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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92화
PAYLUA ORIGINAL · 제92화

92화. 봉투 안쪽에서 길이 열렸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103자

오프라인 책장
하심이 운영하는 무진 분지의 우편집은 밤에도 문이 잠기지 않았다. 예전에는 믿음의 형태를 모르는 기도들이 그곳으로 모였다. 어떤 것은 식수 요청이었고, 어떤 것은 돌아오지 않은 가족에게 보내는 말이었다. 하심은 미응답 기도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분리하면서, 편지마다 수신자를 찾아낼 수 없다는 이유로 버리지 않았다. 재하 일행이 우편집에 도착했을 때, 하심은 손수 만든 나무 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안쪽에서 톡, 톡, 톡 소리가 났다. 마치 누군가 손톱으로 문지르는 것 같았다. “기이한 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 웬만하면 놀라지 않는데 말이오.” 하심이 말했다. “이번에는 서랍이 나보다 먼저 우체국을 열려고 합디다.” “안에 사람이 있나요?” 재하가 물었다. “그걸 확인하려고 부르지 않았겠소. 난 사람이 없다는 걸 먼저 확인했소.” 하심은 상자 위에 ‘열람 보류’라고 적은 천을 덮어 놓았다. 서랍에는 열쇠가 걸려 있었고, 열쇠는 하심이 자기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열 수 있었겠지만, 누군가의 기록을 대신 공개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재하는 서랍에 귀를 대었다. 톡. 톡, 톡. 소리에는 일정한 간격이 있었다. 두 번 치고 쉬었다가 한 번, 한 번 쉬고 두 번. 릴리는 노아가 아플 때 작은 손으로 침대 가장자리를 두드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 아이는 말할 힘이 없어서 물이 필요할 때 한 번, 춥다고 느낄 때 두 번 두드리기로 했었다. “누군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세리아가 답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신호 체계와 일치한다고 단정하면 위험해요.” 에반이 손가락을 꼽았다. “두 번, 한 번, 두 번. 마케팅이라면 짧고 강한 문구가 좋지만, 지금 같은 경우엔 규칙부터 알아야겠지.” 하심은 창고에서 낡은 우편 분류 책자를 가져왔다. 그 책에는 고대의 우편 기호가 그림으로 남아 있었다. 하심은 번진 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수로가 끊어졌을 때 사람들은 줄을 당겨 반대편에 신호를 보냈고, 글자를 읽지 못해도 소리의 순서로 상태를 알렸다. 두 번, 한 번, 두 번. “이건 ‘길을 확인해 달라’는 신호 같군요.” 하심이 말했다. “확실합니까?” “아니오. 비슷해 보인다는 뜻이오. 내 기억보다 이 책자가 나을 테니 함께 확인합시다.” 재하는 웃었다. 신이 된 뒤 그가 제일 자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기적을 쓰는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조심스러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이상한 신호를 해석할 수 없었다. 세리아는 동의받은 범위만 기록했다. 하심은 봉투를 보존하기 위해 상자를 열지 않고 작은 거울과 빛 반사 장치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수신자조차 없는 편지의 소유를 두고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나, 우선 안전 확인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였다. 나무 서랍 바닥에 얇은 흠집이 있고, 흠집 사이로 모래와 소금이 섞인 가루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정말 바깥에서 온 건가?” 에반이 물었다. “아니면 서랍이 어디론가 연결됐거나.” 재하가 대답했다. 아침이 되자 카르도가 도착했다. 전쟁신은 작은 우편집에 들어서자마자 허리를 숙였다. 전쟁터에서 부대 전체의 출입문을 열던 신이 이런 좁은 문을 통과하려니 어깨가 걸렸기 때문이다. 하심은 낡은 모자를 벗어 들고 말했다. “군인들이 들어오면 아이들이 놀랍니다. 무기를 밖에 두시겠소?” 카르도는 대답 대신 검을 밖에 내려놓았다. 그가 검을 손에서 떼자 에반이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요즘 자주 내려놓네. 혹시 녹슬지 않아?” “필요하면 뽑는다.” “아예 안 뽑을 수도 있잖아.” “네 입을 막을 때는 고려해 보지.” 그들의 말다툼에 아이들이 웃었다. 릴리는 잠시 안도했다. 우편집이 구조 신호를 받는 동안에도 이곳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오가는 장소여야 했다. 카르도는 자신의 전쟁 기록에서 비슷한 신호를 찾아냈다. 예전 국경 전투 때 무너진 성문 안에서 병사들이 세 번씩 두드리는 소리를 보냈다.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출구가 막혔음을 알리고 빈 통로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신호였다. “우리 기록에는 저 소리가 ‘철수 불가’라고 적혀 있었다.” 카르도가 말했다. “하지만 그때 구조대가 먼저 가서 확인했다면 더 많은 병사를 살릴 수도 있었지.” 그 말에 재하는 상자를 다시 바라봤다. 어쩌면 서랍에서 나는 소리는 과거의 기억일 뿐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확실히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고 판명되기 전까지 무시할 이유는 없었다. 누리가 임시 통로 지도를 띄웠다. [우편물 부피: 변동 없음] [내부 반사 거리: 최대 2.4킬로미터] [외부 지형과 불일치] “우편집 서랍이 몇 킬로미터라고?” 재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서랍의 크기는 정상입니다. 내부의 길이 비정상입니다.] 에반이 박수를 쳤다. “신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넓은 부동산을 얻으셨습니다. 우편 서랍 하나로 이 정도면 재개발이 가능합니다.” “웃기지 마. 들어갔다 못 나오면 누구 책임인데?” 누리가 한 줄을 더 띄웠다. [옛 반환대 연락로와 공간 파형 일부 일치] 이제 우연이라고 넘기기는 어려웠다. 에르테가 가져온 옛 지도 속, 사라진 반환대와 봉투 안쪽의 길이 반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르도는 무작정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통로가 실제로 열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끈을 묶은 빈 나무 통을 넣자는 의견을 냈고, 하심은 우편물 보존 규정에 따라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을 요구했다. 세리아는 시험 도구를 별도로 승인했다. 에반은 예전 같으면 위험은 설명서 뒷면에 작게 적고 출입권부터 팔았을 거라며 혀를 찼다. “이제 와서 반성해 봤자 계산서만 늘어나는군.” “계산서는 본인이 내야죠.” 릴리가 말했다. “그래서 더 싫어.” 나헬은 서랍 앞의 마루를 두드려 보았다. 나무판 일부가 삭아 있었고, 서랍 아래쪽에는 과거 소금을 보관하던 작은 창고가 연결돼 있었다. 사람들을 서랍 옆으로 모으면 무게 때문에 마루가 부서질 가능성도 있었다. 구조 통로가 발견됐다는 소식만으로 한꺼번에 찾아온 주민들을 잠시 마당으로 안내해야 했다. “보고 싶은 마음은 알겠습니다.” 나헬이 말했다. “그런데 여기 발 디딜 공간이 부족해요. 발을 헛디디면 고대의 수수께끼보다 못이 먼저 발을 찌릅니다.” 재하는 직접 사람들을 마당으로 데리고 나갔다. 나이 든 여인이 우편집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서랍이 정말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다고요?” “그렇게 보이는 반응이 있어요. 하지만 내부를 확인하기 전엔 정확히 모르죠.” “그럼 내 동생의 편지도 저 안에 있을까요? 전쟁 때 떠난 뒤 소식이 없었어요.” 그 질문에 재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신기한 통로 하나가 발견되자 사람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누군가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오래도록 기다려 온 사람에게서는 조금의 가능성도 큰 희망이 된다. “모든 편지가 그곳에 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재하가 답했다. “대신 아직 전달되지 못한 기록을 찾을 수 있는지는 확인해 볼게요. 찾지 못하면 그것도 분명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돌아서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슬픈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막연한 약속보다 정확한 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심은 동생의 이름을 적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이름을 외부에 공개하는 데 동의하는지 먼저 확인했다. 여인은 친척들에게 연락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재하는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마루 보수 작업에 참여할 사람들이 모였다. 무진 분지의 목수 둘이 썩은 판을 교체했고, 북쪽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환기 구멍을 뚫었다. 부엌에서는 고기를 넣지 않은 따뜻한 수프가 끓었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는 우편집이 하루 동안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에반은 창고에 기대어 작업자들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예전 같으면 이 장면을 홍보했겠지. 신도가 없는 신이 신비한 통로를 개방하다. 특별 기도권 한정 판매.” 재하는 그를 노려봤다. “그런 건 이제 하지 말자.” “안다니까. 그냥 얼마나 쉽게 같은 일을 다시 저지를 수 있는지 생각해 본 거야.” 에반은 작은 수첩을 꺼냈다. 그 안에는 작업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원하는지, 익명으로 남기기 원하는지 표시할 수 있는 칸이 있었다. 릴리는 기록할 필요가 없는 정보까지 묻지 않도록 칸을 줄였다. 그들은 함께 명단을 고쳤다. 카르도는 작업자들이 무거운 들보를 들자 가까이 다가갔다. 자신의 신성으로 통째로 들어 올리겠다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목수가 먼저 손짓했다. “거기 붙잡아 주시오. 내가 못을 박는 동안 흔들리면 안 되니까.” 전쟁신은 잠자코 들보를 잡았다. 그의 손아귀에서는 부러질 듯한 힘이 느껴졌으나, 실제로는 목수가 표시한 높이에서 단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걸로 됩니다.” 목수가 말했다. “이 정도라면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있을 필요는 없소. 십 분이면 됩니다.” 데르온은 멀리서 그 광경을 보다가 웃었다. 카르도가 뒤돌아보자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았다. 작업이 끝날 때쯤 노아가 작은 종이쪽지를 가져왔다. 아이는 우편집의 오래된 안내문을 보고 한 가지를 적었다고 했다. ‘문이 생기면 나오는 방법도 쓰세요.’ 재하는 그 쪽지를 서랍 옆에 붙였다. 어린아이의 글씨는 다른 경고문보다 훨씬 쉽게 읽혔다. 세다는 통로 테스트 장치에 작은 귀환 표식을 추가했다. 들어갈 때 기록을 남기는 것처럼 나올 때도 별도의 상태 확인을 하는 기능이었다. “노아 덕분에 장비가 조금 나아졌네.” 세다가 말했다. 릴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노아는 신이 자기 부탁을 들어줬다며 좋아했지만, 재하는 그 부탁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었는지 한참 생각했다. 누군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면 나오는 길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도착하는 방법만 안내하고 돌아오는 방법은 알려 주지 않는 계약이 너무 많았다. 실험이 시작됐다. 빈 통은 서랍 속 바닥에 살짝 닿았고 곧 줄이 팽팽해졌다. 깊이가 이십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서랍에서 나무 통이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줄을 당기자 통은 얼음처럼 차갑게 젖어 있었다. 바닥에는 회색 물이 고였고 작은 글씨가 찍힌 금속 조각이 함께 걸려 올라왔다. [반환대 출구 3번] [통행자 확인 대기] “출구가 있군요.” 릴리가 말했다. “그러니 입구도 있어야겠죠.” 재하가 답했다. 그날 낮, 우편집 바깥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근처 물길의 조합원들은 오래된 통로가 열리면 무진 분지의 급수가 다시 끊길까 걱정했다. 어떤 사람은 즉시 막자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잃어버린 가족의 기록이 나올 수 있으니 열어 보자고 했다. 재하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신격을 걸고 안전을 약속하지 않았다. 대신 세리아에게 시험 범위와 중단 조건을 게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겁먹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한 사람이 물었다. “위험한 게 있다면 미리 알아야 피하죠.” 릴리가 답했다. “그리고 닫을 권리도 있어야 해요.” 하심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봉투 자체의 한쪽 면을 펼치는 데 동의했다. 안쪽을 비추자 검은 실밥이 서서히 빛났고, 작은 지도 한 장이 나타났다. 지도에는 우편집과 반환대를 잇는 직선이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서로를 우회하며 이어지는 곡선이 그려져 있었다. 가장 깊은 곳에는 문 하나가 표시돼 있었다. 문 밑에 이름이 있었다. ‘아라의 대기실.’ 재하는 그 이름을 입으로 굴렸다. 열두 구조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인가? 이전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반환대의 길을 만든 사람일까, 돌아오지 못한 사람일까. 에반이 지도를 뒤집었다. 반대편에 작은 숫자가 있었다. [대기 시간: 산정 불가] [대기 대상: 첫 번째 귀환 예정자] 누리가 다시 신성 창을 열었다. [연결 성공: 반환대 안내망] [질의 가능 횟수: 1회] “한 번이라고?” 재하가 물었다. “그러면 뭘 물을 건데?” 에반이 조용히 되물었다. 재하는 이름이 적힌 문을 바라봤다. 귀환 예정자가 누구인지 묻고 싶었다. 처음 길을 막은 범인이 누구인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질문은 다른 것이었다. “그 안에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러다 서랍 안쪽에서 작은 두드림이 이어졌다. 톡. 톡, 톡. [응답: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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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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