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신발에 적힌 이름이 공개되자 천계의 신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는 기록 `000000`보다 앞선 존재가 정말 있었다며 흥분했고, 누군가는 원시 규칙 0의 정정 심리를 무효로 돌릴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 어떤 신들은 신발 하나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안 된다며 입을 닫았다. 재하는 마지막 태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천계에 신중한 신들이 생겼네요.”
에반은 웃었다. “처음부터 많았어. 신중하게 자기 몫을 챙기는 데만 썼을 뿐.”
신발의 실밥은 모두 일곱 가닥이었다. 세리아가 육안 검사를 마치고 기록 보존소에 조사를 신청하자, 뜻밖에도 최초 우편로의 수선공 명부가 나왔다. 원시 우편물이 이동하던 시대에는 봉투와 신발, 천 주머니에 같은 매듭을 썼다고 했다. 철자 대신 실의 색과 꼬임으로 수선공과 물품을 구분하는 방식이었다.
“신발은 물건이지만, 이름을 단서는 될 수 있어요.” 세리아가 말했다. “다만 이름을 증명하는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죠.”
그들은 소금뜰의 노인에게서 오래된 직물 책자를 빌렸다. 책자에는 홍수를 피해 이동한 가족들이 아이들의 신발을 다른 천으로 덧대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붉은 실을 매듭으로 감으면 ‘북쪽으로 갔다’는 뜻이고, 푸른 실을 두 번 감으면 ‘돌아오는 길을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아라의 신발에는 두 가지 매듭이 모두 남아 있었다.
릴리는 노아의 신발을 꺼내 놓고 크기를 비교했다. 노아는 호기심에 가까이 와서 물었다.
“이 신발 주인은 나보다 작아?”
“그랬을 수도 있어.”
“그럼 추웠겠다.”
재하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들은 ‘아라’라는 이름이 최초 기록의 의미를 어떻게 바꿀지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발이 얼지 않았을지가 더 중요했다.
“맞아. 춥지 않게 해 줘야 했을 텐데.” 재하가 말했다.
하심은 우편 보존소의 지하 창고에 오래된 출입 목록이 남았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 창고는 귀한 마법이 아니라 오래된 종이의 무게 때문에 위험했다. 서류 상자들을 세워 두고 통로가 좁아진 데다, 천장에 물이 샌 흔적까지 있었다.
카르도는 군 병참부에서 목재 지지대를 지원했다. 대장장이는 볼트를 만들었고, 유리포의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상자를 옮길 수 있는 작은 바퀴 달린 판을 제작했다. 재하는 여기서 처음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신전이 시설을 얼마나 많이 빌려 쓰는지 알게 됐다.
“우리 신전 회계에 이거 다 적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물었다.
에반이 자신 있게 말했다. “기부받았다고 적으면 끝나.”
릴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중에 저 사람들이 어디에 얼마나 시간을 썼는지 사라져요.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 남기고, 원하면 이름을 적지 않을 수도 있게 해 주세요.”
“알았어. 에반, 회계 양식 새로 만들자.”
“또?”
“전직 마케팅 전문가라며.”
“나는 사람을 모으는 전문가였지, 사람에게 정직하게 빚지는 전문가는 아니었거든.”
창고에서 나온 첫 상자는 기록이 아닌 바느질 도구로 가득했다. 두 번째 상자에는 선물로 건네려다 도착하지 못한 목도리가 있었다. 세 번째 상자의 맨 아래에서야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작은 수첩이 발견됐다. 수첩은 종이가 물에 젖어 한 장씩 떼어내기 어려웠다. 세리아는 기록 관리인에게 복원 작업을 맡기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도록 했다.
하심은 그 사이 편지들을 분류했다. 오래된 실밥이 있다고 모두 아라와 관계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물건은 같은 시기의 수선공이 만든 것이고, 어떤 것은 나중에 비슷하게 꾸민 기념품이었다. 그래도 한 장의 표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북쪽 이주 호송 명단]
[가족 단위 이동: 열세 가구]
[마지막 통행 아동: 아라]
[동행 보호자: 빈칸]
“보호자가 없었다는 뜻인가요?” 릴리가 물었다.
“기록이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심이 말했다. “그 두 가지는 같지 않아요.”
나헬은 호송 명단의 아래쪽에 남은 손그림을 보고 무릎을 꿇었다. 그는 지도를 거꾸로 돌려 보여 주었다. 굽은 선은 강을 뜻하고, 작은 점들은 제방 위에 세운 급수통을 뜻했다. 첫 번째 응답 기록에서 보았던 수로와 연결되는 지형이었다.
“이주민들이 물을 건너던 시기가 기록 `000000`이 작성되기 전일 가능성이 있어요.” 나헬이 말했다. “그때 저 아이가 마지막으로 이동했다면, 아라가 먼저 길을 건넜다는 뜻은 아니겠죠.”
“누군가 데리러 가야 했겠네요.” 재하가 말했다.
하심은 수첩을 덮었다. “그래서 첫 번째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질문이 나왔을 수도 있소.”
수첩 복원을 기다리는 사이 뜻밖의 소문이 번졌다. 누군가 ‘최초의 신은 아라라는 어린아이였다’는 이야기를 퍼뜨린 것이다. 소문에는 아무 근거도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래된 신발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옮겼고, 사진을 본 신도 중에는 아라의 이름으로 새 성소를 만들자는 사람까지 나왔다.
재하는 에반에게 말했다. “이런 건 어디서 막아야 해?”
에반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문이 이미 돌아가면 막으려고 할수록 더 퍼질 수 있어. 대신 우리가 확인한 것과 모르는 것을 분리해서 알리자.”
릴리는 우편집 앞에 작은 안내문을 붙였다.
‘아라는 오래된 호송 명단에 기록된 어린아이의 이름입니다. 신격을 지녔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신발과 수첩은 보존 중이며, 개인 기록의 공개 범위는 아직 심의하고 있습니다.’
그날 오후 아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던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릴리를 보고 왜 새 성녀가 되지 않으려 하느냐고 따졌다. 릴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어린아이의 이름을 발견했다고 그 아이의 뜻을 대신 말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어요.”
“그러면 저희 기도는 헛된 겁니까?”
“기도하실 수는 있죠. 하지만 아이가 여러분 기도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봤다. 한 남자는 자신이 겪은 고통 때문에 누구라도 자신을 도와줄 존재가 필요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하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지 않았다.
“저도 신도 한 명이 없을 때는 누군가 저를 믿어 주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알아요. 다만 이름을 모르는 아이에게 우리가 원하는 역할까지 맡기면, 그 아이를 찾는 일이 아니라 우리 마음대로 만들게 되겠죠.”
그는 사람들이 납득하기까지 시간을 주었다. 이해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몇 사람은 자신들의 기도를 쓰고 싶다며 우편집에 종이를 남겼다. 하심은 그 편지를 모두 신앙으로 등록하지 않고, 내용에 따라 수신자 미정 편지로 보관했다.
동시에 신발 사진의 무단 복제 문제도 생겼다. 오래된 기록을 자유롭게 보존하자는 사람들과, 지금 살아 있을지 모를 후손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는 사람들이 의견을 달리했다. 하나는 북방 도시의 보관인들에게 물어 보겠다고 했다. 보관인들은 사진의 일부만 공개하고, 봉투 안쪽과 필체는 아직 보여 주지 않기로 합의했다. 누군가 편지 내용을 조작해 새 계약을 꾸미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에반은 공개된 자료마다 날짜와 확인 상태를 적는 방식을 제안했다. 과거 자신이 만든 과장 광고와 반대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쓰는 홍보였다.
“놀랍네요.” 재하가 말했다. “광고업계에서도 사실을 적는 방법이 있습니까?”
“아주 가끔.” 에반이 대답했다. “잘 팔리는지는 장담 못 해.”
릴리는 화면에 가장 큰 글씨로 ‘조사 중’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는 오래된 기록을 발견한 장소와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역할만 표시했다. 정보를 보는 사람이 결과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지 않도록, 확인된 사실과 가설을 각각 구분했다.
재하는 설명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실망했고, 어떤 사람은 조금 안심했다.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믿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들은 같은 우편집 앞에 서 있었고, 누군가 도와 달라고 하면 같이 물통을 들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우편집 밖에 수레 한 대가 멈춰 섰다. 낯선 노인이 내렸다. 그는 자신을 ‘무명도시의 옛 길 기억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솔렌이었다. 하나가 추천한 증인이었지만, 솔렌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억과 집안에서 전해 온 이야기를 구분해 말하겠다고 했다.
“우리 집에는 아이를 데리러 돌아간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솔렌이 말했다. “그 사람은 홍수가 지나간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지요. 어른들은 그가 강에 휩쓸렸다고 믿었습니다.”
재하는 질문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모릅니다. 제 조부도 몰랐고, 증조부도 몰랐지요. 대신 다른 걸 기억했습니다.”
“뭡니까?”
“그 사람이 신이 되었다는 말을 끝까지 믿지 않았다는 겁니다.”
에반은 고개를 갸웃했다.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신이 되었다는 전설은 오히려 아주 흔한데.”
“그래서 저는 그 전설을 그대로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솔렌이 말했다. “우리 집에서는 그를 신이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아이를 데리러 간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릴리는 살짝 웃었다. “이름 없이도 기억하는 방법이 있었군요.”
솔렌은 주머니에서 작은 돌 하나를 꺼냈다. 돌은 물에 오래 닳아 둥글어져 있었다. 한 면에는 아이가 그린 듯한 집 모양이, 다른 면에는 선 세 개가 있었다. 세다는 돌의 모양이 반쯤 닳은 반환대 출구 표식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디서 얻으셨어요?”
“집안에서 내려온 겁니다. 누가 언제 가져왔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돌을 건넬 때마다 같은 말을 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을 물어라. 도착하는 길만 보고 가면 길을 잃는다.’”
카르도는 돌을 바라보며 그 말을 되뇌었다. 전쟁 때 모든 진격 계획에는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있었지만, 후퇴해야 할 길을 무시한 계획은 대개 많은 사람을 잃었다.
솔렌의 증언은 이름 하나를 찾는 일이 단순한 기원 찾기가 아니라 구조 경로의 복원일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누가 아이를 데리러 갔는지, 그 길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수첩 복원 담당자는 예상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알렸다. 물에 젖었다 마른 종이는 쉽게 부서졌고, 잉크 일부는 다른 장으로 옮겨 붙어 있었다. 빨리 펼치면 내용을 더 많이 볼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원본을 훼손할 위험이 컸다.
“하루만 더 기다리죠.” 하나가 말했다.
에반이 입술을 내밀었다. “며칠째 기다리기만 하네.”
하심은 그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편지 찾는 일이 원래 그렇소. 배달된 줄 알고 서둘러 서랍을 비우면, 아직 받을 사람이 남아 있는 걸 놓칠 수 있지.”
노아는 옆에서 신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는 신발 한 짝을 그린 뒤 빈 옆자리에 같은 모양을 그렸다. 릴리가 왜 두 짝을 그렸냐고 묻자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신발은 두 짝이잖아. 하나가 없어지면 걷기 불편할 테니까.”
재하는 그 그림을 보고 작은 메모를 남겼다. 지금 찾는 것은 이름 하나가 아니라, 어딘가에 남은 다른 한 짝의 기록일 수도 있었다.
저녁이 되자 보존소에서 첫 복원 결과가 도착했다. 수첩의 몇 장에서 인물의 이름과 신발을 수선한 날짜가 보였다. 아라는 분명히 어린아이의 이름이었다. 수첩 마지막 장에는 같은 이름이 두 번 적혀 있었다. 첫 번째에는 물건의 주인으로, 두 번째에는 전달받아야 할 메시지의 수신자로.
‘아라에게. 네가 돌아오지 못해도 우리가 길을 찾을 거야.’
재하는 문장을 읽으며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처음 우편집의 서랍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는 안에 갇힌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라 자신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편지가 있었다. 누군가 아라를 기다린 것일까, 아니면 아라가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렸을까.
그때 신성 창이 반응했다.
[반환대 대기실의 수신자 식별: 아라]
[수신자 상태: 답장 대기]
[미전달 발송물: 1건]
에반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들은 소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이에게 도착하지 못한 답장일 수도 있겠네.”
세리아는 더 작은 줄을 가리켰다.
[발송인: 최초 귀환 예정자]
[발송 장소: 반환대 바깥]
재하는 눈을 들었다. 아라를 기다리는 사람과 아라에게 돌아오겠다고 한 사람. 둘 사이에 멈춘 답장이,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길을 막고 있었다.
제9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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