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토요일 오전 열한 시 십 분.
강민석은 창밖에 앉은 비둘기를 보다가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검은 원장에는 어젯밤부터 같은 숫자가 떠 있었다. 31,200원. 다음 주 월요일 아홉 시 십칠 분 입금 예정. 송금 요청자 강민석. 그리고 이번에는 예약 행이 아직 생성되지 않았다는 설명.
처음 원장을 봤을 때라면 그는 그 돈을 얻으려고 주말 내내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누군가와 거래를 만들고, 자신 명의로 이체할 계좌를 찾고, 결국 예고가 맞았다는 사실에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예언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예언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그는 노트에 선을 그었다.
'2027.02.05 22:40 / 검은 원장의 주장: 2월 8일 +31,200원, 요청자 강민석.'
'2027.02.06 11:10 / 본인이 아는 범위의 요청 기록: 없음.'
예정된 송금을 취소하거나 테스트를 위해 새로 만드는 일도 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시도를 하든 자기가 결과에 손을 대게 될 것이었다.
정오 무렵 한서윤이 도시락 두 개를 들고 방문했다. 주말에 자료를 정리하는 민석을 보고 그녀는 혀를 찼다.
“이젠 주말에도 회계 감사입니까?”
“떡볶이 먹으러 오신 건 줄 알았는데요.”
“일단 먹어요. 3만 1,200원은 도대체 무슨 돈인데요?”
“몰라요. 저는 보낸 적도 없고요.”
서윤은 젓가락을 멈췄다.
“그럼 이번엔 원장을 끄고 지낼 수 있어요?”
민석은 잠시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돈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태를 견디는 일은 처음 미래를 안다고 믿었을 때보다 훨씬 어려웠다.
“끄는 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끈다고 다른 사람이 대신 거래하도록 두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확인할 수 있는 건 확인하되, 그 숫자대로 살지는 말자는 거군요.”
“네.”
오후 한 시, 해온보관서비스의 김태완은 주말 근무 중 공식 문의 접수 확인을 보내왔다. 민석은 2월 8일자로 자신 명의의 예정된 지급 지시가 있는지, 있다면 누가 확인할 권한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김태완은 현재 제공 가능한 자료에 해당 금액의 예약 행이 확인되지 않으며 다른 기관의 지급 지시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민석은 그 답변을 출력했다. 원장에 표시된 '예약 행 미생성'을 외부 자료가 일부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은행과 결제망을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없다'와 '절대로 없다'를 섞을 이유가 없었다.
이른 오후 예린과 최유나가 화상으로 참여했다. 둘은 오래된 검증 규칙에 남은 숨은 열 하나를 발견했다. 이름은 '차액 발생 이전 시점'. 2018년에는 계산이 실행되기도 전에 그 계산의 결과처럼 보이는 항목을 표시할 수 있었다. 테스트 환경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운영환경에서 잘못 연결되면 예고가 거래의 원인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돈이 들어오면 원장이 맞는 거고, 안 들어오면 조건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 구조군요.” 민석이 말했다.
“일부 화면은 그럴 수 있어요.” 예린이 답했다. “하지만 이번 31,200원을 누가 썼는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최유나가 화면을 확대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이 금액에는 통상적인 배치 번호가 없어요. 대신 원본 요청의 해시처럼 생긴 참조값만 있어요.”
“무슨 참조값이요?”
“R-00도 M-00도 아닙니다. 'MS-SELF'.”
민석은 침을 삼켰다. 자기 자신의 이름을 영문으로 줄인 것 같았지만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문자열이었다. 그는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자기 서명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오후 네 시, 정다연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연희는 원본 반환 진행 설명을 받았고, 다음 정식 대조 일정에 관한 안내를 기다리겠다는 의사를 남겼다고 했다. 서윤은 그 소식을 기사에 넣지 않았다. 연희는 공개를 동의하지 않았고, 민석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돈 이야기만 하다가 사람을 잊을 때마다 연희 씨가 다시 알려 주네요.” 민석이 말했다.
다연은 답했다.
“그분은 누굴 가르치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 자기 일을 자기 말로 끝내고 싶은 거죠.”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 너머에서는 보이지 않는 동작이었다.
저녁에는 준성이 찾아왔다. 손에는 한 장의 오래된 급여명세서가 들려 있었다. 서윤이 손으로 만류하자 그는 바로 봉투에서 꺼내지 않았다. 자신의 자료라고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보여 주겠다며 혜라의 검토를 먼저 받겠다고 했다.
“왜 급여명세서예요?” 민석이 물었다.
“3만 1,200원.” 준성은 작은 메모지를 내려놓았다. “2016년 10월, 네가 프로젝트를 그만두면서 정산받지 않았다고 하던 야근 수당이 딱 그 금액이었어. 내가 어제 기억해 냈어.”
민석의 손이 멈췄다.
“말도 안 돼. 그런 금액을 어떻게 기억해?”
“완전히 기억한 건 아냐. 옛 계정 정리하다가 메모를 찾았어. 금액이 같아서 가져왔지.”
“그 돈을 제게 보내실 생각이셨습니까?”
“아니. 아직 그런 요청도 하지 않았어. 왜 그 돈을 네가 못 받았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들은 그 자리에서 돈을 보내기로 하지 않았다. 2016년의 근로 기록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했고, 그때의 금액과 이번 예고가 같은 의미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민석은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1원이 그랬듯 31,200원 역시 오래된 표의 숫자일 수 있었다. 누가 그 표를 읽을 수 있었는지, 왜 검은 원장이 먼저 보았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밤 열한 시, 원장이 다시 켜졌다.
[2027.02.08 09:17 / +31,200원]
[송금 요청자: 강민석]
[실제 송금 의사 확인: 미완료]
[원본 자료 생성 연도: 2016]
그다음 문장 앞에서 민석은 숨을 멈췄다.
'지금의 강민석은 이 돈을 보낼 수 없다.'
“그러면 누구라는 거야.”
마지막 줄이 나타났다.
[요청자 구분: 강민석(2016)]
[동일인 본인 확인: 미완료]
[송금 요청 접수 시각: 2027.02.08 09:17]
민석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십칠 분에 접수되는 송금 요청을, 토요일 밤에 이미 예고한 셈이었다. 누군가 예약표를 더 늦게 만들 예정일 수도 있었고, 이미 만들어진 다른 기록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이름이 자기 과거와 닮았다고 해서 자신의 뜻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노트에 적었다.
'2016년의 나를 믿기 전에, 2027년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검은 원장을 침대 서랍에 넣었다.
월요일까지 이틀.
그동안 그는 숫자를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돈이 누구의 결정인지 묻는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제18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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