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월요일 오후 여섯 시 십이 분.
강민석은 세온기록관리 건물 앞에서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 저녁은 서둘러 내려왔고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길게 늘어졌다. 손안의 휴대전화에는 조금 전까지 없던 문서 알림이 남아 있었다.
[원본 이관 확인서 / 제2부]
[금액: -1원]
[열람 시 수취 확인으로 간주]
[2027.01.19 09:17 / 계좌 소유자: 강민석 / 본인 확인 상태: 기록 없음]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알림을 밀어 없애려다 멈췄다. 과거에는 이런 메시지가 뜨면 돈을 계산했다. 지금은 문장이 어떤 행동을 강요하는지부터 읽었다. ‘열람’과 ‘수취’는 서로 다른 일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두 단어 사이에 등호를 붙여 놓았다.
“이번에는 못 속여.”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자신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본인 확인이 사라진다는 경고는 통장 잔액이 줄어드는 것보다 현실적이었다. 대출금 자동이체, 월세, 회사의 급여, 주민센터에 등록된 각종 문서까지 이름 하나에 매달려 있었다.
민석은 은행 공식 앱을 열었다. 이름과 계좌는 정상이었고, 천만 원의 입금은 아직 조사 중인 거래로 별도 기록되어 있었다. 정상이라는 사실이 내일도 정상이라는 보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검은 원장의 화면을 은행의 공식 상태로 혼동할 이유는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세린과 예린, 유정호를 포함한 기존 연락망에 화면을 전달했다. 원문 링크나 알 수 없는 문서 파일을 첨부하지 않고, 표시 시각이 포함된 캡처와 발견 경위만 남겼다.
예린이 먼저 전화했다.
“그 문서를 열지 않은 거죠?”
“미리보기에 적힌 한 줄만 봤어요.”
“잘했어요. 다만 안 열었다고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어요. 검은 원장이 공식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으니까요. 내일 실제로 어느 곳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봐야 합니다.”
“‘-1원’은 뭡니까?”
“진짜 금융거래라면 정식 거래 내역이 남겠죠. 개발자들이 무효 상태를 표시할 때 -1 같은 값을 쓰기도 하지만, 이 사례에 그런 의미가 있다는 증거도 아직 없습니다.”
전화를 끊고 그는 노트에 세 가지 칸을 그렸다. ‘확인한 사실’, ‘검은 원장의 주장’, ‘아직 알 수 없음’. 손바닥만 한 종이에 문장들이 자리를 잡자 흉측하던 경고가 조금 작아졌다.
저녁 여덟 시, 박준성이 퇴근길에 찾아왔다. 그는 뜨거운 어묵 국물 두 컵과 주먹밥을 사 왔다. 식탁에 놓인 종이컵에서 김이 올랐다.
“정말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어?” 준성이 물었다.
“은행에서는 아직 아니야.”
“그런데 무섭지?”
“그게 제일 무서워. 내 돈을 누가 가져가는 것보다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하느라 하루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준성은 종이 위 ‘확인한 사실’ 칸에 적힌 문장을 읽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십 년 전의 서명과 잘못된 위험 평가를 둘러싼 앙금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문을 닫을 필요는 없었다.
“나, 2018년 검토 자료에서 본 항목이 하나 생각났어.”
“무슨 항목?”
“거래 수취인 말고 확인 주체. 누가 돈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누가 받았다고 판정하는 데 쓰인 식별값.”
민석은 펜을 들었다. 준성은 기억만으로 단정하지 않겠다며 회사에 보존된 자신의 검토 기록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그 약속조차 이번에는 말로 끝내지 않고 메일로 남겼다.
밤 열한 시 오십구 분. 검은 원장이 마지막으로 한 줄을 내밀었다.
[귀하의 명의를 유지하려면 제2부 원본에 동의하십시오.]
민석은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자 문구가 바뀌었다.
[동의 대기 / 대체 본인 확인 시작]
그는 잠들기 전 주민등록증을 꺼내 책상에 놓았다가 다시 지갑에 넣었다. 플라스틱 한 장이 사람의 존재를 증명해 주지는 않지만, 내일 은행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문득 오연희가 보낸 말을 떠올렸다. 받지 않은 것을 받았다고 쓰지 말아 달라는 부탁.
이번에는 자신이 같은 부탁을 해야 할 차례였다.
제16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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