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의 역사는 처음부터 신 한 명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원시 기록의 가장 오래된 장면에는 비가 내리는 계곡과 무너진 다리가 있을 뿐이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지도 않았고, 누구도 신의 이름을 외치지 않았다.
“이게 원본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보관인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원본 기록에 기반해 재구성한 장면입니다. 모든 행동을 확정할 수는 없어요.”
영상 속 첫 번째 사람은 강 건너편의 구조 요청을 들었다. 그는 혼자 건널 수 없어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두 번째 사람은 밧줄을 가져왔고, 세 번째는 징을 울려 아래 마을에 알렸다. 사람들은 밤새 신호를 이어 주었다.
열두 사람이 등장했다. 그러나 기록에는 열두 사람 모두가 구조 작업을 지휘했다는 내용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복종했다는 내용도 없었다.
‘내가 가지 못하면 가까운 사람이 먼저 가 줘.’
재하는 북방 무명도시에서 보았던 문장을 소리 내 읽었다.
에르테가 물었다. “그럼 최초의 신은 없었다는 말입니까?”
하나는 차분히 답했다. “이 기록이 증명하는 건 최초의 구조자들이 신격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입니다. 기록에 없는 존재까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신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신성의 기원을 부정받았다고 분노하는 자가 있었고,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하는 자도 있었다.
재하 역시 마음이 복잡했다. 자신이 신이 된 이유를 아직 알지 못했다. 그날 첫 신도가 생겼던 순간은 분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도왔다는 기록을 신의 재산으로 계산하는 것이 옳았는지는 이제 따로 생각해야 했다.
“원시 규칙을 복구하면 저도 소멸합니까?”
누리는 대답했다.
[자료 부족. 결과 예측 불가.]
“참 친절하네요.”
“정확한 대답인데?” 에반이 말했다.
그날 법정에 등록 신격 이외의 이해관계자들이 공동 의견서를 제출했다. 릴리, 하심, 북방 도시 보관인, 유리포 노동자와 치료소 환자 보호자들이 서명했다.
그들의 요구는 신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말이 계약의 근거가 된다면, 우리가 그 계약에 대해 질문할 자리를 마련해 달라.’
재하는 서명란을 보았다. 최초 구조자들의 이름은 각기 달랐다. 후손들의 이름도 달랐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남긴 요구를 또 하나의 신격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에르테는 처음으로 법정 중앙에 인간 증인석을 정식 설치하라고 명령했다.
제8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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