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월요일 오전 여덟 시 사십 분.
강민석은 세온기록관리의 회의실 문을 열었다. 책상 위에는 오늘 해야 할 일이 세 줄로 적혀 있었다.
첫째, 1원을 임의로 반환하지 않는다. 둘째, 수령 확인과 권리 확인은 구분한다. 셋째, 누군가에게 발송될 잘못된 안내를 막되, 발송 사실을 지우지는 않는다.
서윤은 맨 아래 줄을 읽고 고개를 기울였다.
“이젠 원장보다 회의실 화이트보드가 더 무섭겠어요.”
“화이트보드는 누가 쓴 건지라도 알 수 있잖아요.” 민석이 대답했다.
혜라는 발신 주소를 확인한 법인과 정산대행사에 이의 의견이 접수됐음을 알렸다. 예린과 유정호는 그간 받은 회신을 대조해 2018년 안내 템플릿이 여러 운영사의 시스템에서 사용됐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누구도 통제 권한이 없는 서버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실제 권한이 있는 회사들에 처리 내역을 증빙해 달라고 요구했다.
여덟 시 오십오 분, 발신 법인의 담당자가 유선으로 답했다.
“현재 확인되는 기록상 해당 서류는 활성 계약에 따라 발송된 정식 통지로 등록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위조입니까?” 민석이 물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과거 발송 대행 시스템의 백업 항목에서 출력됐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발송됩니까?”
“그 부분은 아직 확인 중입니다. 보존 요청과 함께 신규 발송 중지 여부를 내부 검토하겠습니다.”
명확하지 않은 답이었다. 그래도 민석은 담당자의 이름과 회신 시간을 적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말을 문서에 남겨 두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선택을 대신 완료라고 쓸 수는 없었다.
아홉 시 십 분. 검은 원장에 붉은 띠가 나타났다.
[1원 정정 마감까지 00:07:00]
[반송 예정 계좌 자동 생성]
아래에는 낯선 계좌번호가 표시됐지만 은행명과 예금주를 뒷받침하는 공식 자료는 없었다. 민석은 화면을 캡처했다. 돈을 보내지는 않았다.
준성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진짜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공식 문의는 이미 접수됐어요.”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이걸 기록하는 거예요. 누구나 설명할 수 있게.”
아홉 시 십칠 분.
검은 원장이 잠깐 검게 꺼졌다. 곧 화면 중앙에 굵은 글씨가 나타났다.
[반환 확인 완료]
[정정 금액: 1원]
[대리 수령 서명: 강민석]
민석은 순간 손을 움켜쥐었다.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는데 또 자기 이름이 서명란에 들어갔다. 그러나 은행 앱에는 추가 출금도 입금도 없었다. 은행 고객센터에서 확인되는 거래는 전날까지와 동일했다.
“그쪽 로그는요?” 민석이 물었다.
유정호가 공식 회신을 읽었다.
“지급 대행 쪽에서는 이 건에 관한 자동 반송 지시는 접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장에 표시된 서명은 외부 화면의 값일 뿐, 현재 확인된 공식 거래 승인과는 일치하지 않아요.”
민석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온 열이 조금 식었다. 서윤은 취재 수첩을 덮었다.
“또 자기 혼자 끝냈다고 하네요.”
“그러게요. 끝났다는 말부터 조사해야겠어요.”
잠시 뒤 발송 대행 법인이 새 회신을 보냈다. 과거 템플릿에서 사용된 자동 완료 문구가 비활성 안내 항목에 남아 있었고, 실제 발송 가능 여부를 확인할 때까지 해당 항목의 재사용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다른 기관까지 같은 조치를 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정다연의 전화였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연희 씨에게 오늘 아침 이상한 안내가 갔대요.”
“어떤 안내요?”
“2016년 반환 요청이 원만하게 완료됐다는 문자요. 발신자는 예전 담당 기관 이름이에요.”
민석의 시선이 멈췄다.
“원본은 아직 보관 절차 중인데요.”
“그러니까요. 연희 씨가 그 문자를 받고 한동안 말을 못 했어요. 열 해 전에 들었던 말이랑 똑같다고.”
민석은 죄송하다는 말을 삼켰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미안하다는 감정이 아니라 그 안내를 보낸 곳에 정정 요청을 넣는 일이었다.
혜라는 연희의 동의를 확인한 범위 안에서 발신 기록 보존과 정정 설명을 요구했다. 세온이 할 수 있는 일과 발신 기관이 해야 하는 일을 분리했다. 기관 담당자는 잘못된 완료 안내인지 조사하겠다고 답했고, 즉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해가 진 뒤 민석은 다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희 씨는 어떠십니까?”
“오늘은 전화받기 싫어하세요. 그런데 한 문장 남기셨습니다.”
“뭐라고요?”
“'완료라고 보내지 말고,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보내 달라'고요.”
민석은 그 문장을 그대로 노트에 적었다. 하루를 정리하는 유일한 제목이었다.
밤 열 시, 검은 원장은 마치 농담을 하는 것처럼 새 숫자를 내놓았다.
[1원 반환 확인 완료]
[원본 반환 상태: 미확인]
[잔여 확인 건수: 11건]
두 문장 사이의 모순을 보며 민석은 웃지 않았다. 원장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줄일수록 자기 화면을 깔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화면이 깨끗해진 만큼 누군가의 현실은 더 지저분해졌다.
다음 줄이 나타났다.
[숨겨진 지급 지시 생성자: 조회 가능]
[단, 2016년 원본 서명 사용을 승인할 것]
이번에는 정말 오래된 질문이었다. 남의 권리를 확인하려면 먼저 자기 권리를 내놓으라는 조건. 민석은 화면을 닫았다. 그 사람을 찾는 길이 반드시 이 버튼 하나일 리 없었다.
제17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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