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124화
PAYLUA ORIGINAL · 제124화

124화. 서명 없는 서명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662자

오프라인 책장
12월 18일 금요일 오전 아홉 시. 백소희는 세온기록관리 민원실에 도착해 자신의 서명이 인쇄된 종이를 바라봤다. 화가 날 줄 알았는데 먼저 추위가 몰려왔다. 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누군가 자신이 받지 않은 것을 받았다고 적었다. 이제는 하지 않은 서명까지 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 글씨가 제 글씨인가요?” 소희가 물었다. 담당자는 서명 칸과 전자 확인 표시를 구분해 보여 줬다. 자료에 붙어 있는 것은 실제 손으로 쓴 서명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고객 이름과 접수 번호를 자동으로 조합해 출력한 전자 문구였다. 자료 생성일도 2016년이 아니라 2026년이었다. “그러니까 누가 제 손글씨를 위조한 건 아니네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제 동의처럼 보이게 출력됐다는 문제는 남습니다.” 소희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열 해 동안 싸운 게 이거였어요. 남들은 완료라고 읽고, 저는 아니라는 말을 반복하고.” 세린은 정정 요청서에 사실관계를 적었다. 해당 양식이 법적 효력이 있는 본인 서명인지 여부는 별도로 검토할 문제였고, 우선 확인되지 않은 동의를 '완료'로 내보낸 경위를 밝혀야 했다. 소희의 동의 없이 누구도 그녀의 모든 거래 내역을 공개할 수 없었다. 민석은 구석에서 그들을 지켜봤다. 검은 원장에는 여전히 아홉 시 십칠 분의 예고가 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미래가 정해 준 판결 시각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 시간을 업무 처리의 기본값으로 만들어 둔 것이었다. “이 양식 누가 만들었습니까?” 준성이 물었다. “확인 중입니다. 성우데이터에서 제공받은 연계 화면이라고 들었습니다.” “버튼은 누가 눌렀는지요?” “작업 로그 요청이 들어갔습니다.” 아홉 시 십오 분, 민석의 휴대전화가 떨렸다. [동일인 확인 요청: 2분 후] [대상: 2016년 미수령 이의 17] [요청 계정: 대표 수취인] '대표 수취인'이라는 표현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이 101화 이후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본인은 그렇게 되겠다고 동의한 적 없는데 시스템은 그의 이름을 여러 사람의 대표로 내세우려 했다. “제가 뭘 눌러야 합니까?” 그가 세린에게 화면을 보였다. “아무것도요. 공식 서면 요청이 아닌 이상 여기 나온 버튼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알 수 없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 저쪽에서 확인으로 처리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 담당자에게 확인 요청을 낸 겁니다. 남의 시스템에서 마음대로 만든 선택지에 끌려가지 마세요.” 그 순간 복도에서 소희의 언성이 높아졌다. 대기 중인 다른 민원인이 그녀에게 “나도 같은 경우인데 왜 기자까지 불러야 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서윤은 기자라는 이름을 앞세우지 않았다. 상대에게 공식 창구를 안내하고, 자신의 취재가 누군가의 접수 순서를 앞당기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민석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다시 실무 담당자를 바라봤다. 화면에 있는 '대표 수취인' 버튼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다른 사람의 복잡한 사연을 대표한다고 인정받는 셈이었다. 거절하면 아무도 돕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원장은 겁을 줬다. 하지만 정말 도움이 되는 행동은 소희가 자기 말로 이의서를 내도록 옆에 앉아 있는 일일 수 있었다. “소희 씨가 확인하지 않은 내용은 제가 대신 확인할 수 없습니다.” 민석이 말했다. 담당자는 그 문장을 정확히 기록해 두겠다고 했다. 소희도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민석은 자신이 무언가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가져서는 안 될 권한을 거절한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느꼈다. 아홉 시 십칠 분. 민석은 검은 화면을 그대로 두었다. 화면은 한 번 깜박이더니 이렇게 바뀌었다. [대표 수취인 무응답] [처리 결과: 유보] [대상자의 별도 이의: 유지] 곧 기록관리 담당자가 공식 회신을 전달했다. 백소희의 이의 기록은 접수 상태로 유지됐고, 문제의 자동 출력 서명에는 진정한 수령 확인으로서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것은 아직 전체 사건의 최종 결론은 아니었지만, 소희의 말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번에는 기록에 남는군요.” 소희가 말했다. 서윤은 취재 수첩을 덮었다. 기자로서 감정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소희가 안도의 한숨을 쉰 순간만큼은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점심 무렵 혜라가 봉인 목록을 가져왔다. 2016년 찢어진 수첩 페이지의 사본이라고 주장하는 자료가 전날 밤 추가 접수됐다는 것이다. 원본 보관자는 강민석. 제출자는 익명, 실물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사진만 들어왔습니까?” 민석이 물었다. “네. 파일을 보관했고 원본과 대조할 때까지 진위는 미확정입니다.” 화면에 뜬 사진은 그의 수첩과 닮아 있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 오래된 펜 자국, 잉크가 말라붙은 네 귀퉁이. 그런데 사진 한가운데에는 민석이 보지 못한 문장이 있었다. '한서윤의 확인을 받기 전에는 17번을 완료로 옮기지 말 것.' 민석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내 글씨 같은데… 내가 썼다는 기억이 없어요.” 서윤은 그를 바라봤다. “제가 십 년 전에 보내 드린 질문지를 누군가 전달했다면,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사진이 진짜라는 증거는 아직 없죠.” 그때 혜라가 화면을 확대했다. 문장 아래에는 회색으로 남은 작은 표시가 있었다. `M36 / 2036-11-20 / COPY` 열 해 전 종이의 사본이라고 주장하는 파일에, 십 년 뒤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24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2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