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월요일 오후 두 시 삼십 분.
회의실 문이 열리자 강민석은 상대방의 얼굴보다 손에 든 서류가방을 먼저 봤다. 오래된 검은 가죽 손잡이. 서류 모서리가 조금씩 삐져나온 모습. 하은이 보여 줬던 십 년 전 명함의 주인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도담보관정산 운영이사 임도훈입니다.”
명함은 새것이었다. 회사 이름과 직함, 연락처가 모두 또렷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민석 쪽으로 명함을 밀었다. 민석은 받기 전에 물었다.
“2016년에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임도훈의 손끝이 잠깐 멈췄다.
“통합 운영 지원이었습니다. 문서 배송과 검수 결과 전송을 관리했죠. 왜 물으십니까?”
“그 시절에 누군가에게 ‘어차피 완료로 올라간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세린이 끼어들었다. “기억하라고 압박하려는 자리는 아닙니다. 지금 확인 가능한 문서부터 보죠.”
임도훈이 계약서 부속서를 펼쳤다. ‘예정 지급 데이터 조회’, ‘원본 반환 요청 상태 복제’, ‘검수 실패 시 보완’ 등의 항목이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주석이 달려 있었다. 시험 환경에서 만든 시나리오 값을 협력업체의 검증 시스템에 보내는 작업을, 별도의 대면 확인 대신 내부 인증 로그로 갈음할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김예린은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제 초기 설계 문서에는 운영 반영 금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계약 검토가 끝난 뒤 변경됐습니다.” 임도훈이 말했다.
“누가 검토했죠?”
임도훈은 박준성을 힐끗 봤다. 준성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제 보고서가 참고자료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를 승인한 당사자는 아닙니다.”
임도훈이 서류 뒤쪽을 넘겼다. 결재권자는 서문재였다. ‘본인 의사 확인이 필요하지 않은 시스템 간 복제’라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문제는 그 조건이 개별 사람의 의사 확인까지 대신하는 데 사용됐다는 점이었다.
“서문재 씨가 시킨 겁니까?” 민석이 물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임도훈은 낮게 대답했다. “계약대로 처리했습니다. 위법인지 판단하는 건 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계약대로라면 십 년 전에 반환 거부한 기록이 수령 완료로 바뀌어도 괜찮다는 겁니까?”
임도훈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회의실 에어컨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왔다. 민석은 그 짧은 침묵이 열 장짜리 설명서보다 길게 느껴졌다.
서윤은 회의 내용을 기록하면서도 이름을 기사에 쓰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확인된 사실과 의혹을 구분하고, 답변할 기회를 주겠다고 미리 알렸다. 임도훈은 잠시 긴장한 표정을 풀었다.
“오늘 새벽 로그에는 제가 접속한 것으로 나왔겠죠. 그건 사실입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414건 일괄 취소를 승인한 건 제가 아닙니다.”
최유나가 질문했다. “그러면 접근 권한이 있는 다른 계정을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임도훈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서류에는 ‘서비스 유지 보수 대행: 해무소프트’라고 적혀 있었다. 원장 화면 운영, 배치 작업 생성, 알림 발송은 도담 내부팀이 아니라 외주팀에서 맡았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M36 시나리오 뷰는 고객에게 공개된 서비스가 아니라 사고 검토용 별도 화면이었다.
“그 화면은 왜 민석 씨에게 열렸습니까?” 예린이 물었다.
“누가 열람 대상을 등록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민석이 웃었다. “십 년 전부터 다들 확인해야 한다고만 하네요.”
임도훈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강민석 씨. 그 말은 저도 싫습니다. 제 아버지 이름으로 정산된 기록이 한 번 있거든요. 실제로는 받지도 못한 걸요.”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민석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상대가 갑자기 피해자가 되었다고 모든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 사실도 공식 자료로 남겨 주세요.” 세린이 말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 기록을 다루신 책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임도훈은 보존 담당자에게 원본 변경 로그를 직접 넘기겠다고 했다. 임의로 파일을 수정하지 않도록 별도의 복사본을 생성하고 해시값을 남기는 절차였다.
복도로 나온 민석에게 준성이 조용히 물었다.
“저 사람, 나쁜 사람 같아?”
“모르겠어. 다만 저 사람이 그날 한 말이 나쁜 결과를 만들었는지는 알아봐야지.”
그날 밤 검은 원장에는 처음 보는 문장이 떴다.
[예측 배포 엔진: 외주 운영]
[사용자 강민석 등록 시점: 2026.11.30]
민석은 날짜를 입으로 읽었다. 그가 검은 원장을 처음 이상하게 여겼던 시기와 가까웠다. ‘우연히 발견한 기능’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신이 등록된 기능이었다.
제19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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