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윤의 취재 수첩에는 더 이상 금액순으로 이름이 적히지 않았다.
누가 얼마를 잃었는가보다 누가 무엇을 받았다고 믿게 되었는가를 묻는 편이 사건의 윤곽을 더 정확하게 보여 주었다. 서윤은 사전에 동의한 당사자만 만나고, 금융기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록과 개인의 기억을 따로 표시했다.
첫 번째는 작은 인쇄소를 운영하는 오명숙이었다. 그녀는 2019년 거래처가 마련한 지원금을 받은 줄 알고 있었다.
“통장에 들어온 건 아니에요. 담당자가 다른 비용에서 차감했다고 했거든요. 그럼 받은 거 아닌가요?”
“그 비용에서 실제 차감된 사실을 확인하셨어요?” 서윤이 물었다.
명숙은 계산기를 꺼냈다. 다섯 해 동안 정리해 온 매출 장부가 있었지만, 해당 항목의 증빙은 비어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를 내려다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서윤은 즉시 정정했다. “아직 못 받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당시 계약과 지급 방식부터 확인해야 해요.”
두 번째는 배달 일을 하다가 다친 이정훈이었다. 정훈은 보상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런데 2018년 위험 평가 자료에는 '수령 확인 완료'라고 표시돼 있었다.
“저는 신청한 적도 없었어요.”
“그러면 어떤 자료에 이름이 올라갔는지부터 확인해야겠네요.”
“잘못된 이름 하나 때문에 보험이 거절되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서윤은 즉답하지 않았다. 그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사하기 전에는 달래는 말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세 번째 사람은 전혀 달랐다. 사십 대의 회사원은 본인에게 돈이 실제로 지급됐다는 은행 거래 내역을 보여 주었다. 다만 원장에 적힌 지급일보다 한 달 늦었고, 금액도 일부 달랐다.
“저까지 피해자라고 기사에 넣지 마세요.” 그가 말했다. “저는 돈 받았습니다. 다른 문제가 있는지는 몰라도.”
서윤은 수첩에 굵게 적었다. ‘실제 수령 확인. 시점·금액 상이. 당사자 피해 주장 없음.’
모든 사례를 하나로 묶으면 편한 기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편한 기사는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를 지워 버렸다.
명숙은 서윤이 떠난 뒤 인쇄소 작업대 위에 낡은 거래 명세표를 펼쳤다. 종이 끝은 잉크가 번져 있었고, 한 장은 오래전 장마에 젖어 글자가 희미했다. 그녀는 기록을 보관하는 데 익숙했다. 주문한 사람이 규격을 잘못 기억하면 서로 다투게 되므로, 인쇄소에서는 1밀리미터 차이도 기록으로 남겼다.
정작 자신이 받았다는 지원금에 대해서는 아무 증빙이 없었다. 거래처 직원이 전화로 말했다는 기억뿐이었다. 명숙은 그 사실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서윤은 명숙의 손에서 계산기를 빼앗지 않았다. “모른다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우리가 확인하면 되죠.”
“돈을 못 받았으면 세금을 더 낸 걸까요?”
“그것도 지금은 단정할 수 없어요. 회계 담당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처리됐는지 묻는 편이 정확합니다.”
명숙은 수첩에 ‘받았는지 확인’이라고 적었다. ‘돌려받을 돈’이라고 적지 않았다. 그 차이를 서윤은 기억해 두었다.
정훈은 서윤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 왔다. 다친 팔에 깁스를 한 채 병원 앞에 서 있는 과거의 자신이었다. 그는 치료비를 지원해 준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그 선의가 나중에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된 다른 보상과 혼동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사진은 기사에 쓰지 마세요.” 정훈이 말했다. “그때 같이 다친 동료들이 저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사진도 보도 자료에 포함하지 않을게요.”
서윤은 파일을 취재용 보호 폴더로 옮긴 뒤 메모에 ‘공개 동의 없음’이라고 굵게 적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과 그 이야기를 모든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권한이었다.
민석은 저녁에 세린의 사무실에서 취재 내용을 들었다. 서윤은 당사자 동의를 얻은 요약만 공유했다. 민석은 정훈의 사건에서 가장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신청도 안 했는데 받았다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니.”
“대표 수취인 표기가 실제 승인이라는 뜻이 아닐 가능성이 더 커졌죠.” 세린이 말했다. “그렇지만 그 표기가 다른 회사의 의사결정에 쓰였다면 책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럼 당장 모두에게 연락하면 안 됩니까?”
“연락할 권한과 기준이 필요합니다. 검은 원장의 명부가 진짜 개인정보 목록인지부터 확인하지 않으면 오히려 피해를 늘릴 수 있어요.”
민석은 수긍했다. 시스템이 보여 주는 숫자가 사람을 뜻한다고 믿는 순간, 자신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었다.
그때 백소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도 한 가지 증언을 하고 싶어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2016년에 문의서를 낸 뒤 연락이 왔어요. 담당자가 ‘지급 사실을 계속 확인하지 않으면 저절로 완료 처리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안 받았다고 말했죠.”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이름은 모르지만, 통화 메모를 남겼어요. 그날 종이 달력에 적었거든요.”
소희는 메모 사진을 보냈다. 날짜 옆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있었다.
‘완료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음. 담당자에게 재확인 요청.’
민석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사람이 끝내 반대했는데도 프로그램이 ‘무이의’라고 적었다면, 그것은 단순한 침묵의 오해가 아니었다.
그날 밤 검은 원장이 켜졌다.
[수취인 1 이의 제기: 외부 접수 확인]
[대표 수취인 상태: 검토 중]
[영향 대상: 10명]
공식 접수증을 냈을 뿐인데 시험 원장의 표시가 바뀌었다. 누군가 공식 창구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 줄은 민석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10명 중 1명: 이의 제기 철회 예정]
[예정 시각: 내일 09:05]
그 이름은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철회 예정이라는 말만큼은 선명했다. 어떤 사람은 지금도 자신의 뜻을 빼앗길 위험 앞에 놓여 있었다.
제10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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