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은 모르는 번호의 경고 메시지를 그대로 기사로 쓰지 않았다. 먼저 발신 시각과 화면을 보존하고 세린에게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보안 보관함에서 물건을 맡고 있는 운송업체 담당자에게 정식 확인 요청을 보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의 손잡이가 서로 부딪힐 때마다 작은 금속성 소리가 났다. 서윤은 열차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이 어떤 봉투를 받았다는 기록이, 그날 밤 회사의 자료에 남았다.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누군가 모르는 사이 '동의'했다고 기록된 이들이 있을까. 숫자가 이제 사람의 얼굴을 따라다녔다.
오전 열 시, 운송업체에서 회신했다. 전날 봉투에 붙은 발송 의뢰 계정의 본인 확인 자료가 부족해, 봉인백을 유지한 채 세온기록관리와 법률 대리인이 참여하는 추가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발신 계정의 이름은 ‘서한문서관리’. 사업자등록을 확인해 보니 실제 존재하던 업체였지만 2024년에 폐업했다.
“죽은 사람 계정 다음에는 문 닫은 회사 계정이네.” 준성이 말했다.
“죽은 사람 계정과 폐업 업체 계정이 실제로 같은 주체인지는 아직 몰라.” 민석은 답했다. “그걸 하나로 엮는 순간 위험해져.”
그들은 혜라의 사무실에서 원래 P00 관련 문서를 펼쳐 놓았다. 2016년에는 백소희가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 일을 보류 상태로 기록하는 장치가 만들어졌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기록이 지워지거나 숫자로 치환됐고, 2036년 계정은 줄곧 그 빈칸 주변에 나타났다.
혜라가 작은 용어집을 펼쳤다.
“여기서 '미수령'은 미지급 금액이 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원래는 문서나 고지, 설명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까지 포함했어요. 2018년 시스템 개정 때는 금전 거래 범주로 좁혀졌고요.”
“그러면 '2036년 강민석 미수령 기록'도 돈이 아니라 고지에 관한 문서일 수 있겠네요.” 서윤이 말했다.
“가능성입니다. 실제 내용을 보기 전에는 특정하지 마세요.”
혜라는 계약상 이해관계인 확인을 거쳐 열람 가능한 최소 목록을 제시했다. 별도 원본을 들고 있는 운송업체, 보관 주체, 실제 신청인 또는 대리인이 서로 다른 범위로 참가해야 했다. 기자인 서윤이 진실을 발견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오후에 백소희가 전화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자신이 최초 신청인인지 공개 기록으로 충분히 확인됐으며, 다른 사람의 내용까지 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제 말이 다른 사람 돈을 가져가는 핑계가 된 건 싫어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민석이 말했다.
“그리고 강민석 씨.”
“네.”
“자꾸 미래의 당신을 찾느라 지금의 당신이 한 말을 놓치지 마세요.”
민석은 한동안 말하지 못했다. 소희가 덧붙였다. “그날 저를 만나러 왔을 때, 처음에는 제 돈을 되찾아 주겠다고 했어요. 지금은 제게 무슨 기록이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하시죠. 그 차이가 저한텐 컸어요.”
준성은 퇴근길에 민석을 잠깐 붙잡았다. 버스 정류장 앞이었다. 바람이 차가워 두 사람은 점퍼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렸다.
“너 요즘 무슨 생각하냐?”
“그냥 자료만 보는 것 같은데.”
“아니. 넌 예전엔 자기 통장에 몇 억이 들어올지부터 물었어. 지금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 서류를 왜 이렇게 열심히 보냐?”
민석은 대답할 말을 찾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엔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 내일 돈이 들어오는 걸 먼저 안다는 게 얼마나 멋져 보였는데.”
“지금은?”
“그 돈이 원래 누구한테 가야 했는지를 먼저 묻게 돼.”
준성은 정류장의 불빛을 올려다봤다. “나도 십 년 전에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았겠다.”
“그때 넌 파일 이름에 붙은 경고를 보긴 했잖아.”
“봤는데도 넘겼지.”
민석은 친구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근처 편의점에서 온장고의 캔커피를 하나 사서 건넸다. 손에 쥘 수 있는 따뜻한 물건이 때로는 섣부른 면죄부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저녁, 관리 주체 간 협의가 끝났다. 봉인백 안쪽의 봉투를 곧바로 뜯는 대신 표면에 보이는 별도 서류 포켓만 제한적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발송 계정의 정당성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포켓에 있는 자료도 출처 미확인 자료로 분류했다.
포켓에서 나온 것은 A4 용지 한 장이었다. 왼쪽 위에는 '[2036-11-20 종료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른쪽 아래에는 도현이 쓰던 원천 자료의 도장이 닮은 마크가 찍혀 있었다. 진짜 도장인지 인쇄된 모방인지 모를 상태였다.
가운데에는 의외의 문장이 있었다.
[미수령 항목: 강민석에게 전달되지 않은 '확인 결과']
[대상 기간: 2016.10.25 ~ 2026.12.13]
[지급 금액: 해당 없음]
[대상자 동의: 미확인]
준성이 문장을 읽고 고개를 들었다.
“강민석이 못 받은 돈이 아니라… 강민석한테 안 알려 준 사실이라는 건가?”
세린은 다시 한 번 출처를 확인하라고 했다. “서류가 이렇게 적혀 있다고 내용이 사실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민석은 마지막 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수령 사유: 당사자가 열람한 것으로 기록됐기 때문]
“나는 열람한 적 없는데.”
말이 저절로 나왔다. 10년 전의 일이라면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2036년의 일이라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양쪽을 누가 하나의 '열람 완료'로 묶어 놓았을까.
그날 밤 휴대전화에 검은 원장이 다시 나타났다.
[내일의 잔액: 변동 없음]
[내일의 미수령 고지: 1건]
[열람자 예정: 강민석]
잔액이 아니라 읽을 문장이 예고됐다. 민석은 비로소 그 검은 화면이 무엇을 거래하고 있는지 조금씩 이해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돈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를 사고팔고 있었다.
제11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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