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수요일 오전 아홉 시.
강민석은 은행에 가지 않았다. 오늘은 세온기록관리의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은행 계좌는 전날까지 정상이라는 확인을 받았고, 지금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외부 검증 자료가 누구의 권리를 대신 확정하는 일이었다. 초조하다고 같은 창구를 다시 찾는 것보다, 정해진 절차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편이 중요했다.
회의실에는 세린, 예린, 유정호, 정태겸이 참석했다. 박준성은 한쪽에서 자료 목록을 정리했고 한서윤은 회의의 취재 가능 범위를 다시 확인했다. 최유나는 별도 화상 연결로 참여했다. 본인 동의가 없는 개인 기록은 기사나 공유 화면에 띄우지 않았다.
“실제 확인되는 항목부터 읽겠습니다.” 정호가 말했다.
정산대행사의 공식 회신은 두 가지였다. M-00 보조키를 이용한 자동 확정 경로가 중단됐다는 것, 그리고 예비 정산 보관함의 결과가 기존 외부 배포처로 전송될 때도 ‘원본 확인 대기’ 표시를 유지하도록 설정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배포처의 반영 여부는 추가 확인 대상이었다.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직 끝난 건 아니죠.”
“오늘 확인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진 거예요.” 예린이 답했다.
아홉 시 십분.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원본 이관 확인서 제2부]
[예정 실행: 09:17]
[실행 조건: 미열람]
[대체 확인: M-00]
“열지도 않았는데 미열람이 실행 조건이야?” 민석이 소리 내어 말했다.
서윤이 반대편에서 물었다. “이번엔 누르실 건가요?”
“아뇨. 안 누를 겁니다.”
“왜요?”
“거절하는 것도 누군가의 화면에서 완료로 바뀔 수 있으니까. 누르고 안 누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제 의사를 그 화면 밖에 남겨야 해요.”
그는 이미 접수된 이의신청 번호와 발신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상대 회사에 보낸 문장에는 제2부를 열람하거나 수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임의의 대리 확인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뜻이 명시되어 있었다.
아홉 시 십육 분.
대기 중이던 화면이 붉게 변했다.
[거래 확인 주체 미지정]
[기한 초과까지 00:60]
민석은 숨을 세었다. 누구라도 다급해질 수 있는 숫자였다. 그는 검은 원장을 책상 위에 뒤집어 놓았다.
아홉 시 십칠 분.
동시에 세 가지 일이 일어났다.
첫째, 검은 원장에 ‘자동 확인 완료’라는 문장이 번쩍 나타났다. 둘째, 정산대행사의 공식 시스템에는 해당 요청이 자동 확정되지 않고 검증 대기로 남았다는 회신이 접수됐다. 셋째, 민석의 은행 계좌는 정상 상태를 유지했다. 거기에 -1원이 빠져나간 기록도 없었다.
“세 문장이 서로 다릅니다.” 예린이 말했다.
민석은 검은 원장을 다시 들어 화면을 보여 주었다. 예린은 각 표시의 출처를 별도 항목으로 정리했다. 원장의 주장과 공식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느 쪽도 이유까지 바로 밝혀 준 것은 아니었다.
정호가 정산대행사 담당자에게 공식 경로로 확인했다. 그가 받은 답변은 간단했다. “동의가 확인되지 않은 요청은 확정으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만든 사본의 정정 반영은 계속 추적합니다.”
그제야 민석은 가슴을 누르던 무언가가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미래를 알려 준다는 장치가 ‘완료’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그 문장으로 어떤 사람의 결정을 대신 만들지 못했다. 적어도 오늘 확인된 경로에서는 그랬다.
“성공했네요.” 준성이 말했다.
“일부는요.” 민석이 답했다. “아직 누군가의 과거가 그 표 때문에 잘못 적혀 있을 수 있어.”
서윤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래도 오늘은 중요한 날이에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적은 날이니까.”
점심이 가까워질 무렵 정다연에게서 오연희의 짧은 안부가 전해졌다. 연희는 반환 절차의 다음 설명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연락하지 않은 것을 포기라고 적거나, 기다리는 것을 수령이라고 쓰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민석은 그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
오후 세 시, 은행에서 천만 원 입금 관련 문의가 아직 조사 중이라는 회신이 왔다. 정당한 권리자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고, 임의 반환도 권하지 않았다. 민석은 돈을 쓰지 않은 상태를 유지했다. 통장에 들어온 돈이 자기 것이라는 확신을 얻으려고 이번 사건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
퇴근길에 준성이 오래된 주먹밥 가게 앞에서 물었다.
“이제 검은 원장 안 열 거야?”
“필요하면 열겠지. 그런데 내 인생의 결재권을 넘겨주진 않을 거야.”
“너 참 많이 달라졌다.”
“돈 벌고 싶었던 마음은 안 달라졌어.”
준성이 웃었다. 민석도 따라 웃었다. 그들은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한동안 아무 숫자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날 밤 열한 시 오십구 분, 검은 원장의 ‘자동 확인 완료’ 문장은 사라졌다. 대신 짧은 로그 한 건이 남았다.
[대체 주체 M-00 / 확인 대기 유지]
[2016년 서명 표본 / 승인 권한 없음]
[2036년 서명 이미지 / 원본 미검증]
그 아래 처음 보는 행이 추가됐다.
[2027.01.28 09:17 / 실제 거래 예고]
[입금 예정 금액: +1원]
[송금 요청자: 확인 불가]
[원본 사유: 정산 차액 반환]
민석은 잠시 웃었다. 백억 원, 천억 원, 천만 원을 거쳐 마침내 내일 들어올 돈이 단돈 1원이란다. 그는 예전처럼 곧바로 투자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은행에 실제 입금이 생기는지 확인하고, 생긴다면 출처를 묻겠다고 메모했다.
그때 원장 가장 아래에 문장이 하나 더 나타났다.
‘이번 1원은 미래에서 온 돈이 아니다. 네가 2016년 10월 25일에 남겨 둔 돈이다.’
민석은 웃음을 멈췄다.
그 날짜는 그의 첫 반환 요청이 기록된 날이었다. 사람에게 원본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의 날짜. 그런데 십 년도 넘게 지난 지금 그 약속이 어떻게 실제 은행거래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일까.
휴대전화에 마지막 알림이 떴다.
[거래 참조번호: R-00 / 반환 잔액]
[상세 기록 열람: 수취인의 별도 동의 필요]
이번에는 금액이 아니라 문장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원장은 또다시 누군가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수취인의 동의가 필요한지 아직 알지 못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 십칠 분.
그는 1원짜리 입금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확인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엇을 얻을지보다 누구의 선택이 그 돈에 담겼는지 먼저 물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17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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