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토요일 오전. 서문재는 기록관리실에 들어오자마자 낡은 수첩을 보지 않았다. 먼저 한서윤에게 인사를 했다.
“십 년 전 질문지를 보낸 학생이 당신이었군요.”
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그걸 기억하십니까?”
“그 편지를 회의실에서 읽은 사람은 저였습니다.”
민석은 서문재의 손을 보았다. 손등의 주름은 오래된 종이처럼 가늘게 접혀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모든 기록을 덮는 데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만 보였다. 오늘 그 남자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과하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세린이 녹취 범위와 면담 목적을 확인했다. 서문재는 법률 대리인과 상의한 뒤 자발적으로 추가 진술서를 작성하겠다고 했다. 민석은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도 모두가 서류부터 챙기는 세계가 싫었다. 하지만 서류가 없으면 또 어떤 말이 '한 적 없는 말'로 바뀔지 이제 알고 있었다.
“2016년 10월 25일, 제가 보관 지시를 내린 자료가 있습니다.” 서문재가 말했다. “금액이 있는 정산표가 아니라 이의서와 확인 요청서였죠.”
“왜 보관만 하고 돌려주지 않았습니까?” 서윤이 물었다.
“당사자가 특정되면 보복당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당시 어느 업체가 제보자의 근무 사실까지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접수한 사람들의 동의 없이 명단 전체를 내놓는 건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미수령 이의가 수령 완료로 바뀌는 것도 막지 않았습니까?”
서문재는 대답하기 전에 물을 마셨다.
“처음에는 두 일이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원을 보호하려고 이름을 가리면서도 정산 처리 자체는 계속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모듈이 바뀌고부터 구분이 사라졌습니다. 보호용 가림이 '확인된 수취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고, 저는 그 경고를 문서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2018년에요?” 세린이 물었다.
“네. 그게 제 책임입니다.”
민석은 그가 가장 중요한 질문을 피하는 것처럼 느꼈다.
“제 수첩 페이지는 누가 찢었습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그 페이지와 비슷한 내용이 적힌 메모를 본 적은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죠?”
“강민석 씨가 확인 서명을 거절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지급의 증거가 없다는 것, 그리고 한서윤이라는 사람의 질의가 답변되지 않았다는 것.”
서윤이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우린 2016년에 만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문서의 발신자와 실제로 만날 필요는 없었죠. 강민석 씨는 그 질문지를 읽은 뒤, 답변이 없는 상태에서 완료 표시를 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민석은 두통처럼 밀려오는 기억에 눈을 감았다. 복사기 옆의 뜨거운 종이 냄새. 회의실 유리문. '이것까지 확인이라고 찍으면 누가 책임지느냐'고 물었던 젊은 자신의 목소리. 누군가 화를 냈고, 그는 상자를 내팽개치듯 내려놓고 복도로 나왔었다.
“그때 제가 뭘 했는지까지 기억은 안 납니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세린이 말했다. “기록과 다른 증언으로 확인하면 됩니다.”
서문재는 추가 진술서 마지막 줄에 자필 서명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민석은 '서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안의 모든 내용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자기 책임으로 한 말을 확인할 출발점이었다.
면담이 끝날 무렵 서윤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2018년에 경고를 문서로 남기지 않았다고 하셨죠. 그때 누구에게 먼저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까?”
서문재는 바닥을 봤다. “담당 임원과 외부 감사인이 있었어요. 저는 서비스를 중단하면 고객사들이 항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정 때문에 몇 명이 피해를 봤는지 알고 계십니까?”
“아니요. 그래서 무섭습니다. 아직 실제 피해 범위는 아무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민석은 서문재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예전의 그 남자는 무엇이든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려 했다. 이제는 확인하지 못한 사람의 수를 말하지 않았다. 서윤은 그 답을 기사로 쓰려다 펜을 멈췄다. 자신이 아직 피해를 확인하지 않은 사건들을 한 문장에 묶고 싶지 않았다.
세린은 향후 진행될 공식 조사에서 서문재의 진술과 기록을 대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협조한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책임이 있다고 모든 의혹이 사실로 확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서문재는 오래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창밖을 한 번 바라봤다. 겨울빛이 그의 얼굴 반쪽만 비추고 있었다.
면담을 마치자 준성이 회의실 밖에서 계산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자료 숫자 다시 봤어?”
“무슨 숫자?”
“지난 수요일 네가 백억이라고 읽었던 평가액. 숫자로는 100,000,000,000원이야.”
“그럼 천억이잖아.”
“맞아. 예전의 백억 원짜리 개별 위험 평가와, 이번 외부 보고서의 천억 원짜리 합산 노출액이 뒤섞였어. 화면 단위가 다른데도 문구에는 같은 '정산'이라고 써 있어.”
민석은 이마를 짚었다. 그는 세상을 뒤흔드는 숫자가 아니라 자기 눈부터 잘못 읽고 있었다.
“실제 돈이 천억 원 움직인 건 아니지?”
“확인된 건 없어. 보고서가 이 금액을 위험 평가로 계산했다는 사실뿐이야.”
준성이 한 장을 더 건넸다. 2018년 작업 명세서에 '위험 평가 금액을 지급 확정액과 동일 항목에 출력할 수 있음'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민석은 그 문장을 오래 읽었다. 숫자가 과장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누군가 과장된 숫자를 믿고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퇴근 전에 검은 원장에는 다음 알림이 떴다.
[2016년 거절 기록: 일부 일치]
[보관 책임 진술: 신규 등록]
[2018년 완료 처리: 재검토 필요]
맨 아래에는 처음 보는 명칭이 있었다.
[미확인 지급액 산출 주체: 외부 위탁 사업자]
누군가 이 일에서 돈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지급됐다고 계산하는 일을 팔고 있었다.
제12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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