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190화
PAYLUA ORIGINAL · 제190화

190화. 미래를 남긴 사람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992자

오프라인 책장
2월 19일 금요일 오전 열 시. 김예린은 한서윤이 보낸 문서를 한참 바라봤다. 민석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야 오늘이 또 다른 시작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린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잃어버린 물건을 십 년 만에 발견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거 제가 쓴 문장이 맞아요.” 민석이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2036년 강민석의 서명을 당신이 만든 겁니까?” “아니요. 서명이 아니라 경고문입니다. 2016년 시험 환경에서만 쓰도록 만든 무결성 검사 문구였어요.” 예린은 당시 문서의 구조를 그렸다. 첫 번째 서명 칸에는 본인이 직접 확인한 전자 서명이 들어가야 했다. 시스템이 예시 문서나 사진에서 서명을 복사해 넣는 일이 벌어지면 시험용 가상 계정이 자동으로 ‘첫 번째 서명은 내가 하지 않았다’는 경고를 남기도록 설계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사진을 잘라 붙이면 기록 안에 반대 증거가 남게 하려고요. 아무도 사람 대신 서명할 수 없다는 걸 알리려고 했어요.” 민석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개월 동안 자신을 쫓아다닌 미래의 강민석은 어쩌면 십 년 전 누군가가 심어 둔 안전장치였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그게 실제 원장에 나타났죠?” “그걸 아직 모르겠어요.” 예린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시험용 경고가 운영 자료에 섞여 나오는 건 설계가 의도한 상태가 아니에요. 누가 그 경계를 없앴는지, 어떤 자료가 유출됐는지 확인해야 해요.” 준성이 문서를 펼쳤다. “여기에 경고문 작성 시점과 식별자가 있어요.” [2016.10.25 / M36-ORIGIN / 검증 문구 등록] 민석은 날짜를 봤다. 그날 이하은의 기록이 접수됐고 오연희의 보류 요청이 있었다. 당시 누군가 문제를 알아차리고 경고장치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경고가 사람의 권리를 지키지 못한 채 오히려 미래에서 온 메시지처럼 변해 있었다. 오후 한 시, 하은과 오연희는 각자의 대리인을 통해 공식적으로 원본 반환과 기록 정정을 함께 요구했다. 두 사람은 돈을 돌려받겠다는 의사와 자료를 돌려받겠다는 의사를 분리해 제출했다. 다른 당사자들도 같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세린은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는 절차 안내서를 만들었다. “모두에게 같은 결정을 강요하진 않을 겁니다.” 세린이 말했다. “누군가는 돈을 받고 싶을 수 있고, 누군가는 원본부터 확인하고 싶겠죠. 중요한 건 각자의 뜻이 그대로 남는 거예요.”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돈이 들어왔을 때와 달리, 이제 그는 누군가의 선택이 자신과 달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후 네 시, 외부 기관은 통합 위험 평가액 100억 원을 확정 채무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임시 조치를 통보했다. 2018년 서명 확인 절차의 진위를 조사하고, 이의신청을 유지하는 조건이었다. 송금된 돈의 권리 귀속과 반환 여부는 별도 절차로 남았다. 준성이 짧게 웃었다. “너 이제 백억 빚쟁이는 아닌 거야?” “원래도 확정된 빚은 아니었어.” 민석이 말했다. “그걸 납득시키느라 몇 달을 보냈을 뿐이지.” “그럼 삼겹살은?” 민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네가 사.” 그런데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서윤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그녀는 기사를 읽은 독자로부터 온 제보를 확인했다. 내용은 이상했다. 해당 독자는 2036년 가상 계정의 경고 문구와 거의 같은 문장을, 실제 업무용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도 그 계정이 살아 있다는 건가요?” 민석이 물었다. 예린은 급하게 단정하지 않았다. “문구만 복제했을 수도 있어요. 실제 계정 식별자와 실행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저녁, 민석은 오랜만에 혼자 집에 돌아왔다. 아직도 사용하지 못하는 정산금이 계좌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전처럼 잔액부터 열지 않았다. 세린에게서 온 정정 접수증과 하은의 의사 확인 문서를 차례로 읽었다. 누군가의 이름이 누군가의 허락 없이 바뀌지 않게 하는 문장들이었다. 밤 열한 시 오십구 분. 검은 원장이 알림 없이 켜졌다. 몇 달 동안 늘 보던 ‘내일의 잔액’ 숫자가 사라지고, 빈 입력칸 하나만 남았다. [미래 예측 기능: 일부 설명 완료] [가상 확인 주체: 2036 / 검증 중] [원본 무결성 경고: 작성자 확인] 민석은 처음으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미스터리는 아니었다. 누군가 만든 규칙과 누군가 외면한 경고 때문에 사람들이 손해를 봤다. 그러나 아직 설명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자신이 처음 화면을 열었을 때 어떻게 일부 거래를 하루 먼저 알았는지, 그 많은 정산 조건을 누가 수집했는지, 그리고 지금도 누가 화면을 갱신하는지. 화면에 새로운 질문이 나타났다. ‘예측을 중지하시겠습니까?’ 민석은 누르지 않았다. 대신 그 문장이 어느 시스템의 권한으로 나타났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을 저장했다. 그리고 원본 파일을 자신만 알고 있는 곳에 숨기는 대신, 검증 가능한 보존 절차에 맡길 준비를 했다. 다음 순간 화면이 바뀌었다. [긴급 공지: 모든 예상 거래 취소] [대상: 414명] [취소 시각: 2027.02.20 09:17] [승인 예정 주체: 강민석] 그 아래 붉은 글씨가 한 줄 더 떠올랐다. ‘이번에는 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내일이 삭제됩니다.’ 민석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414명. 오래전 공동 정산에서 확인했던 그 숫자가 돌아왔다. 눈앞의 버튼 하나로 다른 사람의 내일을 결정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즉시 세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아홉 시 십칠 분. 이번엔 돈이 안 들어온답니다. 그보다 무서운 건, 제 이름으로 414명의 거래를 취소한다고 해요.” 세린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승인하셨습니까?” “아니요.” “그럼 그 사실부터 보존하고, 실제 거래 기관들에 확인하겠습니다.” 민석은 창밖을 봤다. 겨울밤의 불빛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 불빛 아래 414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내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지켜야 할 것은 그의 통장 하나가 아니었다. 그는 검은 화면을 뒤집어 놓았다. 내일을 안다고 해서 그 내일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90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90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