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수요일 오전 여덟 시.
박준성은 민석의 전화를 받고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함께 밥을 먹고, 다투고, 자료를 뒤져 온 세월이 그 침묵 사이로 흘렀다. 민석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너도 똑같은 화면 떴어?”
“어젯밤부터.”
준성이 사진을 보냈다.
[위험 충당 예측 계정 이전 신청]
[기존: USER-2036]
[후보: 박준성]
[동의 확인: 미완료]
“누르지 않았지?”
“당연하지.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 내 회사 업무 계정으로도 비슷한 알림이 왔어.”
민석은 지하철 타려던 발길을 돌렸다. 둘은 세린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준성이 보여 준 업무 알림은 검은 원장처럼 검은 배경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협력업체 보안 알림 형식이었고, 문구도 조금 달랐다. 과거 검수 업무의 대표 연락처를 최신화하라는 요청이었다.
“이 두 시스템이 연결돼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어요.” 세린이 말했다. “하지만 유사한 시각에 같은 사람을 지목한 사실은 남겨 두죠.”
준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예전에 반대 의견을 남겨서, 그 기록을 이용해 나한테 책임을 넘기려는 걸까요?”
“누가 의도했는지는 아직 몰라.” 민석이 말했다. “다만 이번엔 네가 혼자 당하게 두지는 않을 거야.”
오전 열 시, 하은이 세온기록관리에서 원본 열람 결과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2016년에 대리 수령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금액 지급 여부와 상관없이 원본 자료 반환 및 기록 정정을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오연희도 자신이 보류 요청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별도 경로로 확인했다.
서윤은 두 사람의 허락을 받아,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처리한 후 다음 날 기사로 내보낼 준비를 했다. 그녀는 보도 문안을 읽고 또 읽었다. 제목은 화려하지 않았다.
‘입금됐지만, 받겠다고 한 적은 없다.’
민석은 그 제목을 보고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숫자보다 정확했다.
오후 한 시, 최유나와 예린은 2018년 시스템 설계 기록을 대조했다. 그곳에는 ‘원본 대조 요청 시 보류된 지급을 재평가’하는 규칙이 있었다. 원래는 당사자의 권리를 확인하기 위한 재검토 기능이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그 결과를 ‘미지급 금액 자동 정산’으로 연결하는 외부 연동이 추가됐다.
“우리가 서명을 대조한 순간 31,200원 지급 심사가 시작된 건 설명이 되네요.” 유나가 말했다.
“그런데 왜 원장은 하루 전에 그걸 알았죠?” 민석이 물었다.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예약된 일정을 먼저 표시했을 수 있어요. 2016년으로 표시된 확인 주체는 실제 사람이 아니라 과거 기록을 호출하는 키였을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내일 숫자를 맞히는 능력은...”
예린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예약과 조건을 보는 화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처음 시작된 날의 다른 예측까지 모두 설명됐다고 할 수는 없어요.”
누군가에게 초능력처럼 보였던 경험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민석은 오히려 그 불확실성이 마음에 들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근거 없는 확신보다 자신을 안전하게 만들었다.
오후 네 시, 준성의 업무 계정에 정식 회신이 왔다. 대표 연락처 변경 신청은 별도 본인 확인이 없으면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록되었다. 검은 원장에서는 ‘후보 지정 실패’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이번엔 막혔네.” 준성이 말했다.
“우리가 막은 거야?”
“아니. 회사에서 절차대로 확인한 거지.”
민석은 웃었다. 이 싸움의 주인공을 자기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저녁 여섯 시, 세린에게 외부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100억 위험 평가에 관한 정정 요구를 검토하겠지만, 관련 자동 정산 보고를 완전히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다른 수십 명의 권리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또 누군가의 지급을 막는 사람이 될 순 없죠.” 세린이 말했다.
민석은 하은의 문장을 떠올렸다. 돈만 받으면 목소리가 사라지는 계약. 그는 모든 지급을 멈추라는 요구 대신 수령 사실과 동의 사실을 분리하도록 하는 임시 처리 방안을 제안했다. 세린은 그 방안을 공식 검토 요청에 담았다.
밤, 검은 원장에는 새 숫자가 올라왔다.
[연동 계정 이전 실패]
[위험액: -10,000,000,000원]
[대체 책임 주체: 미지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이름이 나타났다.
[다음 검증 대상: 한서윤]
민석은 웃음을 거뒀다. 그 시스템은 누구든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부터 차례로 손을 뻗는 것 같았다.
제18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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