말에 작게 웃었다. 빗물과 긴장으로 얼어붙은 얼굴에 아주 잠깐 사람다운 표정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선택 시계가 일 분 넘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들은 동시에 다시 휴대전화로 시선을 돌렸다. 민석은 태블릿을 밀어냈다. 계약서를 읽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은 없었다. 선택 버튼 아래에 작은 화살표가 있었다. 아까까지 보지 못한 것이었다. [정산 근거 보기 ▾] 그가 손가락으로 눌렀다. [현재 선택 주체: 강민석] [선택 위임 주체: 강민석] [위임 시각: 내일 23:59] [위임 근거: 미래 정산 기록 제7호] "이게 말이 돼?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한테 위임했다고?" 서윤의 표정이 바뀌었다. "위임 근거가 보인다고요?" "안 보여야 합니까?" "도현 씨 화면에는 그 줄이 없었어요. 그는 끝까지 누가 돈을 보냈는지 알지 못했어요." 준성이 성큼 다가왔다. "화면 보여 줘." 민석은 휴대전화를 뒤로 숨겼다. 대학 시절 재무제표를 보다가 오기가 발동하면 준성에게 원본을 맡기지 않곤 했다. 그는 같은 버릇으로 숫자를 천천히 읽었다. 돈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는 거래는 회계상 설명할 수 없는 거래였다. "위임 시각이 내일이면, 오늘은 계약이 아직 없다는 뜻이죠?"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준성이 경계했다. "그런데 나더러 오늘 수락하라면서요. 미래의 내가 내일 체결할 계약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오늘 승인하라면 날짜가 안 맞잖아요." [선택 기한: 00:06:19] 민석은 화면을 밀어 내렸다. 약관 끝에 작고 흐린 글씨가 보였다. [동일인 간 미래 정산은 당사자 확인 시한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단, 선택 주체와 위임 주체의 동일성을 증명하여야 합니다.] "이거다." 준성이 손을 뻗었지만 민석이 먼저 뒤로 물러났다. "뭐가?" 서윤이 물었다. "결정하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방법이 있어요. 은행 거래에서 대리인이 계약하면 위임장 원본을 확인하잖아요. 여기도 그게 필요하대요." "그거 누르지 마!" 준성이 소리쳤다. 민석은 처음으로 준성이 진심으로 당황한 얼굴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는 백억 원을 자기 지갑 속 교통카드처럼 설명했다. 그런데 약관 한 줄에는 얼굴색이 달라졌다. "왜?" 민석이 물었다. "네가 만든 시스템이라면 이런 조항도 알았을 거 아냐." "시스템을 만든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럼 누구야?" 준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너는 확인 절차를 통과할 수 없어. 전 회차 기록이 없으니까." "전 회차?" 그때 화면에 숫자 하나가 더 나타났다. [기존 선택 이력: 총 7회] [거절 6회 / 수락 1회] [마지막 수락 시각: 2026.10.25 23:59] 오늘은 10월 24일이었다. 손목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저녁 일곱 시 조금 전. 마지막 수락 시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건…… 미래 기록이네." 서윤이 민석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날짜를 읽어 주세요." 그가 날짜를 말하자 서윤은 손가방 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날짜와 시간을 적고 펜 끝을 세게 눌렀다. "그런데 그 여섯 번은 언제였을까요?"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이 없다는 것과 없었다는 것은 달라요." 화면을 보고 있던 민석은 문득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거절 6회'라는 문구는 처음에는 과거형이었고, 상세 화면에서는 횟수만 남아 있었다. 시스템은 미래의 수락까지 모두 이력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내일의 장부라면 미래의 거래도 이미 적혀 있는 거지." "그래서?" 준성이 물었다. "그럼 장부에 적혔다고 해서 그 거래가 실제로 발생한 건 아닐 수도 있어. 잠깐, 제가 확인할 게 있어요." 그는 준성에게 계약서의 수락 여부가 아니라, 어디서 '동일성 확인'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준성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시선이 하단 버튼으로 움직였다. 민석은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미래 위임 원본 대조 요청] 남은 시간은 삼 분이 채 되지 않았다. 민석은 눌렀다. [확인 대조를 요청하겠습니까?] [대조에 실패하면 현재 선택은 거절로 처리됩니다.] 서윤이 말했다. "위험해요. 성공할 근거가 없어요." "대조할 원본이 내일에 있다면 오늘 없다는 게 정상인 거죠." 민석이 중얼거렸다. "없는 문서를 없는 거라고 확인하는 게 대조가 아니라, 아직 발행되지 않았다고 보류하는 게 맞아." 민석은 팝업의 하단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밀었다. 약관에서 보았던 '당사자 확인 시한' 항목이 펼쳐졌다. [원본 발급 예정 시각 이전에는 정산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발급 예정 시각을 기준으로 분쟁 접수 가능] "이건 원래부터 여기 있었네." 준성이 낮게 말했다. "그 화면을 보는 사람은 보통 얼마 안 돼." "왜?" "돈이 보이면 약관부터 읽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민석은 '분쟁 접수'를 눌렀다. 앱은 본인 인증을 요구했다. 얼굴 인식을 하는 동안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쳤다. 인증이 두 번 실패했다. 그는 뒷벽에 등을 붙이고 휴대전화 화면을 얼굴 가까이 당겼다. [선택 기한: 00:00:37] 세 번째 시도. 성공. [분쟁 사유를 선택하세요.] '계약 당사자 불명' '금액 오류' '위임 원본 미존재'. 세 가지 중 하나였다. 그는 마지막 것을 눌렀다. [선택 기한: 00:00:12] [위임 원본 미존재에 대한 이의 제기가 접수되었습니다.] [분쟁 처리 중에는 선택 시계를 정지합니다.] 숫자가 11초에서 멈췄다. 민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생전 처음으로 휴대전화의 정지된 숫자가 반가웠다. 서윤이 우산을 그의 쪽으로 기울였다. 준성은 빗물이 쏟아지는 도로를 바라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면 이제 끝났어요?" 민석이 물었다. "끝나지 않았어요." 서윤이 말했다. "거절도 수락도 안 했으니까요." "며칠은 벌었잖아요." 준성이 고개를 저었다. "며칠이 아니야. 내일 원본이 발급되는 시각까지야. 네 경우엔 오늘 밤 자정 전일 수도 있어. 미래에서 문서를 보낼 방법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럼 그 문서가 진짜인지 확인하면 되잖아." 준성은 잠시 민석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 처음 보는 감정이 있었다. 걱정 같기도 했고, 오래 기다린 사람을 발견한 안도감 같기도 했다. "네가 생각하는 '진짜'의 정의가 바뀔 거야." 그 말이 끝나자 민석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앱 상단의 백억 원은 그대로였다. 대신 새로운 안내가 떠올랐다. [이의 신청 처리 결과: 본인에게 의견 요청] [원본 발급 주체가 제출한 자료가 있습니다.] 첨부 파일은 사진 한 장이었다. 작은 은행 창구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찍혀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민석 자신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26년 10월 25일 23:59] 내일 밤의 사진이었다. 그런데 사진 속 민석은 눈을 감고 있었고, 목에는 검은색 장례식 리본이 걸려 있었다. 파일 이름은 더 짧았다. [사망 예금주 확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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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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