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준성은 커피 두 잔과 과자 한 봉지를 들고 김예린을 찾아갔다. 연구실 입구에는 오래된 종이모형이 놓여 있었고, 창문에는 아직 철거하지 않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가 2016년의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횟수가 늘수록 예린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미확인 수취인 열한 명이라는 표시, 기억나세요?” 준성이 말했다.
“그걸 왜요?”
“원본 문서에서 11이라는 숫자를 봤어요. 그런데 사람 수가 아니라 버전 번호로도 보여서요.”
예린은 그제야 과자 봉지를 내려놓게 했다.
준성이 펼친 출력물은 2016년 시험용 상태표의 변화 이력이었다. 첫째 버전에는 '접수됨', 둘째에는 '확인 중', 셋째에는 '지급 아님'이 덧붙어 있었다. 열한 번째 버전은 그해 10월 말에 작성됐다. 새로 추가된 항목은 '해당 없음'이라는 분류였다.
“원래는 돈과 상관없는 요청을 구별하려던 칸이에요.” 예린이 말했다. “사람이 고지나 설명을 받지 못했을 때도 반환 절차를 열 수 있게 하려고요.”
“그런데 지금 원장에는 열한 명이라고 나오잖아요.”
예린은 컴퓨터 화면에 파일 이름을 띄웠다.
`RETURN_V11_RECIPIENT`.
“저기 'RECIPIENT'는 사람이 아니라 결과를 받을 구성요소를 뜻했어요. 보고서를 출력하는 프로그램이죠.”
준성은 뒷목을 긁었다. “그럼 2018년 제가 검토할 때 본 수취인 열한 명은…”
“버전 번호와 모듈 명칭을 잘못 해석해 표제에 넣었을 수도 있죠. 누가 어떤 시점에 바꿨는지 찾아봐야 해요.”
그들은 2018년 문서의 수정 이력을 열었다. 담당자가 붙여 넣은 표에는 상단 왼쪽부터 숫자와 단어가 어긋나 있었다. 'v11'이 두 줄 아래로 내려가 '수취인' 옆에 붙어 있었다. 작은 줄 바꿈 하나였다. 문제는 그 표가 나중에 외부 금융상품 설명에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열한 사람에게 돈이 갔다고 믿은 이유가, 줄 바꿈일 수 있다고요?” 준성이 물었다.
“그것만으로 전체 사건을 설명할 수는 없어요.” 예린은 엄격하게 말했다. “하지만 최초 숫자의 뜻을 잘못 옮겼다면 나중에 붙은 평가액도 재검토해야 해요.”
민석은 서윤의 전화를 받았을 때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열한 번째 버전이라니. 원장은 사람 숫자에도 거짓말을 할 줄 아는군요.”
“원장이 한 건지, 원장을 읽은 사람이 한 건지 아직 몰라요.” 서윤의 대답은 정확했다.
예린은 문서의 원래 구조를 종이에 다시 그렸다. 한쪽에는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는 칸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프로그램 버전을 표시하는 칸이 있었다. 둘 사이에는 분명 굵은 경계선이 있었다. 그런데 외부로 내보낸 표에서는 그 선이 사라졌다.
“엑셀 셀 하나 밀렸다는 이유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요?” 민석이 전화로 물었다.
“표는 표일 뿐이고, 진짜 문제는 그걸 확인하지 않은 데 있어요.” 예린이 답했다. “백소희 씨의 실제 이의 기록은 표와 별도로 존재했어요. 지급 건수도 계좌로 확인했어야 했고요.”
준성이 한쪽 구석에서 중얼거렸다. “그래서 내가 개발할 때 주석을 빼면 안 됐어. 숫자만 보기 좋게 만들면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읽으니까.”
예린은 준성을 바라봤다. “당신이 만든 화면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 사실일 거예요. 하지만 한 번의 잘못된 디자인이 십 년의 은폐를 혼자 만들어 내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계속 확인하지 않기로 선택한 거죠.”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 문장이라 오히려 더 무거웠다. 그는 파일의 원래 주석과 잘못 유통된 캡처를 나란히 출력하고, 언제부터 구분선이 사라졌는지 추적할 목록을 만들었다.
오후 네 시, 공식 보관 기관은 시범적으로 그 열한 번째 버전의 설명서를 원본과 대조했다. 조사관은 '열한 명에게 지급 완료'라는 문장이 실제 지급 건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고 적었다. 반면 문서에 실명으로 식별 가능한 당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이의는 여전히 한 사람의 이의였다.
백소희는 전화로 결과를 듣고 말했다. “이게 진짜일까요? 저는 여러 사람이 같이 힘을 내야 제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민석이 말했다. “기록에 열한 명이라고 써 있다고 열한 명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사람이 혼자라는 뜻도 아니죠.”
저녁에 서윤은 편집장에게 기획 기사 방향을 제안했다. '열한 명의 피해자'라는 표현 대신 '실제 숫자와 시험 버전이 뒤섞인 기록'이라고 쓰겠다는 것이었다. 편집장은 제목을 읽다가 웃었다.
“너 요즘 제목을 왜 이렇게 길게 써?”
“줄였다가 사람 한 명을 만들어 버린 적이 있으니까요.”
그 말에 편집장은 웃음을 멈췄다.
그날 밤 민석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왔다.
[미확인 수취인 11: 버전 식별 오류 가능성 등록]
[수취인 목록: 새로 집계 예정]
[모든 이해관계인의 확정 수령 여부: 미확인]
민석은 한숨을 쉬었다. 숫자 하나를 고쳤더니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모르는 것의 크기가 또렷해졌다. 그런데 화면 맨 아래에는 새로운 문구가 생겨 있었다.
[2차 수령 확인: 2026.12.15 09:17]
[서명 주체: 한서윤]
서윤은 분명 어떤 봉투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누군가 그녀의 이름으로 두 번째 '완료'를 만들려고 했다.
민석은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또 서명하셨다고 나올 겁니다.”
서윤은 대답 대신 키보드를 두드렸다. 잠시 후 그의 메신저에 사건 취재용 문서가 도착했다.
문서 제목은 간단했다.
‘나는 아직 받지 않았다.’
제11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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