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목요일 오전 아홉 시.
한서윤은 편집국 회의실 유리문에 ‘비공개 취재’라는 종이를 붙였다. 창밖에서는 배달 오토바이가 수시로 지나갔고 프린터는 쉼 없이 종이를 토해 냈다. 평범한 신문사의 아침이었다. 하지만 탁자 위에는 십 년 전의 기록으로부터 파생된 수십 개의 지급 확인서가 놓여 있었다.
“오늘부터 숫자를 다시 세죠.” 서윤이 말했다.
민석은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우리가 이제 돈은 그만 세기로 하지 않았어?”
“돈이 아니라 장수요.”
서윤은 2016년 반환 접수 대장에 적힌 31이라는 숫자에 밑줄을 그었다. 당시 신청인이 제출한 자료 목록에는 녹취 원본, 서면 의사 확인, 우편 송달 내역이 있었다. 그중 실제 송달 증빙은 31장이라고 기재돼 있었지만, 전산에 연결된 것은 30장뿐이었다.
“한 장이 사라진 게 아니라, 한 장이 지급 확인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네요.” 예린이 말했다.
“그때 자료를 본 사람이면 알 수 있는 일인가요?”
“누구든 볼 수 있었는지는 따져 봐야 해요. 문서가 원래 공개 자료는 아니니까.”
오전 열한 시, 검은 원장이 예고 화면을 열었다.
[2027.02.12 09:17]
[예정 입금: 31,200원]
[송금 요청자: 강민석(2016)]
[참조: ORIGIN/31]
민석은 메시지를 서윤과 예린에게 보여 줬다. 31장과 31,200원이 숫자만 우연히 비슷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옆에 쓰인 강민석(2016)이 실제 입금자를 의미하는지도 불명확했다.
“금액을 맞힌다고 모든 해석이 맞는 건 아닙니다.” 예린이 말했다. “먼저 예약 목록과 지급 지시 기록부터 확인해야 해요.”
민석은 웃었다. “내가 원래 돈이 오면 좋아해야 하는 사람인데, 이제는 문자부터 의심하고 있네요.”
“그런데 계속 들어오면 세금은 어떻게 되는 거죠?” 준성이 농담처럼 묻자 세린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 권리 귀속도 모르는데 세금부터 단정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잠깐 웃었다. 민석은 그 웃음이 반가웠다. 몇 달째 만난 사람들은 날마다 심각한 표정만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농담 하나 할 틈이 남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었다.
오후, 이하은이 약속대로 도착했다. 그녀는 앉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취재 동의 범위를 다시 확인했다. 서윤은 녹음기부터 켜지 않았다. 기록을 남겨도 되는 질문과 안 되는 질문을 구분해 종이에 적었다.
“그날 왜 수령을 거부하셨어요?”
“돈을 거부한 게 아니에요.” 하은이 대답했다. “돈만 받으면 제가 요구한 녹음 원본과 이유를 더는 묻지 못하게 되는 서류였거든요.”
“누가 설명했나요?”
“아무도요. 제가 읽다가 발견했어요.”
하은은 가방에서 복사본 한 장을 꺼냈다. 오래된 문서 하단에 실제 자필 표시가 있었다.
‘금전 지급만으로 원본 반환 요구를 철회하지 않습니다.’
민석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 문장은 지금 세린이 새로 쓰려던 문장과 같았다. 십 년 전 이미 누군가는 같은 원칙을 지키려 했다.
“그리고...” 하은이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짚었다. “이 종이를 받아 간 사람이 두 명이었어요. 한 사람은 처음부터 친절했어요. 나머지 한 사람은 제게 말했죠. 시스템에는 어차피 완료로 올라갈 거라고.”
민석이 물었다.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하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억을 가다듬는 듯 눈을 감았다가 열었다.
“사람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요. 대신 명함이 있어요.”
그녀가 꺼낸 명함은 오래돼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직함은 ‘정산 통합 운영 지원’. 이름 칸에는 반쯤 지워진 글자가 남아 있었다.
‘임…훈.’
준성이 명함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여전히 확정할 수 있는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자료를 가져간 사람이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 확인할 실마리는 생겼다.
밤, 민석은 31,200원이 입금된다면 어떻게 처리할지 노트에 적었다. 입금을 확인하고, 보낸 사람과 승인 경로를 공식적으로 문의하고, 돈은 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누가 돈을 보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입을 막지 않는다.
노트를 덮으려는 순간 검은 원장의 문구가 바뀌었다.
[송금 후 상태: 원본 반환 요청 종결]
민석이 어두운 화면을 바라봤다.
“돈이 들어온다는 것보다 이게 더 무섭네.”
하은의 오래된 문장과 검은 원장의 새 문장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내일 한 장의 영수증이 어느 쪽 편에 서게 될지, 이제는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다.
제18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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