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토요일 오전 아홉 시 십육 분.
강민석은 식탁 끝에 휴대전화를 세워 놓고 기다렸다. 금요일 저녁 검은 원장에 나타났던 영수증은 밤새 사라지지 않았다. 2036년 1월 8일. 서명자 강민석. 금액 0원. 그리고 십 년 전 기록에서 제외된 마지막 한 사람.
그가 보고 있는 동안에도 실제 은행 잔액에는 천만 원이 남아 있었다. 은행이 확인 절차를 진행하는 돈이었다. 영수증의 0원과는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두 화면을 나란히 놓았다가 휴대전화를 하나만 집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보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 화면에 숫자가 뜨면 자신도 모르게 먼저 계산하고 있었다.
아홉 시 십칠 분.
[열람 기한 도달]
[문서 분류: 원본 반환 요청 / 보류]
[요청일: 2016.10.25]
[접수 시각: 16:43]
[신청자 표시: 비공개]
[수취인 표시: 기록 없음]
“비공개랑 기록 없음은 다르잖아.”
그가 중얼거리자 다음 줄이 열렸다.
[요청의 종류: 지급금 반환 아님]
[반환 대상: 서면 1건, 녹취 매체 1건]
[반환을 요청한 사람: 원본 제출자]
민석은 손끝이 차가워졌다. 여태껏 돈의 수취인을 찾고 있었는데, 원본이 돌아가야 할 사람을 찾는 일일 수도 있었다. 검은 원장은 누가 언제 제출했는지에 대한 한 줄만 더 보여 주었다.
[2016년 인계 담당: 강민석]
그는 아홉 시 십칠 분을 적은 종이 옆에 십 년 전 수첩을 펼쳤다. 커피 얼룩이 번진 페이지 한쪽에는 '당사자에게 직접'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 단어를 누가 말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2016년의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과, 그가 당시 모든 절차를 제대로 이해했을 리 없다는 의심이 동시에 들었다.
그날 그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계약직 업무를 막 벗어나 책임을 배워 가던 시절이었다. 민석은 책상 서랍에서 옛 사원증을 꺼냈다. 사진 속 자신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십 년 뒤 이 사원증을 보며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휴대전화 진동이 다시 울렸다. 민석은 반사적으로 금융 앱을 열었다가 금세 닫았다. 0원짜리 영수증에 적힌 '수취인'이 금융 앱의 계좌 명의처럼 읽히는 순간, 이미 원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화면을 저장하면서 사진에 표시된 시각을 별도로 적었다. 화면 자체가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오래된 자료에서 가져왔거나 누군가 지금 편집한 정보일 가능성도 있었다.
박준성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신호음이 다섯 번 울린 뒤 연결됐다.
“토요일이야.” 준성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 그런데 2016년 기록에 녹취 매체 반환 요청이 있었어?”
준성의 말투가 변했다. “그걸 어디서 봤는데?”
“원장에. 인계 담당은 나라고 쓰여 있어.”
“처음 듣는 항목이야. 녹취가 있다고 해도 내용은 몰라. 이름도 모르면서 파일부터 열지 마.”
“나도 그 정도는 배웠어.”
“배운 사람이 토요일 아침부터 전화는 왜 해?”
민석은 웃지 못했다. 준성이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자료가 실제 보관돼 있으면 월요일에 보존 상태부터 확인해. 원본을 열람하는 일과 누구에게 돌려줄지는 또 다른 절차야.”
민석은 혜라에게 업무 연락 대신 짧은 보존 요청 메일을 보냈다. 주말에 급히 문을 열어 달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2016년 10월 25일의 반환 요청 색인, 서면과 녹취 매체의 현재 보관 여부, 관련 접근 이력만 보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점심 무렵 서윤에게 답장이 왔다.
‘이름이 안 나오는 문서는 누군가를 찾는 단서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의 이름을 대조해 보자는 기사가 돼서는 안 됩니다.’
민석은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십 년 전 수첩을 꺼냈다. 찢긴 페이지 앞쪽, 커피 얼룩 아래에 쓰다 만 글자가 있었다. 그때는 숫자 0으로 보였던 둥근 획과 작은 점.
그는 확대 사진을 찍어 보되 종이에는 손대지 않았다. 원본 글자를 마음대로 덧칠하거나 문질러 보면 이제껏 지키려던 증거를 스스로 훼손하는 셈이었다.
오후 네 시 사십삼 분. 원장에 알림이 도착했다.
[반환 요청 상태 변경]
[2016.10.25 16:43 / 보류 사유: 제출자에게 직접 확인할 것]
[대리 확인 허용: 아니오]
맨 아래에는 처음 보는 말이 붙어 있었다.
‘그 사람은 돌려받으러 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네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석은 눈을 감았다. 누군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과거의 자신이 누군가와 지킨 약속을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제15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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