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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9화
PAYLUA ORIGINAL · 제9화

9화. 신도들이 직접 말하기 시작했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106자

오프라인 책장
마을에 거대한 종이 울린 건 동틀 무렵이었다. 이 종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보통 카르도 신전 앞에 모였다. 군인의 무사 귀환을 빌거나, 전쟁에 나갈 남자들의 이름을 읽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사람들은 다른 종을 향해 걸었다. 폐허 신전 지붕에 도란이 새로 매단 작은 쇠종이었다. 노아가 나무토막으로 두드릴 때마다 맑은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릴리가 어젯밤 내내 쓴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제17보급대 관련 증언을 받습니다.] [직접 본 일과 전해 들은 일을 구분해서 적어 주세요.] [누구를 믿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윤재하는 안내문을 읽고 잠시 말을 잃었다. “이거 릴리 씨가 썼어요?” “네. 에반 씨가 글씨를 조금 고쳐 줬어요.” “조금?” 에반이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세 문장 중 두 문장을 내가 고쳤지만 핵심은 릴리의 거야.” 릴리가 눈을 가늘게 뜨자 악마는 서둘러 덧붙였다. “정정. 나는 철자만 봤어.” 재하는 웃었다. 바쁜 아침이었다. 마을마다 도착한 증언을 분류해야 했고, 도란은 야간 작업으로 망가진 우물 펌프를 고치고 있었다. 세리아는 직무 정지된 몸으로도 정식 증거와 목격담을 구분해 봉인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모으면 베르만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재하의 말에 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제출했는지 본인이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내용이 다르면 바로 정정할 수 있게요. 한 사람을 협박해 기록을 없애더라도 다른 사람이 본 기록은 남을 겁니다.” “조사관님은 직무 정지 중인데 이래도 됩니까?” “행정 명령을 발부하는 게 아니라 서류 정리 방법을 설명하는 겁니다.” 에반이 혀를 찼다. “이 팀에는 왜 다들 규칙의 좁은 틈만 찾아다니는 거야?” “당신이 제일 많이 알고 있으니까 좀 도와줘요.” 에반은 입을 다물었다. *** 아침 회의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누군가 가져온 편지에는 ‘카르도가 직접 병사들을 잡아먹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다른 편지는 같은 내용을 ‘십 년 전 들은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어느 쪽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런 것도 내보내야 해요?” 젊은 농부가 물었다. 세리아가 손을 내저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발표할 수 없습니다. 별도 보관하고 확인 요청만 하세요.” 농부가 항의했다. “전쟁신이 무서워서 숨기시는 거 아닙니까?” 재하는 옆에서 기록을 묶다 말했다. “저도 카르도가 무섭습니다. 그렇다고 무서운 사람에 대한 거짓말이 진실이 되진 않잖아요.” “그럼 우리 말을 누가 믿겠소?” “확인할 수 있는 말부터 믿어 주면 됩니다.” 재하는 군번패와 군량 자루에 찍힌 문장을 가리켰다. 실제로 존재하는 물건과 날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증언이 있었다. 그런 것부터 차분히 쌓는 편이 훨씬 강했다. 에반이 표를 정리하더니 화려한 글씨 대신 작은 표시 세 개를 그렸다. 눈 모양, 귀 모양, 물음표였다. “직접 봄, 남에게 들음, 확인 필요. 글을 못 읽는 사람도 분류할 수 있게 하자.” 릴리가 웃으며 색을 칠했다. “이건 마음에 들어요.” 에반은 가슴을 폈다. “드디어 내 디자인이 채택됐군.” 하지만 재하는 그들의 손놀림을 보다 또 다른 문제를 떠올렸다. 정보를 모두 공개하면 실종자 가족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는 세리아에게 물었다. “증언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도 진술을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까?” “원본에는 이름을 남기고 공개 사본에서는 가릴 수 있습니다. 원본을 봉인 번호와 연결해 두면 되지요.” 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문제는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어떻게 책임 있게 소식을 전달할 것인가였다. 바깥에서 종이 울리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릴리는 분류표를 품에 안았다. 어제까지는 자기가 왜 성녀라고 불리는지도 몰랐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자신이 할 일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완벽한 성녀가 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확인한 것을 정확히 전하면 됐다. 정오가 되기 전, 열두 마을에서 증언이 도착했다. 빨랫줄에 묶인 천 조각, 밀가루 포대 속 종이, 바퀴 수리 영수증의 뒷면까지 모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문서는 사실을 담았지만, 어떤 문서는 소문만 적혀 있었다. “토마스가 북쪽 초소에 있다는 이야기는 직접 본 사람이 셋입니다.” 릴리가 분류표에 표식을 했다. “그중 둘은 같은 보급마차를 타고 나왔으니 독립된 증인은 둘이에요.” 세리아가 덧붙였다. 재하는 감탄했다. “그런 것도 구분하네요.” “숫자가 세 명이라고 증거가 세 개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에반은 수첩을 덮었다. “그 말 천계에서 들으면 화내는 신 많겠다.” 다음으로 온 것은 북쪽에서 보낸 작은 가죽 주머니였다. 안에는 은빛 군번패 두 개와 손바닥만 한 나무 조각이 있었다. 나무에는 급하게 새긴 문장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살아 있다. 귀환을 허락해 달라.’ 서명은 제17보급대의 생존자 열아홉 명이었다. 브렌은 그 글씨를 보자 주저앉았다. 맨 아래에는 토마스의 서명이 있었다. 글씨의 끝을 조금 올려 쓰는 버릇까지 편지와 똑같았다. “그 애가 살아 있소.” 그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작았다. 재하는 브렌의 옆에 앉았다.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브렌은 손을 뻗어 목판을 만졌고, 오래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잠시 뒤 브렌이 말했다. “이 소식을 보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겠소.” “그분들이 직접 목숨을 걸었죠.” “그리고 당신도.” “전 대부분 서류만 봤는데요.” 브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듣지 않으려던 말을 처음 들어 준 사람이 당신이오.” 재하의 눈앞에 숫자가 올라갔다. [신앙 포인트: 54] 그러나 작은 탁자 위에는 동전 열세 닢과 헌납 영수증 두 장이 놓여 있었다. 며칠 전이라면 누군가 마음대로 금고에 넣었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직접 지출표를 확인한 뒤 하나씩 필요한 곳을 지정했다. “이건 북쪽으로 증언을 가져갈 마부의 식량으로 쓰죠.” “그럼 남쪽 마을에 나눠 줄 종이는 누가 사요?” “제가 가져온 천 조각을 쓰면 됩니다.” 안나가 말했다. 그녀는 방직 작업장에서 나온 뒤에도 손가락이 저려 무거운 짐을 잘 들지 못했다. 대신 천을 고르고 문장을 바느질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능숙했다. 미로는 누나가 꿰맨 문장을 한 글자씩 읽어 주었다. 재하는 그 광경을 한참 바라봤다. 헌납금이 늘지 않아도 일이 계속될 수 있었다.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 주면서 일이 커졌기 때문이다. 에반이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없는 날에도 돌아갈 조직을 만든다는 건, 창업자로서는 좀 섭섭할 수도 있겠다.” 재하는 웃었다. “전 그게 제일 좋습니다. 사람들이 제가 없어도 잘 지내면요.” 에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격의 존속을 위해 신도를 묶어야 한다는 오랜 공식이 그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 순간 폐허 신전 바깥에서 기사가 외쳤다. “해산하라! 허위 군사 정보 유포 혐의로 집회가 금지되었다!” 베르만이 보낸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붉은 봉인으로 출입구를 막고 증언판을 빼앗으려 했다. 에반이 뛰쳐나가려 했지만, 재하가 손으로 막았다. “잠깐.” “뭘 기다려?” “사람이 다치면 안 됩니다.” 세리아가 천천히 걸어나갔다. “이 집회는 군사 기밀을 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종자 생존 확인 요청을 접수하는 민간 모임입니다.” “직무 정지된 감찰관이 어디서 명령을 내려!” “명령한 적 없습니다. 법적 분류를 설명했을 뿐입니다.” 기사는 검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도란이 자신이 만든 쇠종을 들어 올렸다. “여기서 누군가 다치면 온 마을이 보게 될 거요.” 그는 위협하려고 말한 게 아니었다. 종이 울리면 사람들이 모이는 것처럼, 이젠 많은 사람이 서로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것이다. *** 전쟁신 카르도의 목소리가 마을 위로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윤재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번개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온 마을의 그림자가 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구름 사이에는 무장한 거인의 얼굴이 잠깐 비쳤다. 재하는 순간 숨이 막혔다. 포인트 50여 점과 10명이 넘는 신도 정도로는 비교할 수 없는 압박감이었다. 카르도는 실제로 수많은 전쟁에서 병사들을 지킨 신이었다. 이 작은 신격 하나를 지우는 데 큰 힘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내 병사들을 빼앗으려 한다.” 재하는 떨리는 무릎을 붙잡았다. “아닙니다. 돌아올 수 있는 병사들을 돌아오게 하려는 겁니다.” “전쟁에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희생할지는 병사에게 말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구름 속 눈동자가 좁아졌다. “인간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못 합니다. 저도 다 모릅니다. 그래서 물어보고 확인하는 겁니다.” 카르도는 한동안 그를 내려다봤다. “네 신도에게 선택하게 하겠다.” 마을 곳곳에 붉은 창이 떠올랐다. [전쟁신 카르도의 최후 보호 제안] [윤재하의 신앙 관계를 포기하는 자에게 군사 보호 기도 복구] [제안 유효시간: 1시간] 사람들이 동요했다. 군인 가족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한 여인이 품속의 전쟁 소환장을 꺼내 들었다. “우리 아들이 국경에 있어요.” 재하는 차마 그녀에게 남아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필요한 선택을 하세요.” “신님을 떠나도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안내창이 흔들렸다. 등록 신도 수가 줄었다. 숫자 셋이 연달아 사라졌다. 포인트도 조금 내려갔다. [등록 신도: 22명] [신앙 포인트: 50] 에반이 이를 악물었다. “이건 협박이야.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재하는 고개를 저었다. “강요받은 상황이라는 건 맞아요. 그래도 그분들이 당장 가족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 릴리가 사람들 앞에 섰다. “제 동생이 아팠을 때, 저는 돈이 없어서 카르도 신전에 가지 못했어요. 그때 여기 신님은 기적도 못 쓰면서 우리 집에 와서 물을 끓였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전 제 이야기를 광고에 쓰기 싫었어요. 그래서 거절했고, 신님은 거절을 받아 주셨어요. 오늘은 제가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재하는 릴리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고백은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다. 소녀가 직접 선택했다. “우리 신님은 못 하는 걸 못 한다고 말해요. 제가 그분을 믿는 이유는 모든 걸 할 수 있어서가 아니에요. 제가 선택할 수 있게 해 줘서예요.”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새 신앙 관계 생성: 8명] [신앙 포인트: 72] 릴리는 더 말하려다 울음을 삼켰다. 재하가 다가와 물 한 잔을 건넸다. “고생했어요.” “괜찮았어요?” “제 광고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에반이 옆에서 작게 투덜댔다. “내 직업을 자꾸 부정하지 마.” 그때 남쪽 수로에서 온 농민들이 자루와 삽을 들고 도착했다. 그들은 물을 나눠 썼던 기록을 가져왔다. 물을 누가 얼마나 사용했는지, 병영의 말들이 마실 양을 얼마나 남겼는지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신전이 다 막았다고 했을 땐 믿었죠. 그런데 물길을 고치고 직접 재보니 함께 쓸 수 있더라고요.” 농민 대표가 말했다. 그 뒤로 안나가 작업장 사람들과 함께 왔다. 누가 동의하지 않은 비용을 냈고, 그 결과 누구의 계약이 풀렸는지 자신들 이름으로 증언하겠다고 했다. 세리아는 한 장 한 장을 받아 날짜와 출처를 적었다. [신앙 포인트: 96] [남은 시간: 6시간 12분] 에반은 뛸 듯이 기뻐했다. “아흔여섯! 네 점만 더 모으면 돼!”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 돌리는 사이 신전 지붕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하늘에서 다시 종이 울렸다. 재하는 모여든 사람들을 돌아봤다. 자신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는 아직 잘 몰랐다. 다만 이 사람들이 서로를 믿을 만한 이유를 하나씩 확인해 왔다는 사실은 알았다. 이제 그들이 본 것을 신들에게도 보여 줄 차례였다. “제 대신 이야기할 필요 없습니다. 본 것만 말씀하세요.” 세리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강한 증언이기도 하죠.” 재하는 가볍게 웃고 심판장의 문을 향해 걸었다. [상급 심판 소환] [피심판 신격 윤재하] [즉시 출석] 그리고 마지막 문구가 떠올랐다. [심판 진행 중 신앙 포인트 획득 불가] 에반의 웃음이 멈췄다. “저건 처음 듣는데.” 재하가 조용히 말했다. “설명서가 없는 회사라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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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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