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금요일 오전 아홉 시 칠 분.
강민석은 회의실 벽시계를 보고 숨을 골랐다. 열 분 뒤, 해온보관서비스의 예약 시스템에는 금액 0원으로 기록된 확인 이벤트가 실행될 예정이었다. 돈이 오가지 않는 요청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반환 의사를 확정으로 처리할 위험은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오연희가 직접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다연을 통해 확인된 연희의 의사는 분명했다. '현재 반환 상태를 설명해 달라. 수령 완료나 합의 완료로 적지 말라.' 담당자는 그 범위를 공식 처리 기록에 남겼다.
아홉 시 십 분, 김태완이 정식 회신을 보냈다. 금일 확인 이벤트는 자동 완료 통지로 발송하지 않으며, 권리자에게 필요한 안내가 있다면 별도 동의와 발신 주체 확인을 거친다는 내용이었다.
아홉 시 십칠 분.
검은 원장에 한 줄이 떠올랐다.
[원본 권리자 확인 완료]
[정산 잔액: 0원]
민석은 화면을 내려다봤다. 태완에게서 받은 공식 회신에는 '요청 처리 보류'라고 적혀 있었다. 시스템 운영사에서 확인한 것도 금전 이동 없음과 동의 확인 전 확정 처리 중지였다. 장치만 자기 혼자 완료를 선언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원장도 일관성이 있네요.” 서윤이 말했다.
“무슨 일관성이요?”
“현실이 어떻든 자기한테 유리한 결말을 먼저 써 버리는 거요.”
민석은 웃으려다가 멈췄다. 기자가 말하는 문장이 십 년 전의 회사 회의록과 너무 비슷했다. 나쁜 결말은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한 번 시스템에 들어가면 마치 자연법칙처럼 반복됐다.
오전 열한 시, 해온보관서비스는 1원 거래에 대한 추가 내부 조사 결과를 전달했다. 예약 행이 작성된 1월 17일 당시, 잔액 표시값을 실제 지급 요청으로 변환하는 설정이 시험 운영 범위에서 활성화돼 있었다는 것이다. 활성화 요청은 오래된 R-00 배치의 유지보수 계정으로 접수됐으며, 해당 계정의 권한 적정성과 승인자를 감사 중이라고 했다. 은행 자금의 최종 출처는 아직 따로 확인해야 했다.
“그러면 적어도 1원 입금을 미래에서 직접 송금한 건 아니라는 단서가 나온 셈이네요.” 준성이 말했다.
“그건 처음부터 없던 주장이어야 했습니다.” 예린이 답했다. “입금할 수 있는 거래 경로가 확인된 거죠. 하지만 누가 원장에 그걸 보여 줬는지는 여전히 모릅니다.”
민석은 노트의 두 칸을 다시 채웠다. '실제 입금의 가능 경로'에는 1월 17일 작성된 예약 행을, '원장 표시의 원인'에는 미확인을 적었다. 서로 닮은 질문에 같은 답을 억지로 붙이지 않았다.
점심시간, 박준성은 혼자 은행 근처 분식집으로 갔다. 민석은 나중에 그를 따라갔다. 둘은 오래전과 비슷한 자리에 앉았지만 대화는 달랐다.
“그때 넌 돈 벌 수 있다면서 나한테 뭐든 하자고 했지.” 준성이 말했다.
“그때의 저는 내일 일어날 일을 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보는 걸지도 모르죠. 예정된 거래일 수도 있고, 누가 만들어 놓은 선택지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게 있어요.”
“뭔데?”
“원장이 보여 줬던 걸 제가 아무리 피하려 해도 비슷한 결과가 벌어질 때가 있었어요. 저한테 그게 가장 무섭습니다. 누가 예정표를 보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제가 그 예정표대로 움직이게 된 건지.”
준성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무도 내일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게 더 용기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날 오후, 최유나는 과거 시험 데이터의 변경 이력을 공식 감사 자료와 대조했다. 어느 버전에는 '처리 완료 예정'이라는 이름으로 결과가 기록돼 있었고, 이후 버전에서는 같은 열 이름이 '예상 결과'로 바뀌어 있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그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달라질 수 있었다.
“내일의 잔액.” 민석이 중얼거렸다.
“네?” 유나가 물었다.
“처음 봤던 화면도 그랬어요. 예상이나 조건부라는 말은 작게 쓰고, 잔액이라는 말만 크게 보여 줬거든요.”
유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답했다.
“그런 화면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게 당신 휴대전화에 나타난 이유를 지금 문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해가 저물 무렵 민석은 은행 앱의 알림을 확인했다. 1원은 여전히 계좌에 남아 있었고, 1천만 원의 권리 관계도 조사 중이었다. 그는 어느 돈도 쓰지 않았다.
밤 열 시 사십 분. 검은 원장에 새 거래 예고가 나타났다.
[2027.02.08 09:17 / 입금 예정]
[입금 금액: +31,200원]
[송금 요청자: 강민석]
민석은 화면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자기 이름으로 돈이 들어온다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송금 요청자가 자기 이름이라는 건 달랐다. 그는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아래에는 낯선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이번 예약 행은 아직 생성되지 않았다.'
민석은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잡았다. 이번에는 누구의 예정표를 들여다본 걸까. 예정표가 없다면 원장은 무엇을 읽고 있는 걸까.
제179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