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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111화
PAYLUA ORIGINAL · 제111화

111화. 받지 않은 봉투의 주인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836자

오프라인 책장
12월 13일 일요일 오전 아홉 시 십오 분. 한서윤은 편집국이 있는 건물의 출입문 앞에서 처음 보는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두툼한 회색 봉투를 끌어안고 있었다. 눈이 내릴 듯 흐린 하늘 아래, 그는 휴대전화와 건물 이름을 번갈아 확인하다가 서윤을 보자 움직임을 멈췄다. “한서윤 기자님 맞으십니까?” “어떤 일로 오셨죠?” “보관물을 전달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서윤은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발걸음을 거두었다. 어젯밤 민석이 보여 준 검은 원장의 문구가 떠올랐다. [원본 보관자: 한서윤] [보관 시작일: 2026.12.13] “제가 보관을 약속한 물건은 없습니다.” 남자는 안도의 표정을 짓는 대신 당황했다. “그런데 접수 화면에는 벌써 수령이 끝난 걸로 나와요.” 그가 내민 휴대전화에는 '수취 확인 완료'라는 초록색 표시가 떠 있었다. 서윤은 화면을 가까이 들여다보되 손대지 않았다. 시각은 오전 아홉 시 십칠 분. 아직 두 분 뒤였다. “이거, 언제 새로고침하셨어요?” “오기 전에요. 잠깐만요.” 남자가 화면을 내렸다 올렸다. 표시가 바뀌었다. [수취 예정 09:17 / 완료 조건 확인 중] 서윤의 등 뒤에서 자동문이 열렸다.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도로를 가르며 지나갔다. 아주 평범한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평범한 화면의 한 줄도 마음대로 믿을 수 없었다. “제게 연락하신 분의 이름과 소속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그전에는 받지 않겠습니다.” “전달하라고 해서 온 건데요.” “돌아가셔도 됩니다. 단, 반송이라고 해서 제 수령 거절의 이유를 임의로 적지는 말아 주세요.” 서윤은 남자의 허락을 받아 접수번호와 화면의 문구를 촬영했다. 남자는 자신이 소규모 기록물 운송업체의 계약 기사라고 밝혔다. 의뢰인은 봉투의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고, 사무실 문 앞에 놓인 물건을 가져가라는 문자만 보냈다고 했다. 서윤은 곧바로 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짜 왔어요. 다만 아직 받지 않았어요.” 민석은 회사에 출근할 때보다 빠르게 옷을 입고 있었다. “누가 보냈답니까?” “의뢰인을 모르겠대요. 그런데 수취 예정 시각이 원장의 시각과 똑같아요.” “아홉 시 십칠 분?” “네.” “우선 봉투를 열거나 보관했다고 기록하지 마세요. 제가 세린 씨에게도 연락할게요.” 그동안 남자는 인도를 벗어나 작은 편의점 처마 아래 섰다. 그는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았다. 서윤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도 누군가 만든 '완료'라는 글자에 쫓겨 이곳까지 왔을 뿐일지 모른다. 라온은 명함을 내밀었다. '최라온, 현장운송'이라는 글씨가 작게 인쇄된 카드였다. 명함 뒷면에는 긴급 연락처가 손글씨로 추가돼 있었다. 서윤이 어째서 직접 이 일을 맡았느냐고 묻자 라온은 근처에 사는 기사 중 일요일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평소 서류를 전달하고 수령 확인을 받는 일을 했다. 남의 물건을 옮기는 직업이라서, 누구에게 무엇을 건넸는지가 자기 하루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오늘 이거 끝내면 어머니 모시고 병원 가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빨리 처리하고 싶었어요.” “저도 얼른 끝내고 싶네요.” 서윤이 말했다. “그런데 모르는 걸 받았다고 쓰면 안 되죠.” 라온은 봉투를 더 힘주어 쥐었다. 서윤은 잠깐 미안했다. 이미 떨고 있는 사람을 수상한 의뢰인과 같은 편처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명함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했다. 라온이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적어도 지금 봉투가 누구 손에 있는지는 함께 알고 있었다. 오전 아홉 시 십칠 분. 남자의 전화가 짧게 울렸다. [배송 완료] [수취 방식: 대면 인계] [수취인: 한서윤] 남자의 얼굴에서 피가 가셨다. “저, 전달 안 했습니다.” “알아요. 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서명까지 떠요.” 남자는 화면을 돌렸다. 화면에는 서윤의 이름 세 글자가 가느다란 획으로 쓰여 있었다. 서윤은 그 모양이 자신의 서명과 전혀 다르다는 걸 단번에 알았다. 그러면서도 더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서명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이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곳이 있을 수 있었다. 어느 사무실에서는 '서명 존재'라는 칸만 보고 업무를 끝내 버릴지도 몰랐다. 서윤은 남자에게 말했다. “지금 이 화면을 지우지 마세요. 회사에 미인계 사실을 정정해 달라고 요청하시고, 요청한 시각도 남기세요.”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대면 인계 아니십니까'라고 묻자 그는 처음에는 작게 대답했다가 두 번째에는 분명하게 말했다. “아니요.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봉투는 지금 제 손에 있습니다.” 민석이 도착한 것은 십 분 뒤였다. 그는 숨이 찬 얼굴로 서윤과 운송 기사를 번갈아 봤다. 아무도 봉투를 가져가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일단 어깨의 힘이 빠졌다. “미래를 맞힌 건가?” 그가 혼잣말했다. 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미래를 맞힌 게 아니라, 우리가 안 한 일을 했다고 적은 거죠.” 민석은 다시 휴대전화를 보았다. 검은 원장에 새로운 문구가 나타나 있었다. [2036년 강민석 미수령 기록] [보관 완료: 예] [보관자 부인: 한서윤] [이의 접수 가능 시간: 02:00] 두 시간 동안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부인한 일이 '완료'로 굳어지는 구조. 서윤은 어젯밤보다 빠르게 사건을 이해했다. “이의 제기를 하겠습니다. 대신 어디에 해야 효력이 있는지부터 찾죠.” 바람에 봉투의 오른쪽 모서리가 들렸다. 투명 보호 필름 아래 작은 문장이 드러났다. ‘개봉 전, 최초 미수령인의 말을 확인할 것.’ 서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십 년 전 도현이 남긴 조건과 너무 닮아 있었다. 누군가 원본을 지키려는 사람의 언어를 빌려, 또 다른 거짓 영수증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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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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