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당기는 신호는 구조 매뉴얼에 없었다.
재하가 곧바로 줄을 되감으려 하자 세리아가 그의 팔을 잡았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미리 정한 중단 신호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확인부터 해야 했다.
“이름을 지웠냐고 물은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세리아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재하는 귓속에 남은 목소리를 더듬었다. “아주 어렸어요. 아니, 어려 보였어요. 목소리만으로는 나이를 알 수 없겠죠.”
에반은 줄의 끝을 빤히 봤다. “그 통로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를 수도 있어. 몇백 년 전 아이의 소리가 오늘 도착했다고 해도 놀라면 안 돼.”
“그렇다고 지금 위험한 사람이 없다고 할 수도 없죠.”
릴리가 통신석을 통해 대답했다. “저도 들었어요. 저희 옆에 누가 있는지는 보이지 않아요. 다만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납니다.”
나헬이 낮게 말했다. “문이 내려옵니다. 무너지는 건 아니고, 돌판이 천천히 움직여요. 돌아올 시간은 있습니다.”
재하가 소리쳤다. “그럼 돌아오세요!”
하지만 릴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서랍 속에서 돌끼리 마찰하는 소리와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재하는 자기가 무의식중에 명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원자들이 스스로 멈출 수 있어야 한다고 정해 놓고, 위험하자마자 마음대로 결정하려 했다.
“미안합니다. 제 뜻은 중단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판단을 알려 주세요.”
잠시 뒤 나헬이 답했다. “후퇴합니다. 세 번째 방의 문이 닫히기 전에 나오겠습니다.”
카르도는 그 즉시 줄을 짧게 감아 부드럽게 당기기 시작했다. 신의 힘으로 사람을 끌어내면 손목과 허리가 다칠 수 있다는 나헬의 지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에반은 서랍 아래에 쿠션을 놓았고, 하심은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뒤로 물렸다.
세 사람은 무사히 돌아왔다. 릴리의 손에는 먼지가 묻었고 세다의 무릎에는 작은 찰과상이 났다. 나헬은 가지고 갔던 장비 두 개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 그래도 모두 걸어서 밖으로 나왔다. 재하는 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숨을 내쉬었다.
“봤던 걸 바로 말해 주세요.” 그가 말했다.
릴리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먼저 물 좀 마실게요.”
재하는 당황해서 주전자를 찾았다.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참았다. 신이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는 사람이 살아 돌아온 직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보고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었다.
그날 저녁, 세 사람은 자신들이 허락한 내용만 기록했다. 반환대의 첫 번째 방에는 귀환자 번호가 적힌 석판이 있었다.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졌던 자리에는 긁어낸 자국이 뚜렷했다. 두 번째 방은 거울로 둘러싸여 있었고, 거울에는 들어간 사람의 얼굴 대신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비쳤다. 세 번째 방의 문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몇 번째 사람이냐고 묻더군요.” 릴리가 말했다. “저는 첫 번째도 마지막도 아니라고 답했어요. 그러자 목소리가 이름은 몇 번이나 지워지느냐고 물었어요.”
하심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우편이 늦어졌다고 해서 수신자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오.”
세다가 그림을 펼쳤다. 거울 속에서 본 장면을 최대한 정확히 옮긴 것이었다. 돌로 된 대기실에 빈 의자 열두 개가 놓여 있었고, 한가운데 의자 하나에는 작은 신발이 얹혀 있었다. 의자의 등받이에 짧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아라의 자리.’
“그러면 아이의 이름이 아라인가요?” 재하가 물었다.
“그럴지도 모르죠.” 세리아가 말했다. “하지만 대기실 이름이 아라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에반은 눈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자기 이름이 지워졌냐고 물었다면, 누군가 이곳의 이름들을 지우는 걸 봤다는 뜻일 수도 있어.”
카르도는 자신의 과거 전쟁 보고서를 떠올렸다. 소속과 부대만 남기고 이름을 지운 전사자 명단이 있었다. ‘대기 중’이라고 적힌 부상병이 이후 어떤 조치를 받았는지 기록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그는 그 기억 때문에 더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누군가를 죽었다거나 살아 있다고 적는 일은, 때로 죽음만큼 오래 남는 잘못이었다.
돌아온 세 사람은 세 번째 문 앞에서 들었던 대화를 서로 맞춰 봤다. 릴리는 아이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세다는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소리라고 기억했다. 나헬은 목소리보다 벽이 울리던 방향을 더 정확하게 기억했다.
“그냥 세 분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면 쉬울 텐데.” 에반이 말했다.
“쉬우라고 증언하는 게 아니잖아요.” 릴리가 답했다.
세리아는 세 사람의 기억을 각각 기록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진술을 보고 수정하지 않게 한 뒤, 일치하는 부분과 다른 부분을 별도로 표시했다. 세 사람 모두 아이의 이름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제 이름도 지워졌나요’라는 질문이 들렸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누가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라라는 이름을 먼저 알고 그 이름에 맞춰 목소리를 해석하게 될 위험이 있어요.” 세리아가 말했다.
재하는 대답했다. “처음부터 확실하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후에는 나헬이 바닥에 임시 통로를 만들어 시연했다. 문이 아래로 내려올 때 어느 위치에 있으면 끼이기 쉬운지 직접 보여 줬다. 마루에 설치한 판자를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자 관찰하는 사람들은 예상보다 좁은 틈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단순한 환영 마법으로 설명했을 때는 이해하지 못하던 주민들도 판자가 눈앞에서 움직이자 바로 알아차렸다.
하심은 아이들을 멀리 보내고 동네 어른들에게 말했다.
“이 서랍은 우리 우편집에 있지만, 호기심만으로 들어갈 장소가 아니오. 안쪽에는 출구와 입구가 서로 다른 규칙으로 움직일 수 있소.”
어떤 주민은 왜 그토록 위험한 물건을 우편집에 두느냐고 따졌다. 하심은 누군가 몰래 가져가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답했다. 일단 안전을 확인할 때까지 잠금장치를 추가하고 지키기로 했다.
그날 릴리는 치료소에서 어린 환자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붕대를 감은 손으로 인형을 가리키며 그 인형도 아프다고 했다. 릴리는 인형의 팔에 작은 천을 묶고 옆에 눕혔다. 아이가 웃자 릴리도 따라 웃었다.
“아픈 아이한테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거야?” 재하가 물었다. 그는 물을 가져다주러 들렀다가 그 광경을 봤다.
“제가 인형이 정말 아프다고 말한 건 아니에요. 같이 돌봐 주는 놀이를 한 거죠.”
“아.”
“아이들이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그래요. 기다리는 일이 마냥 두렵지 않도록 같이 앉아 줄 사람이 필요해요. 아라의 대기실이라는 곳도 그랬을까요?”
“모르겠어요.”
릴리는 짧게 대답했다. “알아보면 되죠. 대신 지금 여기서 기다리는 아이부터 챙기고요.”
재하는 문득 신성 창에 뜨는 ‘대기 중’이라는 글자가 얼마나 차갑게 느껴졌는지 생각했다. 누군가 몇 분 기다리는 것과 누군가 영원히 기다리도록 명령받는 것은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세다는 탐사 장치에서 녹음된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처음에는 아이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주변 소음을 줄이자 목소리의 일부는 금속문이 긁히는 소리와 섞여 있었다. 세다는 무엇이 확실한지 구분해 기록했다.
릴리는 그 기록을 보고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자신도 분명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 제가 듣고 싶은 걸 들은 걸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죠.” 세다가 대답했다. “하지만 전부 착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목소리가 있었다는 기록과 기계 소음이 겹쳤다는 기록은 둘 다 남겨야 해요.”
재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실수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애써 들은 목소리를 전부 지워 버릴 필요는 없었다. 서로 다른 기록을 남긴 뒤 다음 조사에서 확인하면 됐다.
저녁에는 창고 수리를 하던 목수가 작은 창문을 하나 만들었다. 우편집 밖에서 빛을 비추면 안쪽에 그림자가 생기는 창문이었다. 아이들이 서랍 속에 실제 사람이 있는지 보려고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은 상자 안이 아니라 대기실로 이어지는 통로의 상태등에만 연결했다. 빨간빛은 위험, 노란빛은 점검, 초록빛은 통행 허가. 재하가 경계 표시를 묻자 목수는 웃었다.
“원래 신비한 것은 잘 모르오. 하지만 위험한 구멍 앞에는 불빛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
이웃 주민은 통행 금지 표식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색깔만 쓰지 말고 모양을 달라고 제안했다. 빨간빛에는 손바닥, 노란빛에는 물음표, 초록빛에는 열린 문 그림이 붙었다. 누구나 뜻을 확인하고 고칠 수 있도록 안내판 아래에 빈 칸도 남겼다.
재하는 그 빈칸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만든 규칙은 사람이 고칠 수 있어야 했다. 완전한 법칙처럼 보이는 오래된 글자들도, 처음에는 누군가가 사정을 듣고 적었던 말에 불과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무진 분지에는 불청객이 왔다. 천계의 보안 감시관 두 명이었다. 그들은 반환대 연결망에서 인증되지 않은 통행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하심의 우편집을 봉쇄하려 했다. 종이에는 분명 ‘긴급 안전 조치’라고 적혀 있었지만 근거가 되는 위험 측정 기록은 첨부되지 않았다.
재하는 봉쇄 종이를 받고 물었다.
“위험을 확인하러 오신 겁니까, 아니면 기록을 가져가러 오신 겁니까?”
감시관은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원시 구조물은 천계 재산입니다.”
“그거 증명할 서류 있나요?”
“수백 년 동안 관리해 왔습니다.”
“관리했다고 소유한 건 아니라는 걸 이번 심리에서 배웠잖아요.”
감시관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카르도는 그들 뒤에 조용히 섰다. 무기를 뽑지도 않았는데 두 감시관이 동시에 자세를 바로 했다.
“원시 구조물의 안전 조사는 필요하다.” 카르도가 말했다. “다만 원본 기록을 임의 압수하라는 명령이 포함돼 있다면 그 근거를 밝혀라.”
감시관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봉쇄 명령을 내린 부서가 심리 중인 ‘응답권 관리국’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부서는 원시 응답 대표권을 인정받지 못해 지금 심리에서 이권을 잃을 수 있는 조직이었다. 세리아는 이해 충돌을 기록하고 중립 기관이 다시 검사하도록 요청했다.
감시관들이 돌아간 뒤 하심은 서랍 바닥에 귀를 대었다. 소리는 여전히 났다. 다만 이번에는 불규칙한 두드림 사이에 바람 소리가 섞여 있었다.
“저 안쪽이 닫히면 바깥 공기마저 끊기는 게 아닐까?” 하심이 말했다.
“그럴 수 있어요.” 나헬이 답했다. “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반대쪽이 완전히 밀폐된 것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때 릴리는 노아에게서 그림 한 장을 받았다. 아이는 상상 속 대기실에 작은 의자와 창문을 그리고 있었다. 릴리는 그 그림을 보며 이유를 물었다.
“누나, 기다리는 사람한테는 창문이 있어야 하잖아. 밖에 누가 왔는지 보려면.”
릴리는 한동안 그림을 바라봤다. 대기실의 아이가 정말로 있었다면, 오래된 계약이나 신격의 비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바깥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신호 방식을 다시 만들었다. 먼저 들어가는 사람만 신호를 보내는 대신,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두 번, 한 번, 두 번. 그러나 이번에는 미리 정한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돌아가는 길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심은 봉투 앞에 앉아 천천히 서랍을 두드렸다. 세다는 기계를 통해 소리의 파장을 측정했다. 몇 분 뒤 안에서 같은 간격으로 응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마지막 소리가 조금 달랐다.
세 번 빠른 두드림.
재하가 말했다. “또 세 번이네요.”
하심은 낡은 책자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곳에는 두드리는 소리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요청의 종류를 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적혀 있었다. 세 번은 ‘여기서 멈추어 기다린다’는 신호였다.
“우리가 누군가를 가두는 문 앞에 서 있는 걸지도 모르오.”
그날 밤, 작은 의자 위에 놓여 있던 신발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빈 서랍 가운데에 젖은 천 신발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세리아는 그것을 손대지 않고 주변을 봉인했다.
신발 안쪽에는 누군가 바늘로 꿰맨 글씨가 있었다.
‘아라, 기다리지 마.’
재하는 그 문장을 보며 목이 메었다. 기다리는 아이의 이름이 아라였다면, 누가 기다리지 말라고 신발 안에 적어 줬을까.
그리고 왜 아이는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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