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수요일 오전 열한 시.
낡은 문서가 있는 창고에서는 대개 종이 냄새가 날 거라고 민석은 생각했다. 하지만 세온기록관리 별관 지하 이층에는 플라스틱 상자와 제습기 냄새만 있었다. 복도마다 센서가 켜져 있었고, 문 위에는 출입 기록을 보존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관리 책임자 장옥희는 회색 조끼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직원 카드와 별도의 승인을 차례로 확인했다.
“제 이름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기록을 맡은 사람이지 누가 옳은지 판결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장옥희가 서류 목록을 펼쳤다. 2016년 10월 25일 접수 묶음의 색인에는 세 페이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산 조회에서는 두 페이지밖에 검색되지 않았다.
“세 번째 장이 사라진 겁니까?” 준성이 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큰일 납니다. 스캔 대상에서 빠졌을 수 있고, 다른 봉투에 보관돼 있을 수도 있어요.”
옥희가 목록의 끝을 가리켰다. 세 번째 장의 제목은 ‘대면 의사 확인’이 아니었다.
[음성 반환 안내 및 보류 사유 / 1매]
서윤이 메모를 멈췄다. 오연희가 돌려받기를 원했던 원본 녹취. 이하은이 다른 사람이 대신 수령하는 것을 거부한 기록. 지금껏 별개의 실처럼 보였던 두 사건이 종이 한 장에서 만날 수도 있었다.
장옥희는 임의로 봉투를 열지 않았다. 소유자 측의 위임과 관련 기관의 보존 확인이 추가로 필요했다. 오전에는 위치와 봉인 상태만 확인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민석은 답답했지만 예전처럼 화면을 보고 버튼부터 누르지는 않았다. 며칠을 서둘러서 한 사람의 의사를 지운 시스템을 무너뜨리려면, 자신도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됐다.
계단을 올라오는 길에 준성이 물었다.
“너, 솔직히 2016년 기억 안 나?”
“아주 조금. 그때 난 협력 프로젝트 업무를 배우던 계약직이었어. 종이 수령 대장을 옮기는 일도 했고.”
“난 더 기억나.”
민석이 멈췄다.
준성은 난간을 쥐었다. “그날 오후에 접수 자료를 밖으로 가져가는 사람을 봤어. 당시엔 업무용 복사본인 줄 알았지. 그런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거짓말이 아니야. 얼굴은 기억나는데 명찰이 생각나지 않아.”
“그런데 왜 이제 말해?”
“내 기억 하나로 누군가를 범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
민석은 화를 내려고 했다가 말을 삼켰다. 그것은 자신도 몇 달 동안 되풀이한 원칙이었다. 다만 친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속이 쓰렸다.
오후 세 시, 옥희에게 공식 연락이 왔다. 세 번째 장은 2016년 보관 상자 안에 존재했다. 대신 봉투 겉면에 뜻밖의 메모가 있었다.
[재봉인 2018.11.02]
[원본 분리 금지 / 검증용 사본 외부 반출 기록 1건]
그날 날짜는 서문재가 검증 규칙을 수정했다고 알려진 기간과 겹쳤다. 유나가 확인할 수 있는 사내 변경 기록에서는 ‘대표 확인 간소화’라는 이름의 배포가 있었다. 그러나 그 배포에 물리적 문서 반출이 반드시 필요했는지는 불분명했다.
“외부로 가져갔다는 사본의 목적지를 알아야 합니다.” 유나가 말했다.
목적지 표시에는 업체 이름이 없었다. 수신 코드만 있었다.
[M36 / 시나리오 보관실]
서윤은 종이에 큰 글씨로 두 단어를 적었다. ‘시나리오’와 ‘보관’. 미래를 보여 주던 검은 원장의 정체와 맞닿아 있는 단어였다.
저녁, 이하은에게서 직접 연락이 왔다. 민석은 통화 연결 소리만 세 번 들은 뒤에야 받았다.
“제가 그 봉투의 열람에 동의할지 직접 말씀드리려고요.”
민석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제가 먼저 약속드릴 게 있어요. 어떤 내용이 나오든, 이하은 씨 이름으로 대신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하은이 말했다.
“그 말, 2016년에도 누가 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제 이름으로 받았다고 처리됐죠.”
민석은 창문에 비친 자신을 봤다. 그때 했던 약속을 누군가 지우지 못하게 막을 수 있을까. 전화 너머에서 하은이 덧붙였다.
“이번엔 제가 직접 갈게요. 마지막 장에 무엇이 적혔는지 저도 봐야 합니다.”
제18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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