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토요일 오전 열 시.
강민석의 집에는 모처럼 사람이 많았다. 식탁 위에는 노트북 두 대와 충전선, 쓰다 만 포스트잇이 뒤엉켜 있었다. 현관에는 박준성이 가져온 귤 한 상자와 한서윤의 검은 운동화가 놓여 있었다. 정식 조사 회의가 아니었다. 서로 허가받아 열람할 수 있는 자료만 가져와 사실관계에 대한 질문을 정리하는 자리였다.
“집에서 이렇게 모일 거면 적어도 식탁 좀 닦지.” 서윤이 말했다.
“어젯밤까지 난 내 이름이 지워지는 줄 알았어요.” 민석이 대꾸했다.
“이름이 지워져도 먼지는 남잖아요.”
준성이 웃다가 귤을 깠다. 긴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껍질의 상큼한 냄새가 났다. 민석은 그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이전에는 특별한 능력으로 남보다 먼저 미래를 알게 됐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지금은 식탁에서 귤을 까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근거를 갖고 들어 준다는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유정호가 화상회의로 접속했다. 그는 정산대행사에서 제공한 익명화된 예시 결과의 설명 문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71건은 사람 수가 아닙니다.”
민석이 의자를 당겼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외부 검증 요청 중 동일 보정 규칙을 사용한 로그 묶음이 71건이라는 겁니다. 한 사람이 여러 번 조회됐다면 복수 건이 될 수 있고, 서로 다른 사람도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실명과 연결된 수는 이 자료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검은 원장이 어젯밤까지 ‘일흔 명’이라고 표현한 숫자가 단순 요청 건수일 가능성이 드러났다. 서윤은 노트에 굵게 썼다. ‘원장 숫자는 사람 수로 확정 불가.’
“그럼 그동안 원장이 나한테 선택하라고 한 것도 근거가 없는 거군요.” 민석이 말했다.
“선택을 강요하려는 화면은 맞았지만, 그 선택이 실제 시스템의 유일한 분기라는 근거는 없다는 겁니다.” 유정호가 답했다.
준성은 손가락으로 과거 사업성 보고서를 넘겼다. “확정으로 처리하는 게 좋은 기능처럼 보였겠지. 고객센터 민원도 줄고 처리 시간도 빨라졌으니까.”
“정말 줄었을까?” 서윤이 물었다.
“표에는 그랬어.”
“사람들이 민원을 못 하게 된 건 아니고?”
그 질문에 준성은 답하지 못했다. 2018년 표에는 처리 시간, 건수, 비용이 있었지만 접수되지 않은 항의가 몇 건인지 알려 주는 항목은 없었다.
점심을 먹은 뒤 민석은 은행 공식 앱에서 계좌 명의를 다시 확인했다. 정상. 천만 원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법적 귀속을 확인하기 전까지 사용하지 않는 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계좌 잔액을 자랑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후 두 시, 한 통의 우편이 도착했다. 발신인은 최근 거래 확인 절차를 맡은 정산대행사였다. 민석이 요청한 확인 진행 상황을 정식으로 안내하는 서류였다. 봉투에는 고객 식별 자료를 직접 보내지 않았다는 설명과 함께, 다음 주 정정 시범 결과를 통지할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윤은 봉투를 열지 않았다. 민석이 본인의 것이라며 건네려 하자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볼 권리가 있는 내용만 보여 줘요.”
그는 필요한 문장만 읽어 주었다. 신청인 본인이 확인 요청을 접수했다는 사실, 이의신청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외부 정산 모듈의 대조 응답은 확정 판단에서 제외됐다는 내용이었다.
“좋은 변화예요.” 서윤이 말했다.
“일흔한 건 전부 해결된 건 아니고요.”
“그것도 같이 쓰면 되죠.”
해 질 무렵, 최유나에게서 조심스러운 연락이 왔다. 그녀는 과거 변경 요청 메일의 제목을 찾아냈지만 본문과 첨부는 아직 별도 보존 매체에 있었다. 담당자 동의 없이 사본을 돌리지 않고, 소유 기관을 통해 보전 요청을 하겠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제목이 이상했다.
‘M-00 검증 실패 우회 / 운영환경 복제 금지.’
민석이 되물었다. “복제 금지라는 말을 누가 쓴 거죠?”
“제가 썼어요. 2018년 4월 6일 오전 열한 시 사십 분에요.”
“왜 그 시각까지 기억합니까?”
“그 메일을 보낸 날 프로젝트에서 빠졌거든요.”
말이 끝난 뒤 유나는 한참 침묵했다.
밤이 되자 검은 원장은 새 숫자를 내놓았다.
[대체 주체 지정 요청: 71건]
[실제 승인 주체 확인: 0건]
그리고 바로 아래에는 또 다른 문장이 있었다.
[2027.01.27 09:17 / 자동 보정 최종 실행]
민석은 수요일 날짜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번에도 시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다만 이제는 멈춰야 할 것이 자신의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동의를 만들어 내는 함수라는 사실을 알았다.
제16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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