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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97화
PAYLUA ORIGINAL · 제97화

97화. 지워진 이름으로는 문을 열 수 없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71자

오프라인 책장
천계 총심리원의 임시 심리 날짜가 앞당겨졌다. 정식 후속 심리까지는 아직 여러 날이 남았지만, 무진 분지의 역류 사태와 반환대의 통행 제한 문제만큼은 먼저 다뤄야 했다. 에르테는 사건을 원시 규칙의 소유권 문제와 분리했다. 지금 논의할 것은 누가 신앙의 주인이냐가 아니라, 이름을 잃은 사람이 긴급한 상황에서 출구를 사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그걸 심리하는 데도 며칠이 걸립니까?” 재하가 물었다. “그렇게 두고 볼 생각은 없습니다.” 에르테가 대답했다. “긴급 안전 결정은 오늘 안에 내리겠습니다.” “좋은 소식이네요.” “대신 자료를 먼저 내셔야지요.” “역시 천계군.” 마온과 동료는 아직 반환대의 세 번째 문 앞에 있었다. 그들은 약속한 중단 신호를 보내지 않았고, 물이 찼던 통로에서 임시로 높은 곳을 찾아 대기했다. 세다는 계속 목소리를 확인했다. 마온은 그 자리에서 출구의 글씨를 그대로 옮겼다. 원래 규칙은 ‘이름 확인 불가 시 문 폐쇄’였고, 누군가 뒤늦게 손으로 새긴 문장에는 ‘살아 있는 사람은 이름 없이도 통행 가능’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문장이 언제 새겨졌는지는 몰랐다. 반항의 흔적인지 구조 지침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헬은 그 문장 뒤에서 손잡이 하나를 발견했다. 손잡이는 사람의 힘으로 돌릴 수 있는 모양이었지만, 누군가 금속 마개로 덮어 놓았다. “물리적인 출구를 막은 게 아닌가요?” 릴리가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그러면 관리 규칙의 개정뿐 아니라 방해 행위도 조사해야 해요.” 원시 응답권 조합의 대표 마티르는 심리원에 출석했다. 그는 기존의 폐쇄 규칙이 수백 년 동안 여러 구조물을 보호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 사람들이 통로를 사용하면 신격 자산이 유출되고, 구조망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 안에 지금 사람이 있습니다.” 재하가 말했다. “정식 등록된 귀환자는 아닙니다.” 마티르가 답했다. “등록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가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사람을 내보내는 데 필요한 절차를 바로 정해 주세요.” 마티르는 오래된 협약서 여러 장을 펼쳤다. 조항이 많았지만 어느 조항에도 긴급 구조의 예외를 처리하는 방식은 없었다. 에반은 협약서 앞부분에 붙어 있는 설명 문구를 읽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는 반환 서비스.’ 옛날 광고네.” “네가 만든 건가?” 재하가 물었다. “아니. 내 작품이었으면 글자가 더 컸어.” 한 보좌관은 임시 심리를 진행하면 다음 정기 심리가 늦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에르테는 그 우려도 기록하도록 했다. 다만 위험에 처한 통행자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정기 일정의 편의만으로 긴급 판단을 미룰 수는 없었다. 재하는 오랜만에 심리원의 시계를 바라봤다. 몇 시간 뒤 이 자리에 어떤 결론이 내려지느냐에 따라 지상의 작은 서랍이 열릴 수도, 계속 닫혀 있을 수도 있었다. 천계의 커다란 시계가 사람의 시간을 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에르테는 발언을 정리했다. 재하에게도 절차를 무시할 생각이 없는지 확인했다. 재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요구한 것은 원본을 삭제하거나 누구에게 일괄 통행권을 주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출구를 열 수 있도록 하는 긴급 조치였다. “출구를 열면 다른 곳에 영향이 있습니까?” 에르테가 물었다. 나헬이 수압 측정 결과를 보여 줬다. 문을 전체 개방하면 지상 관로에 역류가 발생할 수 있지만, 아래쪽 배수판을 먼저 열어 수압을 낮추면 짧은 시간 사람만 통과시킬 수 있었다. 다만 실행할 인력이 필요했고, 그 인력은 신의 권능이 아니라 손으로 장치를 다룰 수 있어야 했다. “그럼 문제는 허가와 현장 안전이군요.” 에르테가 말했다. 마티르는 반발했다. “허가만 내준다고 문이 안전하게 열립니까?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집니까?” “책임을 확인하는 건 필요합니다.” 에르테가 말했다. “다만 위험을 알았다는 사실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중간 증거 조사에서는 오래된 협약서의 문구가 다시 문제 됐다. ‘귀환자 확인 불가’라는 표현은 안전을 위한 임시 통행 중단을 뜻할 수도 있었고, 영구히 출구를 폐쇄하라는 명령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뒤쪽의 시행 규칙은 두 해석을 구분하지 않고 자동 폐쇄만 실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세리아는 시행 규칙이 최초 문서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는지 확인했다. 인장의 눌림 깊이와 기록실에 남은 승인 날짜가 일치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중에 새 규칙을 추가한 흔적이었다. “이게 누가 꾸민 일인지 증명합니까?” 에르테가 물었다. “아닙니다.” 세리아가 대답했다. “추가된 날짜와 추가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조직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 작성자와 승인자가 동일한 사람인지는 더 살펴야 합니다.” 마티르는 자신의 조직이 당시의 문서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보관이 작성이나 승인까지 뜻하지는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재하는 즉시 그를 고발하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적을 만들면 심리는 전보다 더 쉽게 권력 다툼으로 변할 것이다. 그때 한 늙은 신이 발언을 신청했다. 그는 농경과 물길을 담당하는 소신 라모스였다. 거대한 신전도 없고 신도 수가 많지 않았지만, 수백 년 동안 작은 농촌의 수로를 지켜 온 신이었다. “자동 폐쇄 규칙 덕분에 누수를 막았던 적이 있습니다.” 라모스가 말했다. “반환대와 연결된 옛 배수로가 무너지던 해였습니다. 그때 문을 열었다면 인근 농지가 모두 잠겼을지도 모릅니다.” 법정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재하는 라모스의 말을 함부로 부정하지 않았다. 나쁜 결과가 나왔다고 모든 규칙이 애초부터 악한 목적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럼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수로를 고칠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기술자가 많지 않았지요.” “그러면 닫는 규칙이 필요했던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안에 있을 때에도 예외 없이 닫는 건 어떻게 된 거죠?” 라모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이 거기까지 미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대신 당시 수로를 관리하던 농민들의 노트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에르테는 기록을 증거 목록에 추가했다. 오래된 규칙에 쓸모가 있었던 순간이 존재해도, 그 규칙이 모든 상황에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심리원은 그 차이를 분명히 해야 했다. 한편 무진 분지의 주민들은 임시 심리가 자신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천계의 서류는 어렵고 길었다. 릴리는 주요 안건을 세 줄로 요약한 안내문을 만들었지만, 첫 초안은 지나치게 단순했다. 나헬이 그 문서를 보고 말했다. “문을 열면 안전하다고 적혀 있네요. 조건을 빼면 오해할 수 있어요.” 릴리는 문장을 고쳤다. ‘수압을 낮춘 뒤, 현장 기술자가 안전을 확인한 경우에만 출구를 제한적으로 열 수 있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해야 하는 일을 알려 주었다. 에반은 한 걸음 더 나갔다. 가짜 안내문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마을의 공지판에 공식 접수번호를 함께 표시하자고 했다. 과거 자신이 광고에 썼던 가짜 권위 표식을 반대로 이용한 셈이었다. 공지에는 주민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록 보관소와 담당자의 근무 시간까지 적었다. “기억나?” 재하가 에반에게 물었다. “우리가 첫날 안내창을 믿었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응. 0포인트짜리 신격을 아무 설명 없이 받았지.” “그래서 문서 읽는 법을 배운 거잖아.” “내 인생 가장 재미없는 기술을 배웠어.” “하지만 쓸모는 있잖아.” “너무 많아서 문제지.” 주민 설명회에서는 각자가 다른 걱정을 말했다. 누군가는 기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했고, 누군가는 아이들의 이름이 밖으로 나갈까 두려워했다. 또 누군가는 어느 신에게 기도할지를 떠나 수문을 고칠 수 있느냐고만 물었다. 릴리는 모든 의견을 하나의 찬반 투표로 묶지 않았다. 공개 범위, 안전 조치, 과거 계약의 책임을 각각 다른 안건으로 분리했다. 그 결과 모두가 만족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에 동의하고 무엇에 반대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재하는 그것만으로도 이전보다 나은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저녁 무렵 라모스가 오래된 농민 노트의 일부를 보내 왔다. 그 안에는 아주 짧은 주석이 있었다. ‘문을 닫는 일은 쉽다. 그러나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면 다시 열 방법을 반드시 남겨 둘 것.’ 재하는 그 문장을 에르테에게 전달했다. 심리원은 결국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시설을 지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닫는 규칙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닫은 문을 열 권한이 오직 누군가의 자산 가치에 달려 있어서는 안 됐다. 총심리원에는 릴리가 제출한 독립 의견서도 접수됐다. 릴리는 신에게 치료받은 경험과 반환대 탐사 경험을 나란히 적었다. 도움을 받은 사실이 이후 모든 동의권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면서, 구조 현장에서는 사람의 이름보다 현재 상태와 안전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도라는 신분을 빼도 같은 말을 하시겠습니까?” 에르테가 물었다. “네.” “만약 윤재하 신격이 이 사건을 주도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통로 안에 사람이 있으면 구조해야죠.” 법정 한편에 있던 신들이 조용해졌다. 어떤 신은 인간이 신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릴리는 바로 대답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누구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물이 차오르는 곳에 계신 분들은 그 질문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 어려워요.” 카르도도 증언했다. 그는 신격의 힘으로 금속문을 부술 수는 있지만 그 경우 반환대가 등록 신격의 침입으로 판단해 모든 출구를 잠글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쟁신의 힘이 언제나 구조에 유리하지 않다는 인정이었다. “그럼 신은 현장에서 아무것도 못 합니까?” 마티르가 비꼬았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카르도가 말했다. “퇴로 확보, 대피, 보급, 경계 유지. 내 군이 그런 일을 모른다고 생각하나?” 재하는 카르도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 불법 기적을 문제 삼아 신격 회수를 압박하던 전쟁신이, 이제는 구조 절차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힘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바뀐 것은 검의 무게가 아니라 그것을 언제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었다. 심리 도중 세다의 긴급 통신이 들어왔다. “마온이 배수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문을 돌리려면 밖에서 걸쇠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고 해요.” “밖이 어디죠?” 재하가 물었다. “우편집입니다. 하심 할아버지의 서랍 뒤쪽이 연결돼 있어요.” 하심은 서랍 밑면을 다시 살폈다. 작은 금속 못 두 개가 나무판 아래로 튀어나와 있었다. 한쪽은 오래된 수리 흔적 같았고,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덧댄 것이었다. 에르테는 긴급 결정을 내렸다. [반환대 긴급 출구 사용 허가] [범위: 현재 위험에 노출된 통행자의 귀환 및 즉시 구조] [금지: 원본 기록 반출, 신앙 권리 이전, 소유권 확정] [조건: 현장 기술자 판단과 중단 신호 준수] 재하는 허가문을 받아 들고 멍하니 바라봤다. “오늘은 이게 정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종이네요.” “종이만으로는 안 됩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밖에서 걸쇠를 풀 사람이 있어야죠.” 하심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 우편집 서랍이면 내가 열어야지.” 세다가 통신을 연결했다. 나헬은 수압을 확인했고, 카르도는 대피 인원의 마지막 명단을 받아 들었다. 재하는 서랍 옆에 엎드려 줄을 다시 잡았다. 하심이 첫 번째 걸쇠를 돌렸다. 안에서 마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수판이 조금 열렸습니다!” 두 번째 걸쇠를 돌리려던 순간, 나무판 아래에서 검은 빛이 번졌다. 오래된 계약 표시였다. 마티르가 낸 협약서와 같은 문양이 서랍 바닥에 떠올랐다. [경고: 무단 귀환 시 최초 대기자의 응답권 자동 압류] 하심의 손이 멈췄다. “사람을 내보내면 기다리던 아이의 권리를 뺏겠다는 건가?” 재하는 분노했지만, 바로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압류가 실제로 일어나는 조건을 확인해야 했다. 그때 ‘무상의 약속’의 오래된 문구가 그의 앞에 떠올랐다. [강제 헌납 무효화: 선택 가능한 대상 확인] [대상: 구조와 무관한 강제 귀속 조항] 그가 알던 권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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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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