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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147화
PAYLUA ORIGINAL · 제147화

147화. 기자가 받지 않은 제안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893자

오프라인 책장
1월 5일 화요일 오전 일곱 시. 한서윤은 휴대전화에서 낯선 번호를 확인했다. 전날 밤 편집국 대표 메일로 도착한 서류의 발신자였다. 제목은 ‘공익 제보 지원 및 원본 반환 협약’. 언뜻 보기엔 취재 협조 제안 같았다. 그러나 붙은 계약서의 마지막 문장은 서윤의 손을 멈추게 했다. ‘협약에 응하거나 이의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관련자의 지급 및 정보 공개 동의가 완료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의를 제출하지 않으면요?” 서윤은 문장을 읽어 주며 편집장에게 물었다. 편집장은 한숨을 쉬었다. “왜 기자에게 지급 동의를 물어? 당사자도 아닌데.” “당사자 연락처를 확보했다는 이유로 제 기사까지 확인 자료로 삼으려는 것 같아요. 제 이름이 붙으면 그 사람이 실제로 말했는지는 묻지 않을 겁니다.” 서윤은 제안을 수락하지 않는다는 답신을 보내고, 취재자료나 연락처를 계약 업체에 제공하지 않았음을 명시했다. 답신을 보내기 전 그녀는 열 해 전 대학신문의 낡은 원고를 꺼냈다. 거기에는 취재한 학생들의 이름이 빽빽했고, 익명 제보자는 이니셜만 남아 있었다. 당시 그녀는 익명으로 보도하면 기사의 힘이 약해진다고 생각했다. 담당 교수는 실명이 없다고 사실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을 확인된 것처럼 쓰는 순간 기사가 약해진다고 말했다. 그 말을 진짜 이해한 건 졸업하고 한참 뒤였다. 속보 경쟁이 있는 날이면 서윤 역시 실수를 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서둘러 한 문장으로 바꾸곤 했다. 그러니 2016년 서명 사건 앞에서도 자신만은 옳다고 말할 자격이 없었다. 편집장은 재차 물었다. “이 돈을 받으면 취재에 도움 되는 자료라도 더 들어오지 않을까?” “들어올 수도 있죠. 대신 그 자료가 왜 들어왔는지를 독자에게 설명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돈을 보내는 사람이 원한 문장부터 쓰게 될 거예요.” 편집장은 책상 위 펜을 돌렸다. “그럼 거절해. 대신 단순한 도덕 이야기로 쓰지는 마. 실제로 어떤 사람의 동의가 어떤 문서에서 바뀌었는지 보여 줘.” 서윤은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기사는 의로운 기자의 표정이 아니라 확인 가능한 사실에서 시작했다. 금전적 제안은 받지 않았다. 그 대신 반론과 설명을 요청하는 공식 질의서를 보냈다. ‘협약에 응답하지 않은 제삼자의 동의를 어떻게 확보했다고 판단하는가.’ 오전 열한 시, 강민석은 준성과 함께 정태겸의 회사로 갔다. 건물 로비에는 신년 사업 방향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화려한 문구들 사이에서 ‘자동화된 정확성’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태겸은 구형 정산 화면을 시연했다. 검증되지 않은 수취인에게 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표시하는 대신, ‘대체 지급 처리 가능’이라는 체크박스가 있었다. 2018년부터 일부 거래처에서 사용한 옵션이었다. “이걸 누가 눌렀습니까?” 준성이 물었다. “거래처마다 다릅니다. 자동 설정된 곳도 있고, 계약 체결 때 선택한 곳도 있습니다. 문제는 선택 기준이 고객사별 확인서에 남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준성은 모니터를 응시했다. “내가 만든 검토 문서에도 이 옵션을 위험 낮음이라고 적었어.” “당시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민석이 물었다. “대체 지급은 실제 송금 전에 다시 승인할 거라고 믿었지.” 태겸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이 그 문장을 읽을 때는 '대체 지급은 이미 승인됐다'고 읽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기술자와 투자 검토자가 만들어 놓은 문장이 실제 생활에서는 사람의 수령권을 바꿔 놓았다. 점심때 하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녀가 일하는 회사의 인사 담당자가 과거 지원금 수령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외부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공식 조회 근거가 불분명하여 인사 담당자는 응하지 않았지만, 하은은 몸이 떨렸다고 했다. 서윤은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 “지금 가장 두려운 게 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기사에 쓰려는 게 아니라, 제가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알아야 해서요.” “사람들이 제가 돈 때문에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은 씨가 주장한 건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는 거였죠.” “네. 그런데 자꾸 천만 원을 받겠냐는 질문만 들어와요. 저는 제 이름을 지키려고 했던 거예요.” 서윤은 기사 제목을 지웠다. 처음 생각한 제목은 ‘사라진 천만 원의 수취인’이었다. 하은이 읽으면 자신의 인생이 금액으로만 남는다고 느낄 것이다. 대신 ‘돈을 받았다는 기록에 답하지 않을 권리’라는 제목을 메모장에 적었다. 보도 시점과 익명화 범위는 하은에게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오후 세 시, 유정호가 2018년 검토자 명단의 대조 결과를 전달했다. 박준성의 이름으로 등록된 것은 기술 승인 자체가 아니라 사업상 위험을 낮게 평가한 의견서였다. 실제 기능 변경은 다른 승인 경로를 거쳤다. 그 경로에도 서문재가 승인한 위임 계정이 등장했다. “나만 죄를 뒤집어쓰는 건 아니겠구나.” 준성이 자조하듯 말했다. “그건 아직 아무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세린이 답했다. “준성 씨가 어떤 검토를 했는지부터 따져야 해요. 다른 사람의 책임과 별개로요.” 준성은 고개를 숙였다. 피해를 설명하려면 먼저 책임을 분리해야 하는데, 자신은 늘 책임을 나눌 방법부터 찾았음을 깨달았다. 그날 저녁, 하은이 정식 대조 절차에 참여하겠다고 연락했다. 실명 공개는 거절했다. 자신과 연결된 지급 완료 표시가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료만 제공하겠다고 했다. 민석은 회신을 읽고 안도했다. 그러자 검은 원장에 한 줄이 떠올랐다. [이하은 / 본인 확인 완료] [원본 반환 보상금 / 지급 가능 전환] 민석은 곧장 세린에게 화면을 보냈다. ‘본인 확인은 지급 동의가 아닙니다.’ 그 문장을 서너 번 입력했다 지웠다. 결국 그는 짧게 보냈다. ‘또 한 단계를 건너뛰었습니다.’ 대답은 금세 왔다. ‘그럼 그 단계를 오늘 기록해 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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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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