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91화
PAYLUA ORIGINAL · 제91화

91화. 첫 번째 사람이 돌아오지 않은 이유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142자

오프라인 책장
천계 총심리원이 비어 있는 밤에는 종소리가 다르게 울렸다. 회의가 열릴 때에는 참석할 신격의 숫자만큼 금빛 종이 울렸고, 회의가 끝난 뒤에는 아무도 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열세 번째 소리가 들렸다. 종이 아니라 종을 찾는 사람의 손이 허공을 더듬는 듯한, 짧고 서툰 쇳소리였다. 윤재하는 숙소에서 구두를 벗다 말고 창문을 열었다. “에반. 저 소리 들었어?” “응. 그리고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잘 생각이야.” “이유가 있나?” “천계에서 근무 시간 끝나고 울리는 종에는 대개 좋은 소식이 없어. 누군가 사고를 쳤거나, 사고를 쳤는데 아직 당사자를 못 찾았거나.” 에반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악마의 뿔 한쪽이 이불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때 문 아래로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누가 넣었는지, 복도에 발소리는 없었다. 재하는 종이를 주워 들었다. 누런 종이 위에 천계의 화려한 인장 대신 검은 실밥이 박혀 있었다. 한 장의 편지가 아니라 오래된 봉투를 해체해 안쪽만 잘라 낸 듯했다. [발신지: 원시 응답자 연결망 외부] [기록 구분: 000000-이전] [수신자: 정해지지 않음] [질문: 왜 첫 번째 사람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는가] 재하는 마지막 문장을 세 번 읽었다. 그동안 그가 만난 문서들은 대부분 무엇을 내야 하는지부터 요구했다. 신앙 포인트, 봉헌물, 보증인, 발언권. 하지만 이건 달랐다. 무엇을 달라는 대신 누군가의 부재를 묻고 있었다. 에반은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밀었다. “그거 내려놔.” “이유는?” “원시 기록의 바깥에 있다는 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분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야. 심리원에 신고해.” “어차피 심리원에서 나온 편지라면?” “그럼 더 심각하고.” 재하는 창을 불러 기록번호를 입력했다. [조회 실패. 기록번호가 없습니다.] [오류: 기록은 존재할 수 있으나, 목록에서 해당 위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존재할 수 있다니. 네, 감사합니다. 대체 이런 자신 없는 검색 결과는 누가 만드는 거야?” “내가 만들었던 시절엔 광고부터 붙였지.” “찾지 못하셨나요? 프리미엄 검색권을 구매하세요?” “바로 그거야.” 두 사람은 잠깐 웃었다. 에반이 웃음을 멈췄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회랑의 등불이 반쯤 꺼진 시간, 릴리가 서 있었다. 릴리는 아직 성녀의 옷을 입지 않고 평범한 회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손에는 노아가 그려 준 그림이 있었다. 재하와 자신, 에반, 카르도가 한 줄로 서 있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물통이 그려져 있었다. “지상에서 연락이 왔어요. 무진 분지의 하심 할아버지가 이상한 편지를 받으셨대요.” “혹시 첫 번째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냐고 묻던가요?” 릴리는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들은 에르테 의장을 찾아갔다. 의장의 개인 집무실은 총심리원보다 훨씬 작았다. 낡은 의자 두 개와 서류를 쌓아 두는 좁은 장, 벽에 걸린 지도에는 경계선이 수없이 지워지고 다시 그어져 있었다. 천계의 최고 심리관이라면 적어도 구름으로 만든 커다란 침대를 쓸 줄 알았는데, 에르테는 문틈에서 직접 찻물을 데우고 있었다. “퇴근하지 않으셨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퇴근은 했습니다. 다만 서류가 따라왔지요.” 에르테는 봉투를 보고 표정이 굳었다. 그는 곧장 편지를 손에 쥐지 않았다. 먼저 테이블에 깨끗한 천을 깔고 봉투의 모서리를 집게로 고정했다. “전달 기록이 없군요.” “심리원 기계에서 나온 겁니까?” “나왔다는 사실까지는 확인했습니다. 누가 보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누군가 심리 결과를 흔들려고 심어 둔 질문일 수도 있고, 진짜 오래된 편지일 수도 있겠지요.” “고대의 비밀이 도착했는데 스팸 메일일 수도 있다는 얘기군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기에도 처음에는 편지가 필요했으니까요.” 에르테는 세리아에게 연락했다. 세리아는 감찰원 당직실에 있었고, 불과 십 분 뒤 기록 보존 도구를 들고 나타났다. 그녀가 봉투를 정밀 관찰하는 동안 재하는 릴리에게 하심의 연락을 다시 물었다. 하심이 받은 것은 똑같은 종이가 아니라 빈 봉투였다. 겉면에는 주소도 이름도 없었고, 안쪽에 작은 자국 하나만 남았다고 했다. 자국은 밀랍이나 피가 아니라 소금이었다. “소금뜰에서 본 것과 같아요?” 재하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소금만으로 장소를 단정하면 안 됩니다.” 릴리가 대답했다. “하심 할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세리아는 편지를 유리판 위에 올렸다. 얇은 빛이 종이를 통과하자 글씨 아래로 또 다른 글씨의 눌린 자국이 드러났다. 재하는 몸을 숙였다. ‘돌아오지 않았다’는 문장 바로 아래에, 희미한 다른 문장이 있었다. ‘돌아올 수 없도록 길을 바꾼 자는 누구인가.’ 에반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저 질문은 구조 요청이 아니야. 누가 누군가를 막았다는 전제가 들어 있잖아.” “전제는 증거가 아니죠.” 세리아가 말했다. “그래서 원본과 작성 과정을 확인해야 합니다.” 세리아는 봉투의 한쪽을 확대한 뒤 인장을 둘로 나누어 보여 주었다. 겉에서 보이는 검은 실밥은 문서 작성 당시의 것이고, 안쪽의 은빛 접착 흔적은 훨씬 나중에 더해진 것 같았다. 누군가 오래된 편지에 새 주소를 붙였다는 뜻일 수 있었다. “오래된 문서라고 해서 내용이 전부 오래된 건 아닙니다.” 세리아가 설명했다. “안쪽에 남은 눌림 자국이 처음부터 있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재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질문했다. “그러면 저 편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부터 따지는 겁니까?”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누면 일부 진실이 사라집니다. 원본 종이는 오래됐지만 최근에 문장이 덧붙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복제품에 진짜 오래된 기록이 옮겨 적혔을 수도 있어요. 무엇이 언제 생겼는지 각각 확인하죠.” 에반이 두 팔을 벌렸다. “그럼 우리가 가진 건 신비로운 예언이 아니라 편집 이력을 모르는 공지사항이네.” “회사에서 잘못된 안내문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생각하면, 그것도 충분히 무섭다.” 재하가 말했다. 릴리는 노아가 보낸 그림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이는 구조 현장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다시 만나는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작은 네모난 집 앞에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그림 한쪽에는 누군가 얼굴을 그려 넣다가 지운 흔적이 있었다. “노아가 왜 여기를 지웠는지 물었어요. 이름을 몰라서 얼굴도 못 그리겠다고 하더군요.” “어린애가 아주 중요한 걸 짚었네.” 에반이 대답했다. 재하는 그림을 바라보다가 릴리에게 물었다. “첫 신도가 되어 줬을 때, 저를 정말 신이라고 생각했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릴리는 잠깐 멈칫했다. “그날 밤에는 누구라도 제 동생 곁에 남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신인지 아닌지는 그보다 나중 문제였죠. 신님이 물을 끓였고, 제가 불을 지폈고, 노아는 열을 견뎠어요. 그때 있었던 일을 한 사람의 이름만으로 설명할 수 없잖아요.” “그래도 제가 기적을 쓰긴 했죠.” “맞아요. 그 일은 신님이 하셨어요. 그렇다고 제가 그날부터 매 순간 신님의 생각과 같아야 하는 건 아니죠.” 에반은 한동안 말을 듣고 있다가 코를 훌쩍였다. 재하가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먼지야. 천계 집무실은 청소가 안 되나?” 에르테가 낡은 걸레를 들어 보였다. “직접 하시면 됩니다.” “저는 외부 방문객이라서요.” 이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에도 세리아는 기록의 눌림 자국을 계속 대조했다. 두 문장의 글씨 크기는 달랐지만 글자를 짓누른 힘의 방향은 비슷했다. 필체를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종이 가장자리에 작은 구멍 세 개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건 원시 분류원에서 쓰던 보존 철의 흔적이 아닙니다. 우편집에서 편지를 고정할 때 쓰던 방식과 가까워요.” “그럼 발신자가 천계가 아니라 지상의 누군가일 수도 있나요?” 재하가 물었다. “가능합니다. 다만 편지가 두 곳을 거쳐 왔을 수도 있으니, 경로 기록을 먼저 봐야 해요.” 그들은 몇 시간 동안 오래된 우편함의 배달 시간표를 대조했다. ‘수신자가 정해지지 않은 편지’는 일반 우편과 달리 한곳에 오래 머물렀다. 어떤 봉투는 몇 세대에 걸쳐 보관인이 바뀌었고, 누군가는 수신자를 찾지 못한 것을 자기 실수로 생각했다. 하심 같은 우편배달부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배달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배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구분해 기록하려 했다. 재하는 그 차이를 마음에 새겼다. 지금 봉투가 도착했다고 해서 누가 일부러 늦게 보냈는지, 누가 막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누락된 기록이 있다면 그 사실 자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세리아는 첫 번째 조사 범위를 적었다. 문서의 작성 시기, 이동한 경로, 봉투에 남은 흔적, 발신자에 대한 단서. 반면 누군가를 범인으로 고발하는 문구는 쓰지 않았다. 에르테는 그 서류에 서명했다. “전부 공개합니까?” 릴리가 물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하심이 받은 봉투와 비교한 뒤, 누군가의 개인정보가 포함되는지부터 살펴볼 겁니다.” 재하가 작게 웃었다. “신들이 가장 오래된 비밀을 쫓으면서도 남의 편지 함부로 못 열게 되다니.” 세리아는 그를 보며 대답했다. “비밀이 오래됐다고 주인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에르테는 책상 아래에서 낡은 지도를 꺼냈다. 지도에는 천계와 지상을 잇는 오래된 통로들이 검은 잉크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름을 잃은 도시나 침묵항을 지나는 길은 지워진 선으로 남았지만, 그보다 북쪽으로 더 희미한 선 하나가 이어졌다. 선의 끝은 백색으로 비어 있었다. “이곳은 무엇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옛 지도에는 ‘반환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갔다가 돌아온 사람의 통행 기록을 남기던 곳이라는 설명뿐입니다.” “그럼 그곳부터 찾아보면 되겠네요.” “지상에서 접근할 수 없습니다. 통행로는 원시 규칙이 변경되기 전에 폐쇄되었습니다.” “무슨 사유로요?” 에르테가 서류를 뒤집었다. [폐쇄 사유: 신청인이 회수되지 않음] 에르테는 지도의 오래된 모서리를 펴며 한 가지를 덧붙였다. 다른 통로에는 출발 시각과 도착 시각이 함께 적혀 있었다. 그런데 반환대에는 출발 시각 옆에 빈칸이 두 개 있었다. 첫 번째는 귀환 시각, 두 번째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통지한 시각’이었다. “두 칸 모두 비어 있군요.” 재하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출발 기록이 있다고 해서 도착했다는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재하는 문득 하심의 우편집이 생각났다. 그곳에서는 배달하지 못한 편지에 도착 도장을 찍지 않았다. 참 단순한 원칙이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계약은 그 원칙을 어긴 곳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몰랐다. 릴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길이 무너져서가 아니라 신청인이 돌아오지 않아서 폐쇄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이유와 결과가 뒤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에반은 지도를 한참 보다 짧게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 원인을 감추고 싶은데, 나중에 조회했을 때는 합법적인 폐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면 저렇게 적었겠지.” 재하는 봉투를 내려다봤다. 이 편지를 누가 보냈는지는 몰랐다. 누군가를 비난하도록 꾸민 덫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 손에 쥔 지도에는 되돌아오는 길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범인을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을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심 할아버지께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소금 자국이 남은 봉투가 어디서 왔는지, 본인이 동의하시는 범위에서요. 저는 지도에 표시된 반환대의 출입 기록을 신청하겠습니다.” 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접수 순서는 제가 만들겠습니다. 다만 심리 중인 자료와 연결돼 있으니 독립 검증관도 참여해야 합니다.” “좋습니다.” 에르테는 봉투의 모서리를 고정한 집게를 천천히 풀었다. 종이가 검은 빛을 한 번 내더니, 아무도 만지지 않은 빈자리에 문장 하나가 더 드러났다. [첫 번째 사람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늦게 도착할 것입니다.] “너무 시적인 문서 아니에요?” 재하가 중얼거렸다. 에반이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계약서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은 작은 글씨지.” 그때 릴리의 통신석이 울렸다. 하심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여기는 무진 분지입니다. 어제 빈 봉투가 왔는데, 방금 그 봉투를 넣어 둔 서랍에서 소리가 납니다. 두드리는 소리예요.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재하는 창밖을 보았다. 천계의 열세 번째 종은 멎었다. 대신 인간 세상의 작은 우편집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더 다급하게 느껴졌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91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91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