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윤은 편집국 회의실의 문을 닫았다. 전화기 너머 여자는 조금 전보다 안정된 목소리로 다시 전화를 걸어 왔다. 정해진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통화였다.
“제가 말하는 내용을 다 녹음하시나요?”
“지금은 녹음하고 있지 않습니다. 녹음이 필요하면 먼저 설명하고 허락받겠습니다.”
여성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2016년에 저는 자료 운반을 도와주던 외부 직원이었어요. 제가 받은 건 서류 봉투와 작은 녹음기였습니다. 반환 요청을 한 사람은 저지만 녹음기를 사용한 사람은 달랐죠.”
“그분과 지금 연락이 됩니까?”
“최근엔 없어요. 연락이 끊겼다고 죽었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기록에는 그 사람에게 돈을 줬다고 남아 있더군요. 그게 무서웠어요.”
서윤은 자신의 추측을 삼켰다. 사람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는 기사로 매혹적이다. 그러나 행방을 모르는 사람이 원치 않는 장소에서 자신을 숨기며 살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분의 이름은 기사에 쓰지 않을 겁니다. 이 내용을 누구에게 공유해도 될지는 따로 여쭙겠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알려 주세요. 강민석 씨에게.”
“그분과 직접 연락할 수 있게 도와드릴까요?”
“먼저 왜 그분이 제 번호가 아닌 봉투를 찾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서윤은 지금까지 검증된 사실만 설명했다. 민석이 원본 자료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는 것, 실제 지급 여부와 전산상 ‘완료’를 구분하려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도 2036년 문서의 출처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
여성은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강민석 씨가 작은 돈을 돌려주려고 했어요.”
“얼마나 되는 돈이요?”
“사만 팔천 원이요. 원본을 맡기러 온 사람이 교통비 명목으로 받게 된 돈이었죠. 그분은 그 돈을 자신에게 지급된 지원금으로 기록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서윤이 펜을 떨어뜨렸다. 48,000원. 몇 주 전 민석의 실제 통장으로 들어왔던 액수였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었다. 확인이 필요한 숫자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그때 받지 않았다는 분은 누구였나요?”
“오연희 씨요.”
서윤은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반복하지 않았다. 여성은 이어 말했다.
“연희 씨는 녹음기에 말했어요. 돈보다 먼저 자기 말을 확인해 달라고. 그런데 나중에 회사에서 그 녹음을 ‘확인 완료’라고 분류했어요. 제가 가져가려 하니까 담당자가 자료를 보존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 담당자가 강민석 씨였습니까?”
“아뇨. 그분은 작은 접수대에서 돌아가게 해달라고 적어 줬어요. 나중에 누가 보류했는지 제가 모릅니다.”
통화가 끝나자 서윤은 민석에게 바로 연락했다. 당사자가 허용한 범위에서만 내용을 옮겼다. 정다연이라는 이름이 실제 통화자와 일치하는지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그 이름을 단정하지 않았다.
“48,000원이라고요?” 민석이 되물었다.
“정확히 그 금액이라고 증언했어요. 그 사실과 당신에게 송금된 돈의 출처가 같다는 건 아직 아닙니다.”
“알아요. 하지만 제가 십 년 전에 돌려주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던 건 맞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해요. 그분이 지금 연락받기를 원하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날 오후 통화한 여성이 사는 곳을 알아냈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메일이 기자에게 도착했다. 첨부된 지도에는 주거지로 보이는 위치와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서윤은 파일을 열어 확인하지 않고 보안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실제 당사자의 소재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았고, 설령 맞아도 취재진이 그곳을 찾아갈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이런 자료는 제가 필요한 건가요?” 새로 들어온 후배 기자가 물었다.
“우리가 찾는 건 주소가 아니라 2016년 기록이 어떻게 쓰였는지야.” 서윤이 말했다. “누군가가 나타나고 싶으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주는 것부터 해야 해.”
후배가 메모를 하는 동안 서윤은 편집장에게 익명 제보 연락 창구를 다시 공지하자고 요청했다. 원장 속에서는 수취인이 자꾸 지정됐지만, 실제 사람에게는 지정받지 않을 선택권도 있어야 했다.
같은 시각 예린은 2016년 프로그램 설계 문서에서 이상한 주석을 찾았다.
‘R-00: 원본 회수 요청. 임시 보관금: 48,000원. 지급 동의와 무관.’
주석에는 삭제선이 그어져 있었고, 2018년 버전에는 ‘임시 보관금’을 ‘지급 확인 증거’로 간소화한 필드가 있었다.
“도대체 돈의 유무를 어떻게 목소리의 동의로 바꿔 버린 거죠?” 민석이 말했다.
“누군가 바꾸고 싶어 했든 아니든, 그런 변경을 승인하는 설계가 남아 있었던 거예요.” 예린은 답했다. “이제는 변경 사유 원본이 필요합니다.”
밤이 되자 검은 원장은 한 줄을 추가했다.
[기록 회수 요청자: 정다연]
[녹취 원본 화자: 오연희]
[2016 지급 사실: 확인되지 않음]
이번에는 세 사람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아래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2036년 서명자 강민석 / 권한 검증: 대기]
민석은 팔짱을 꼈다. 미래에서 왔다는 서명이 실제 권한을 입증한 적은 없었다. 누가 그 빈자리를 이용하려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제15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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