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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93화
PAYLUA ORIGINAL · 제93화

93화. 신이 들어갈 수 없는 구조 통로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72자

오프라인 책장
“사람이 있다고?” 윤재하의 질문에 누리는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도움 요청 신호 확인] [발신자의 생물학적 상태: 판독 불가] [마지막 활성 시간: 현재] “그럼 방금 ‘예’라고 한 건 누구야?” [반환대 안내망입니다.] “안내망이 사람 대신 대답한 거네.” 에반이 팔짱을 꼈다. “하늘에서 사람 대신 대답하는 장치는 지겹도록 봤는데, 서랍에서도 그럴 줄이야.” 하심은 서랍을 닫았다. 단호한 손놀림이었다. 작은 소리는 뚜껑이 닫히자 멎었다. “안에 누가 있든, 먼저 여기 아이들 안전을 지켜야겠소.” 카르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투 현장에서 구조 신호를 받으면 가장 먼저 우회로와 후퇴로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적군도 전선도 없었다. 대신 고장 난 우편 서랍 하나가 집과 천계의 경계가 될 수 있었다. 세리아가 고대 반환대 시험 기록을 가져왔다. 서랍과 연결되는 통로는 총 네 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장 바깥에는 물리적인 길이, 그 안쪽에는 통행을 확인하는 방이, 세 번째에는 귀환자의 이름을 대조하는 방이 있고, 마지막으로 ‘대기실’이 있었다. “최소한 세 번째 방까지는 도달해야 발신자를 확인할 수 있겠어요.” 세리아가 말했다. “사람을 보내면 되겠네요.” 재하가 제안했다. “그전에 조건을 보셔야 합니다.” [통행 제한: 등록 신격 소유자 진입 불가] [대리 신분 사용 불가] [서명으로 통행권 양도 불가] 에반은 재하를 돌아보고 미소 지었다. “축하해. 드디어 너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네.” “그걸 왜 축하해?” “늘 신이 해결하려고 했잖아. 이번에는 신이 못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 놨으니 사람을 믿어야지.” 재하는 화면을 유심히 봤다. 자신의 신격은 등록 신격이었고, 어떤 거짓 신분을 만들어도 통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릴리는 인간이었다. 릴리는 눈을 마주쳤지만, 자신을 보내 달라고 재촉하지는 않았다. “저를 보내려고 생각하고 계시죠?” “그런 생각이 스친 건 맞아요. 하지만 부탁하기 전에 어떤 위험인지 설명부터 들어야겠죠.” “좋아요. 그럼 같이 듣죠.” 통행 기록에 따르면 길은 육체가 아니라 ‘응답 권한’을 감지했다. 신격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말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는 고대 반환대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규정이라고 했다. 한 번 응답한 사람이 권능자의 종속자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장치였다. 카르도가 턱을 문질렀다. “전쟁 시절에는 우리 같은 신이 아무 데나 들어갈 수 있어야 안전하다고 주장했지.” “실제로 그랬나요?” 릴리가 물었다. “가끔은. 그러나 그 이유로 들어가선 안 될 장소까지 들어갔다.” 에반이 얌전히 손을 들었다. “그럼 악마는요? 악마는 사람도 신도 아니잖아.” [대리 계약 집행 권한이 남아 있는 경우 진입 불가] “이것도 안 되네.” 릴리는 상황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길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과 진입해야 할 사람이 같지 않을 수 있었다. 하심은 우편집의 원본 보관인이지만 고령이었고, 세리아는 감찰관으로서 절차를 통제해야 했다. 북방 무명도시의 하나는 기록 보관인이지만 지금은 지상의 여러 급수 시설을 살피느라 자리를 비우기 어려웠다. 결국 누가 갈지를 제비뽑기로 정하는 대신, 위험을 이해한 지원자를 모집하기로 했다. 릴리도 자신의 이름을 지원 명단에 적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 구조 탐사 경험이 있는 길잡이와 통신 기술자가 필요했다. 길잡이로 지원한 사람은 나헬이었다. 무진 분지에서 오래된 수로를 복구했던 기술자였다. 재하는 나헬을 만나자마자 안도했다. 그는 장비가 필요할 때마다 마법 대신 연장 가방을 먼저 열어 보는 사람이었다. “신님이 직접 못 가신다고 해서 제게 맡기는 거라면 거절하겠습니다.” 나헬이 말했다. “그럼 어떤 조건이면 가시겠어요?” “위험을 정확히 알려 주고, 포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고, 일이 끝나도 제 이름으로 기적을 홍보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필요합니다.” “전부 동의합니다.” “그리고 추가 인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신님이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끼리 고른 사람이요.” 재하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정말 할 일이 없네요.” “밖에서 줄을 잡아 주세요.” 그 말에 재하가 고개를 들었다. “줄이요?” “안에서 돌아오는 사람이 손잡이를 못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큰 힘은 필요 없습니다. 놓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죠.” 하심은 출입 기록을 남길 별도의 작은 수첩도 준비했다. 누군가 통로에 들어가면 입장 시각을 적고, 돌아오면 퇴장 시각을 적을 생각이었다. 재하는 농담 삼아 신도 포인트까지 적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하심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 수첩에는 사람의 출입만 적소. 누굴 믿는지와는 관계없는 일이니까.” 그 말을 들은 릴리는 수첩 맨 앞에 조그맣게 덧붙였다. ‘다치지 않고 돌아온 사람의 수를 우선 확인할 것.’ 그날 저녁, 재하와 카르도는 우편집 뒤뜰에서 긴 줄을 펴 보았다. 줄은 목화 섬유와 가는 구리선을 함께 꼬아 만들었다. 구리선에는 일정한 간격마다 신호가 들어가는 작은 동그라미가 달렸다. 나헬은 손으로 당기는 신호를 미리 약속했다. 한 번 당기면 진행, 두 번이면 확인 필요, 계속 잡아당기면 즉시 회수. 그리고 마지막 약속이 있었다. 아무 신호가 없으면 진행하지 않는다. “먼저 들어간 사람이 천계의 비밀을 찾느라 미련을 가지면 어쩌죠?” 에반이 물었다. “그래서 자기 판단으로 중단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릴리가 말했다. “여전히 위험하잖아.” “맞아요. 위험한 걸 인정해야 준비가 되죠.” 카르도는 줄을 손에 걸고 지상 군대의 손신호를 점검했다. 재하는 줄을 시험 삼아 잡았다. 별것 아닌 섬유 줄이 손에 묵직하게 닿았다. 그가 첫 신도를 얻었을 때 신앙 포인트 하나의 숫자를 바라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숫자가 작아도 사람 하나가 자신을 믿었다는 사실은 컸다. 오늘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믿어야 하는 차례였다. 탐사 직전에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천계의 지도에는 반환대가 애초부터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오래된 종이 지도에는 선이 남았지만, 그 선이 지금의 어느 수로와 이어지는지는 불분명했다. 안전 담당자는 길의 시작과 끝을 표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출입 허가를 보류했다. 나헬은 마당 흙바닥에 막대기로 간단한 그림을 그렸다. 서랍을 첫 번째 지점으로 두고, 실험 장치가 확인한 첫 번째 방까지의 거리와 방향만 표시했다. 확인하지 못한 부분은 일부러 비워 뒀다. “전부 알아야 들어갈 수 있다면 탐사는 못 하죠. 하지만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정확히 적어야 합니다. 바깥과 통신이 끊기면 어느 지점에서 마지막 신호가 왔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임시 지도에 각자의 이름 대신 역할을 적게 했다. 누가 위험을 떠안았는지 숨기지 않되, 지도 사본이 돌아다니면서 사적인 위치 정보까지 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릴리, 혹시 무섭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무섭죠.” “그럼 빠져도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선택할 수 있게 시간을 주셨잖아요. 저도 여러 번 생각했어요. 제가 꼭 필요한 일이 있나, 나헬과 세다를 따라가서 방해만 되는 건 아닌가.” “결론은요?” “기록을 듣는 사람이 필요하더군요. 기계는 통로를 확인하고 기술자는 위험을 살피지만, 누군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도 기록해야 하니까요. 그것만큼은 제가 해 볼 수 있어요.” 재하는 더 묻지 않았다. 릴리의 결정이 자신의 승인 때문이 아니어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장비 가방 안에 작은 병 하나를 넣었다. 재하가 뭐냐고 묻자, 릴리는 소금물이라고 대답했다. “아라가 정말 그 안에 있다면 물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 “그건 마시는 물로 적합합니까?” 재하가 물었다. “아뇨. 이건 서랍의 소금 자국을 비교해 보려고요. 마실 물은 따로 준비했어요.” 재하는 피식 웃었다. “나보다 훨씬 과학적이네요.” “신님이 모든 걸 잘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한편 노아는 줄을 꼬는 작업을 도왔다. 다 큰 어른들이 만든 밧줄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손으로 찾아내는 놀이처럼 진행했지만, 실제로 약한 연결 부분 하나가 발견됐다. 나헬은 작은 아이에게 그 위험을 알려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노아는 정말로 신나서 릴리에게 소리쳤다. “누나, 내가 발견했어!” “그래. 그런데 이제 그 줄은 어른들이 고칠 거야.” “알겠어!” 재하는 그 광경을 보며 첫날 노아의 열을 내렸던 순간을 떠올렸다. 기적을 쓰고 나서 자신이 아이를 살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릴리가 밤새 물을 먹이고 집을 따뜻하게 했기 때문에 아이가 버틸 수 있었다. 그날 기적 하나가 도움이 된 것은 맞았다. 그렇지만 그 기적이 나머지 수고까지 지울 이유는 없었다. 탐사대는 열 시각 이전에 돌아오겠다는 계획을 적었다. 들어가면서 누구에게 무엇을 물을지 정하는 대신,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만 기록하도록 했다. 세다는 통신 장애가 나면 쓸 수 있는 수동 신호표를 세 장 만들었다. 한 장은 탐사대가 가지고, 한 장은 하심이 보관하고, 한 장은 바깥에서 줄을 잡을 재하에게 줬다. 카르도는 신호표를 자세히 읽고 자신이 기억하는 군 신호와 다른 부분을 표시했다. 비슷한 손짓이 정반대의 뜻을 가질 때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 군에선 ‘공격’ 신호다.” 그가 말했다. 세다는 어깨를 움츠렸다. “여기서는 ‘멈춤’인데요.” “그럼 반드시 다르게 정해라. 지금 이 길에서 공격할 적은 없다.” 그들은 손목을 들어 보여 주는 신호를 아래쪽으로 내리는 동작으로 바꾸었다. 작은 차이였다. 그러나 모두가 무엇을 뜻하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준비가 끝났다. 드디어 우편 서랍이 열렸다. 하심이 소금 봉투를 살짝 들어 올리자 서랍의 안쪽 그림자가 길어졌다. 한 사람이 엎드려 기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생겼고, 그 너머에는 돌로 만든 좁은 계단이 보였다. 나헬이 먼저 들어갔다. 그 뒤로 릴리, 마지막으로 지원한 통신 기술자 세다가 들어갔다. 세다는 목소리가 작았지만 장비의 신호를 정확하게 읽는 사람이었다. 모두 줄을 허리에 묶은 뒤에도 언제든 풀 수 있도록 매듭을 확인했다. “내려갑니다.” 나헬이 말했다. “신호 잘 들려요.” 재하가 답했다. “두 번 당기면?” “확인 필요. 계속 당기면 바로 돌아옵니다.” “알겠습니다.” 세 사람이 내려가자 서랍이 다시 작아졌다. 밖에서는 아무리 손을 넣어도 원래 크기뿐이었다. 줄은 아주 작은 구멍에서만 이어져 있었다. 재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에반이 의자를 가져다줬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서 있으면 더 잘 당길 수 있겠지.” “그러다 허리 나가.” “신도 허리 나가나?” “너는 신입이니까.” 얼마 뒤 줄이 한 번 움직였다. 진행 신호였다. 또 한 번. 그러더니 두 번 빠르게 당겨졌다. 재하가 누리에게 물었다. “안에 무슨 일이 있죠?” [통행자의 상태는 통행자가 직접 알릴 수 있습니다. 시스템은 대신 공개할 수 없습니다.] “좋네. 이제는 제대로 된 시스템 같아.” 줄이 다시 움직였다. 릴리의 목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려왔다. “첫 번째 방을 통과했어요. 벽에 귀환자 명단이 있어요. 그런데 이름들이 전부 지워져 있네요.” “숫자는 남아 있습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네. 모두 한 명으로 계산돼 있어요.” 에반이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한 일을 한 사람의 것으로 돌린 건가.” 그때 서랍 속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도시의 종도, 천계의 종도 아니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반환대 경고: 외부 응답 권한 탐지] [보호 문 자동 폐쇄 시작] 재하는 줄을 꽉 쥐었다. 좁은 구멍 사이로 갑자기 찬바람이 쏟아졌다. 나헬과 릴리가 내리막 끝에 있었는데, 문이 닫히면 서로 다른 쪽에 갇힐 수도 있었다. “이런. 누가 외부 권한을 쓴 거야?” 에반이 말했다. 카르도가 검을 집으려다 멈췄다. 바로 이런 힘의 개입을 막으려고 만든 길이었다. 그가 권능을 쓰면 오히려 문이 닫힐 수 있었다. 재하는 혼란 속에서 줄을 놓지 않았다. 그때 안쪽에서 세 번 짧은 당김이 이어졌다. 약속에 없는 신호였다. 그는 숨을 멈췄다. 세 번. 옛 반환대의 기록에는 없던 신호. 그리고 아주 작게,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밖에 계신 분. 혹시 제 이름도 지워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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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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