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에게는 지우고 싶은 광고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문구는 이것이었다.
[당신의 목소리는 반드시 어딘가에 도착합니다.]
그는 원래 우편물 보관 사업의 광고를 위해 썼다. 그러나 후임 부서는 ‘어딘가’를 ‘가장 가까운 신격’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모든 발화가 신의 자산으로 기록되는 계산식이 탄생했다.
“당신이 만든 겁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초안은 제가 썼습니다. 확대 적용되는 걸 알고도 막지 않았습니다.”
재하는 에반이 농담을 하지 않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았다. 평소라면 광고 문구의 운율부터 따졌을 악마가 오늘은 쉼표 하나도 제대로 웃으며 넘기지 못했다.
에반은 봉인된 금고를 가져왔다. 안에는 광고 초안과 개정 지시서, 수신권 조합의 결제 성과표가 있었다. 그는 피해자 대표와 독립 보관인이 함께 입회하는 조건을 붙였다. 고객의 편지를 또다시 마음대로 공개하는 잘못을 범하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 루다가 물었다. “당신이 사과하면 내 아이에게 매년 온 고지서가 없어집니까?”
“아뇨.”
“그럼 저는 당신의 갱생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게 아닙니다. 우리 계약을 누가 만들었는지 보여 주세요.”
에반은 자료를 펼쳤다. 개정 지시서 한 장에는 원시 응답자 대표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인장의 제작 날짜는 원시 기록이 작성된 시기보다 수백 년 뒤였다.
“대체 인장이군.” 카르도가 말했다.
“그렇다고 지금 범인을 정하면 안 됩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누가 발주하고 승인하고 사용했는지 구분해야 합니다.”
원시 수신권 조합의 대표 마티르는 오랜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써 왔다는 사실이 최초 응답자에게 허락받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에르테는 인장에 의존한 대표권 증명을 보류했다. 그러자 법정 바닥의 낡은 봉인에 작은 금이 갔다. 천계의 신들은 이것을 신적 분노라고 해석하려 했다.
누리는 담담하게 알렸다.
[대표권 검증 실패. 대체 증명 절차 개시.]
그날 밤 오래된 편지 열두 통이 원시 기록실에 도착했다. 필체와 작성 시기가 제각각이었다.
첫 편지에는 ‘나는 첫째로 답했다’고 적혔다. 둘째에는 ‘나는 첫째의 말을 듣고 이어받았다’고 적혔다.
열두 번째 편지는 마지막 문장으로 끝났다.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다시 처음의 사람에게 물었다.’
에반이 편지들을 나란히 놓았다. “최초의 신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묶어 둔 건 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던 답장일지도 몰라.”
제8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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