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여덟 시 십 분. 한서윤은 편집국 난방기를 켠 뒤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정태겸이었다.
“어제 보낸 사용 중지 요청 말입니다. 대부분 회신이 왔습니다.”
“대부분이라는 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죠.”
“네. 하나가 남았습니다. 거래 이름만으로는 실제 배포가 성립했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정태겸은 거래 관계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식 자료를 확보하기로 했지만, 이를 위해 내부 담당자의 승인이 필요했다. 서윤은 요구할 수 있는 공개 범위를 다시 확인했다. 특정 수취인의 개인 정보가 아니라 잘못된 확인 결과를 사용할 예정인지와 사용 중지 요청을 받았는지만 알아도 충분했다.
민석은 아침 아홉 시 전에 회사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준성과 만났다. 서로 인사를 했지만 어제 다툰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두 사람의 휴대전화 대신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할 수 있는 것 / 할 수 없는 것’.
준성이 썼다.
“안 했던 일을 네 이름으로 인정하지 마. 그건 내가 지난 열흘 동안 너한테 계속 하던 말이잖아.”
민석은 종이를 당겨 자신의 글씨를 더했다.
‘안 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말 것.’
두 사람은 오래 앉아 있었다. 어느 쪽도 즉시 용서하거나 화해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해야 할 일을 함께 정리했다. 준성은 자신이 관여한 2018년 검토 보고서의 보존 요청을 정식으로 제출하고, 그 사실을 이해관계자에게 알리기로 했다. 민석은 문정아와 백소희의 진술을 대표해 말하는 대신 각자의 동의 범위에 따라 필요한 자료만 전달하기로 했다.
오전 아홉 시 십칠 분.
검은 원장이 진동했다.
[배포 완료: 286건]
[이의 요청 적용: 285건]
[잔여 처리: 1건]
민석은 속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세린에게 온 공식 이메일은 조금 달랐다. 286건 전체의 계약 성립이 확인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처리 예정 목록에서 285건에 사용 중지 요청이 반영됐고 하나에 대한 회신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또 완료라는 말이 너무 빨랐네.” 준성이 말했다.
“그런데 하나는 아직 위험해.”
그들은 절차가 닫힌 휴일에 자신들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했다. 세린은 외부 계약의 긴급 연락 창구와 자료 보존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태겸은 자신의 회사가 발송한 결과표가 계약 판단에 쓰이지 않도록 임시 주의 통지를 보냈다. 회신이 늦어도 그 통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남았다.
오후 두 시, 문정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갔다. 그녀의 이름으로 된 완료 증빙을 참고해 새로운 계약을 진행하려는 담당자가 있었다. 다행히 상대는 정아 본인 확인을 요청했고, 정아는 그런 확인을 한 적 없다고 직접 말했다.
“이번엔 제가 먼저 아니라고 했어요.” 정아는 서윤에게 전했다. “종이가 나오기 전에요.”
“그게 기록으로 남았나요?”
“네. 상대가 통화 내용을 요약해서 보내 줬어요.”
세린은 해당 내용을 당사자 동의 아래 정식 의견서로 접수했다. 그날 밤 검은 원장에 표시된 잔여 건수는 한 건에서 영 건으로 바뀌지 않았다. 대신 상태만 바뀌었다.
[잔여 처리 1건 / 계약 판단 보류]
민석은 한동안 그 글자를 보았다. 처음부터 바라던 일과는 달랐다. 돈이 들어오지 않았고, 모든 비밀이 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름이 쓰이기 전에 그 당사자가 반대할 기회가 생겼다.
한편 백소희는 가족과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자신의 공식 이의 신청 상태를 확인했다. 보류, 추가 대조, 자료 요청. 아름다운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가족은 왜 아직도 그 숫자에 매달리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돈을 받았다고 적어 놓으면, 나중엔 내가 아니라 그 종이한테 설명을 해야 하잖아.”
소희가 대답하자 식탁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녀는 이 사건을 잊고 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받지 않았다는 문장을 남겨 두어야 잊을 권리도 생긴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음 면담에도 참석하겠다고 세린에게 연락했다. 누가 대신 얘기해 주겠다는 제안보다, 직접 발언할 시간을 보장해 달라는 요청이 먼저였다.
저녁에는 서문재가 서윤에게 짧은 면담을 요청했다. 그가 가져온 자료에는 2018년 회의 참석자 일곱 명의 이름이 있었다. 각자 무엇을 확인하고 서명했는지 구분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 인정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이 실제로 한 일은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고 했다.
서윤은 문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다가 멈췄다.
‘변환표 원본 작성자: 미상.’
그 아래 연필로 쓴 듯한 작은 메모가 보였다.
‘최종 적용 판단자: 외부 시스템의 자동 결정.’
누가 눌렀는지 모르는 버튼이, 결국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였다.
회의실을 나서기 전 서문재가 말했다.
“그때 우린 사람이 확인할 일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줄인 게 아니라 없앤 거죠.” 서윤이 답했다.
그녀의 말에 서문재는 반박하지 못했다.
밤 열 시, 민석의 검은 원장에 처음 보는 질문이 나타났다.
[17-B 원본 거절 보존 여부를 선택하십시오.]
[보존 시 예상 손실: -100,000,000,000원]
[삭제 시 예상 손실: 0원]
버튼은 두 개였다. 검은 원장은 다시 숫자를 미끼로 삼고 있었다.
제13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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