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토요일, 새벽 여섯 시.
박준성은 전날 밤 거의 자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파일 이름이 떠나지 않았다. `2016_2036`. 2036년이라는 연도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래의 강민석이 실제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면 자신이 살아가는 오늘은 이미 누군가에게 지난날이 되는 것일까.
그는 한때 알고 지냈던 문서 보관업체 직원에게 연락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휴대전화 주소록을 닫았다. 사적인 인맥으로 보관 정보를 빼내는 순간 자신들이 고치려던 잘못을 반복할 수 있었다. 대신 자료가 공개된 보관 기간 표준과 2016년 계약의 공개 가능한 부분을 찾아 비교했다.
오전 아홉 시, 김예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준성 씨, 2036이라는 연도와 일치하는 조항을 찾았어요.”
“드디어 미래인이 나오는 겁니까?”
“미래인보다 지루한 겁니다. 보존 만료 기한.”
2016년 작성된 일부 계약에는 기록을 20년간 보관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만료 연도가 2036년이었다. 예린은 문서의 복구 버전을 만들 때 보존 기한을 데이터 구분자로 쓰던 관행도 보여 줬다. `M36`이라는 명칭이 그 관행에서 파생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2036년 강민석은 사실 2036년까지 보관할 강민석 기록?”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그걸로 그 계정이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나 미래 날짜의 서명이 전부 설명되지는 않아요. 우린 연도 표기의 가능한 출처 하나를 찾았을 뿐입니다.”
준성은 그렇게 제한을 붙이는 예린을 오히려 믿게 됐다.
오전 열한 시가 되기 전, 세온기록관리에서 연락이 왔다. 제2보관실의 17-C 대조표를 실제로 보유하는지 확인해 줄 수 있었다. 문정아가 보낸 전표와 같은 시기의 목록이라는 것도 확인됐다. 다만 봉인된 문서의 내용은 이해관계인 확인 없이는 공개할 수 없었다.
민석은 혜라에게 물었다. “문정아 씨가 직접 와야 합니까?”
“그분이 관련자 중 한 분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그분을 대표자로 정해서도 안 됩니다. 그분의 동의와 해당 기관의 심사가 따로 필요합니다.”
민석은 익숙한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이 사건은 늘 대표 한 사람을 찾아 모든 책임을 그에게 얹으려 했다. 이제 자신들이라도 그러지 않아야 했다.
점심 무렵 준성은 세린과 별도의 통화를 요청했다. 민석에게도 아직 다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저, 2018년에 외부 검토 일을 했습니다.”
“그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검증 규칙의 경고창을 봤어요. ‘대리 확인 금지 규칙 적용 시 보고서 완료율 하락 가능’이라고.”
세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프로젝트가 납기만 맞추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경고창을 없애지는 않았지만, 사용자 안내를 작게 줄이는 데 동의했습니다. 기술 보고서에 그걸 직접 써 놨어요.”
“그 보고서가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보관한 복사본은 없습니다. 하지만 회사 기록에는 남아 있을 수 있어요. 제가 오늘 정식으로 보존 요청을 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준성은 민석에게도 사실을 털어놓았다. 창밖에 내리는 진눈깨비를 보며 친구의 대답을 기다렸다.
“왜 이제 말해?” 민석의 질문은 짧았다.
“네가 내가 일부러 속였다고 생각할까 봐.”
“그러면 오늘까진 안 속인 거야?”
준성은 입을 다물었다. 민석은 화가 났다. 십 년 전의 어렴풋한 결정을 바로잡는 일에서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중요한 말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네가 경고를 봤으면, 그때 다른 선택도 할 수 있었던 거잖아.”
“그래. 그럴 수 있었어.”
“그걸 지금이라도 기록으로 남겨.”
“그럴 거야.”
그날 저녁, 서윤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도 기사를 먼저 쓰지 않았다. 준성의 과거 업무 참여는 확인 대상이지만 아직 법적 책임이 가려진 사실은 아니었다. 그녀는 회사 기록과 당사자 설명이 확보되면 보도하겠다고 말했다.
준성은 민석과 통화를 끝낸 뒤 오래된 노트북을 꺼냈다. 프로젝트 폴더에는 퇴근 무렵 찍은 회식 사진과 사용하지 않은 발표 자료가 남아 있었다. 웃고 있는 얼굴들을 보며 그는 그날의 자신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기억했다. 성공적인 납품, 다음 계약, 좋은 평가. 경고창을 조금 줄이는 일은 회식 건배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사진을 닫고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문장을 적었다. '경고창 축소 검토에 찬성했음. 당시 원본 검증 불일치가 실거래에 미칠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함.' 마침표 하나를 찍는 데 십 년이 걸린 셈이었다.
문서를 보내기 전에 그는 예린에게 검토를 부탁하지 않았다. 책임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매끈하게 고쳐 달라고 하면서 다시 책임을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대신 회신받은 공식 절차에 맞춰 자신의 기억과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 제출했다.
밤이 되자 검은 원장이 조용히 켜졌다.
[2036년 강민석 / 보관 기한 계정]
[2026년 박준성 / 책임 진술 접수 예정]
[외부 배포 286건 / 취소 요청 미접수 1건]
준성은 화면을 보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책임 진술을 제출하겠다고 말한 건 우리밖에 모르는데.”
민석은 화면을 확대했다. 2036년 계정은 여전히 자신이 한 적 없는 말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줄이 그를 더 불안하게 했다.
[미취소 배포처: 비공개]
[배포 완료 예정: 2026.12.27 09:17]
내일 하루만 남았다. 이번에는 단 한 건의 문서가 다른 사람의 권리를 다시 빼앗을 수 있었다.
제13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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