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석은 은행 창구 앞에서 천 원짜리 거래 내역을 다시 펼쳤다.
12월 7일 월요일 오전. 번호표를 뽑은 사람들은 대출 만기를 연장하거나 카드 비밀번호를 바꾸러 왔다. 그 사이에서 민석은 송금인도 모르는 천 원을 보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어제 붕어빵 가게 앞에서 들어온 돈이었다. 은행 앱에는 분명 입금 완료라고 표시돼 있었다.
그런데 검은 원장은 이렇게 적었다.
[2036년 수취인 명부 / 1]
[성명: 강민석]
[수령 확인: 완료]
[실제 지급 확인: 없음]
“저한테 들어온 천 원의 송금 경위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직원은 화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계좌 거래의 사실관계는 확인해 드릴 수 있지만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바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 송금인이 미래의 저인지도 알 수 없겠군요.”
직원이 눈을 들었다. 민석은 급히 말을 고쳤다. “아닙니다. 적요에 이상한 글자가 있어서요. 제 명의를 도용한 송금일 가능성도 있고요.”
접수번호가 발급됐다. 직원은 민석이 요청한 것이 거래 취소가 아니라 자금 출처에 대한 정식 확인이라는 점을 재차 물었다. 민석은 기록을 남기고, 해당 천 원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의 계좌에서 왔는지 알기 전까지 자신이 임의로 돌려보내는 것도 피하기로 했다.
은행 직원이 상담 내용을 출력하는 동안 민석은 유리 너머의 자동화기기를 바라봤다. 어제 저녁의 천 원이 가장 작고 선명한 숫자로 머릿속에 남았다. 처음 원장을 발견한 날에는 커피 한 잔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예상 수입에도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제는 누가 넣었는지 모르는 돈이라면 단 한 원도 마음 놓고 받을 수 없었다.
“계좌는 정상적으로 유지하셔도 됩니다. 다만 같은 유형의 거래가 반복되거나 본인이 승인하지 않은 출금이 확인되면 바로 신고해 주세요.”
직원이 안내문에 밑줄을 그었다. 민석은 그 자리에서 숫자 조합으로 표시된 송금인란과 거래 시각을 따로 옮겨 적었다. 적요가 비어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검은 원장에는 발신자가 ‘강민석’이라고 쓰였지만, 공식 거래 기록에는 그런 이름이 없었다.
그는 서로 다른 두 사진을 같은 폴더에 저장하지 않았다. 은행에서 확인한 사실과 검은 화면이 주장하는 내용을 섞는 순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은행 밖으로 나가기 전에 그는 번호표를 구겨 버리려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어쩌면 이 번호표도 나중에 누구를 만났고 언제 무엇을 신청했는지 입증할 작은 기록이 될 수 있었다. 기록을 믿지 못하게 된 남자가 기록에 더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우스웠다.
밖으로 나오자 준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편의점에서 사 온 따뜻한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천 원 때문에 오전을 다 쓴 거야?”
“천 원이어서 다행이지. 천억이었으면 사람들한테 뭐라고 설명했겠어.”
“천억이면 다 설명할 때까지 돈부터 묶어야지.”
준성은 가볍게 농담했지만 눈 밑이 어두웠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2018년 예외 승인이 어떤 금융상품에 연결됐는지 확인하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과거에 자기 이름이 기록을 판매하는 보고서에 남았다는 사실도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민석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2036년 수취인 명부에서 내 이름을 봤어. 받았다고 적혀 있는데 실제 지급 확인은 없대.”
“백소희 씨하고 똑같네.”
“아니. 아주 중요한 게 달라.”
민석은 은행 앱을 켰다. “소희 씨 건은 돈을 받았다는 기록이 사실과 충돌했어. 나는 실제 천 원을 받았지. 근데 원장은 그걸 지급으로 인정하지 않아.”
“그러니까 두 장부가 다른 거래를 보고 있다는 거군.”
“그걸 확인해야 해.”
세온기록관리 회의실에서 기태는 자료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전날 공식 금융기관으로부터 확인한 원천 보류 기록의 요약이었다. 다른 하나는 2036년 시험 계정에서 출력한 수취인 명부였다. 두 종이는 제목만 비슷했다. 거래 식별 번호와 보관 근거는 전혀 달랐다.
“천 원은 실제 거래입니다.” 기태가 말했다. “하지만 이 명부의 1번 항목은 2036년에 작성된 지급 완료 표시가 아닐 수 있어요. 시험 계정에 미래 날짜가 붙은 기록입니다. 날짜만 보고 미래 거래라고 확정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제 온 메시지는요?”
“그건 누군가 지금 보낸 문장입니다. 다만 누구인지 모르는 거죠.”
서윤이 작은 수첩을 펼쳤다. “그럼 질문을 두 개로 나눕시다. 누가 실제 천 원을 보냈는가. 그리고 누가 미래의 민석 씨 명의로 ‘받았다’고 주장하는가.”
민석은 두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오후 세 시, 법률 대리인 세린이 전화했다. 2036년 명부에서 민석의 이름 옆에 붙은 작은 표기를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수령 확인 완료라는 말 아래 ‘무이의 경과’가 있어요.”
“무슨 뜻입니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기간이 지났다는 뜻처럼 읽힙니다. 다만 그 문구가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지는 별개예요.”
“저는 그 돈이 뭔지도 모르는데요.”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어떤 기록은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동의로 바꾸려 하거든요.”
저녁이 되자 민석의 검은 원장에 새 메시지가 나타났다.
[수취인 1 / 이의 제기 가능]
[남은 기간: 72시간]
[대상 지급: 세부 내역 비공개]
버튼은 두 개였다.
[확인] [이의]
민석은 어느 쪽도 누르지 않았다. 화면을 촬영한 뒤 세린에게 전송했다. 72시간이 지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판단할 이유가 없었다.
잠시 뒤 메시지의 마지막 줄이 바뀌었다.
[별도 수취인 10명 / 처리 대기]
그는 숫자 열을 오래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미래’가 자기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10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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