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월요일 오전 아홉 시 반.
서문재는 회사 회의실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정장을 입었지만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앞에 놓인 종이컵의 커피가 식어 있었고, 그 옆에는 한때 거래처를 설득하려고 들고 다녔을 두꺼운 기획서가 놓여 있었다.
“이번에는 제가 아는 걸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세린은 면담 목적과 기록 방식을 확인한 뒤 녹음을 시작했다. 서문재는 동의했다. 강민석은 질문지를 펼쳤다. 적어 놓은 순서는 이름이 지워지는 문제, M-00의 사용, 그리고 서명 형식의 생성 시점이었다.
“2018년에 미래 날짜가 적힌 이관 확인서를 만든 이유가 뭡니까?”
문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대답했다.
“2016년에 만든 문서의 보존 기한이 십 년이었어요. 보존 종료 날짜에 자동으로 재확인 통지를 보내자는 기능이었습니다. 사람이 기다렸다가 입력하는 게 아니라 미리 양식을 만들어 두는 방식이었죠.”
“그럼 서명이 찍혀 있는 건요?”
“양식 테스트에서 쓰던 이미지가 들어갔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실제 확인 기록에 남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세린이 물었다.
문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포 전에 내용 확인을 충분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2018년 승인 서류의 부록을 보여 주었다. ‘보존 기한 도래 통지 예약’이라는 항목 밑에 ‘실물 원본 확인 전까지 서명 무효’라는 문구가 있었다. 서류 자체가 진본인지, 운영 화면에 같은 조건이 구현됐는지는 확인이 필요했다.
“제가 만든 위험이 이겁니다.” 문재가 말했다. “빈 서명란이 있는 양식을 만들었고, 누군가 그 빈칸을 채워도 된다고 생각하게 한 거죠.”
민석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때 제가 반대했던 이유가 이제는 기억납니다. 완료를 예약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기억이 정확한지 단정할 수는 없겠죠.”
“네. 회의록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의 기억보다 기록을 먼저 대했다. 그것만으로 지난 십 년의 결과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오늘 또 다른 오해를 만들 가능성은 줄었다.
오후에는 정산대행사에서 공식 점검 결과의 일부가 전달됐다. 익명 테스트 자료로 수행한 재현 시험에서, ‘확인 불가’ 결과가 M-00 보조키를 통해 ‘대체 주체 지정’으로 바뀌는 경로가 확인됐다는 내용이었다. 담당자는 그 경로를 임시 차단했고, 배포처에 통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럼 수요일 실행은 막힌 겁니까?” 민석이 물었다.
“해당 운영 경로는 막혔다는 회신입니다.” 유정호가 말했다. “하지만 오래된 복제본이나 독립된 배포처가 있는지는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모든 거래가 정상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죠.”
그날 오후 윤혜라에게도 중요한 소식이 왔다. 오연희의 동의 범위에 따라 제한된 보존 상태 대조를 진행했고, R-00 봉투 안에 실제 녹취 매체와 설명 서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용 재생은 적법한 열람 절차로 따로 검토하기로 했으며, 공개용 사본은 만들지 않았다.
“그럼 연희 씨의 목소리가 거기에 있는 건 확실합니까?” 민석이 물었다.
“매체의 존재가 확인된 것입니다.” 혜라가 바로 답했다. “어떤 목소리가 담겼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민석은 그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존재와 내용, 보관과 사용, 받았다는 기록과 실제 수령. 이야기 내내 분리해야 했던 단어들이었다.
해 질 무렵 한서윤은 기사 초안에 문장을 하나 추가했다.
‘확인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것으로 바꾸는 순간, 오류는 개인의 문제가 된다.’
편집장은 숫자가 적어서 약하다고 했지만 기사를 막지는 않았다. 서윤은 71건을 71명이라고 적지 않았고, 제2부 영수증의 발신자도 미래의 강민석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밤 열 시, 민석의 휴대전화에 다시 검은 원장이 떴다.
[자동 보정 최종 실행: 2027.01.27 09:17]
[현재 작업 경로: 임시 차단]
[잔여 경로: 1개]
그 아래에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나타났다.
[잔여 경로: 예비 정산 보관함 / M36-ORIGIN]
민석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열 해 전 최초 원장을 가리키던 명칭이었다. M-00을 막아도 M36-ORIGIN에서 별도의 기록을 내보낼 수 있다는 뜻일까.
그는 화면을 저장하고 전화를 걸었다.
“유정호 씨, 아직 한 군데 남았어요.”
정호는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그 화면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지만, 그 명칭이 실제 보관 시스템에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우선 외부 업체에 보존과 차단 여부를 문의합시다.”
그날 민석은 늦게까지 불을 끄지 못했다. 잘못된 기능을 하나 막을 때마다 더 오래된 이름이 나타났다. 뿌리가 어디까지 내려가 있는지 이제는 끝을 보고 싶었다.
제16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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