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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80화
PAYLUA ORIGINAL · 제80화

80화. 아무 신도 대신 대답하지 않는다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106자

오프라인 책장
도시 지하 0층은 지도에 없었다. 그래서 윤재하는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잠깐 기뻤다. 드디어 이름이 있는 곳이 나타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자 샤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0층은 층이 아니에요. 옛날 수로가 있던 빈 공간을 그렇게 부른 겁니다.” “그럼 계단은?” “몇 개 남아 있습니다. 내려갈 수 있는지는 따져 봐야 하고요.” “늘 그게 문제네요.” 미라는 지하 접근을 허가받기 전에 지반 검사부터 했다. 북방 도시의 집과 회랑은 오랜 세월 조금씩 내려앉았다. 옛 배수로 일부는 무너져 있었고, 봉쇄가 풀린다 해도 사람들이 마음대로 몰려가면 위험했다. 하나와 보관인들은 공개 범위를 정했다. 지하의 사적인 거주 흔적은 보존하고, 원시 관리 장치의 운영 기록만 한정해 열람한다는 조건이었다. 지하 조사에 앞서 가장 오래 걸린 것은 장비 목록 확인이었다. 에반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최초의 신을 찾는 역사적인 순간에 사람들이 고무 장화의 사이즈까지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원을 보러 가는데 신발이 그렇게 중요해?” “중요하죠.” 미라가 말했다. “물에 젖고 체온이 떨어지면 역사고 뭐고 못 보니까요.” 재하는 장화 끈을 조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 퇴근길 사고를 당하던 순간에도 그는 회사의 중요한 일정 때문에 서둘렀다. 목적지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곳까지 안전하게 가는 방법을 지키지 않으면 소용없다. 신이 되고 나서야 배우는 상식이었다. 하나는 지하 진입 전에 참석자 전원에게 짧은 서약을 받았다. 사적인 기록을 발견해도 허가 없이 복제하지 말 것, 위험한 장소에 독단적으로 들어가지 말 것, 발견한 내용이 예상과 다르더라도 확인 전에는 외부에 단정적으로 알리지 말 것. 카르도도 지상에서 그 내용을 확인했다. “이런 서약을 군에도 도입해야겠군.” “군에서는 이미 많을 겁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지키는지 더 확인해야겠어.” 에반은 자신이 서명할 부분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자료 발견자라고 해서 소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예전의 그는 발견된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거래하던 악마였다. 지금은 그 문장 아래 자기 이름을 쓰는 일이 예전의 빚을 조금씩 갚는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재하는 보관인 하나에게 물었다. “만약 이곳에서 최초의 신이 살아 있다고 확인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먼저 그분에게 어떻게 지내셨는지 물어봐야겠죠.” “아, 그게 먼저군요.” “당신은 뭘 물어보려고 했나요?” “왜 천계가 이렇게 되었는지, 무상의 약속이 뭔지, 제 신격이 어떻게 생겼는지요.” 하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질문이 많네요. 그분이 대답하고 싶은 것부터 들어야겠어요.” 재하는 괜히 머쓱해졌다. 자신은 아직 만난 적도 없는 존재를 거대한 해설서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존재가 실제로 있다면 그 역시 어떤 질문에는 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하 진입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릴리는 중간 거점의 노아와 우편 통신을 했다. 노아는 편지 봉투를 날짜별로 분류하는 일을 맡았지만, 사적인 내용은 열지 않았다. 어느 날 한 편지의 봉인이 터져 안쪽 글자가 보였을 때도, 그는 나머지를 읽지 않고 보관 담당자를 불렀다고 했다. “누나, 나 잘했지?” “아주 잘했어.” “신님한테도 말해 줘.” 재하는 통신으로 인사를 전했다. “우편국의 최고 직원으로 임명합니다.” 노아가 웃었다. “그럼 급여는요?” “저를 너무 닮아 가는 것 같은데.” 하심의 웃음소리가 통신 뒤편에서 들렸다. 아이에게는 실제로 도울 수 있는 범위에 맞춘 작은 수당과 휴식 시간이 마련돼 있었다. 재하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농담은 농담이고, 아이의 일이란 어른의 책임 아래 안전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그날 지상에서는 주민회가 긴급 복구 예산을 공개했다. 어느 비용은 자발적인 기부로, 어느 비용은 임시 공동기금으로, 어느 비용은 외부 보조금으로 충당됐다. 부족한 금액도 숨기지 않았다. 조합이 공급을 끊으면 당장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위험 역시 함께 표시했다. 벨른은 그 장부를 읽고 화를 냈다. 자기 주점의 물 공급은 아직도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장부를 찢지 않았다. 대신 자기 가게 앞에 고장 안내문을 붙이고, 수리가 끝나면 손님들에게 다시 알리겠다고 했다. 초보 신의 기적 대신 작업 일정표를 믿게 됐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카르도는 주민회의 기록을 보며 말했다. “예전에는 이런 숫자를 약한 자들의 변명이라고 생각했지.” 재하가 물었다. “지금은요?” “어쩌면 전쟁을 막는 가장 강한 무기일지도 모르겠군.” 그들은 그 대화를 끝내고 제각각 제자리로 돌아갔다. 신들은 여전히 불완전했고 사람들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누가 무엇을 모르는지 공개하면서 다음 일을 준비하는 풍경은 처음의 폐허 신전과 꽤 달라져 있었다. 그날 새벽 재하와 릴리, 에반, 미라, 세리아, 샤브, 그리고 보관 대표 하나가 지하로 내려갔다. 카르도는 지상에서 군인들과 남았다. 전쟁신은 아래로 내려가는 대신 주민 대피와 공급로를 지킬 책임을 선택했다. 노아는 중간 거점에 남아 편지를 분류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릴리는 동생에게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편지를 보내되, 확정되지 않은 시간을 약속하지 않았다. 좁은 계단 끝에는 물이 고인 터널이 나타났다. 미라가 먼저 바닥의 깊이를 재고 조심스럽게 길을 열었다. 벽에는 세월에 마모된 자국과 나무 패가 남아 있었다. 한쪽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들리는 사람부터 대답해 줘.' 재하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소금뜰의 노래를 떠올렸다. '들리면 대답해 줘. 여기 있다. 건너오지 마. 내가 갈게.' 누군가 이 문장을 신의 계시로 바꾸기 전에는 평범한 구조 약속이었을 것이다. 터널 안쪽에는 오래된 종 세 개가 걸려 있었다. 하나는 울리지 않았고, 하나는 소리가 작았고, 마지막 하나만 맑게 울렸다. 샤브는 맑은 종의 줄을 당기지 않았다. 기록 보관인의 허가와 안전 점검을 기다렸다. 신의 비밀을 밝히기 전에 자기 일의 순서를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 순간 지하 장치가 먼저 반응했다. [원시 기록 000000] [질문: 누구의 말부터 들어야 하는가?] [답변: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있는 사람] [작성자: 공동 작업조] 재하는 화면을 바라봤다. 너무도 평범한 답이었다. 신전의 신성도, 전쟁신의 권능도, 담보청의 수천 장 계약서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때 수로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이 대답하면 됐다. “그럼 최초 응답자는 누굽니까?” 릴리가 물었다. 장치는 잠시 빛을 잃었다가 다시 켜졌다. [최초 응답자: 고유 식별 불가] [응답 행위: 다수의 주민에게 연속 전달] [단일 소유권 지정 거부] 에반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한 사람에게 귀속할 수 없는 일이었네.” “그렇다고 최초의 신이 없었던 건 아니죠.” 세리아가 말했다. “맞아요.” 재하가 답했다. “우리는 그걸 아직 몰라요.” 터널 끝에는 금속문이 있었다. 문 위에 어린아이의 손 크기만 한 손자국이 다섯 개 찍혀 있었다. 여섯 번째 손가락이라고 생각하던 표식은 사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 이어 주는 선이었다. 그 선은 문 손잡이와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재하가 손을 대려고 하자 하나가 멈춰 세웠다. “이 문은 내 허락만으로 열 수 없어요. 공동 보관인들이 정한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재하는 손을 내렸다. 지금 당장 문을 열면 최초의 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누군가의 허락을 무시할 이유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는 기다렸다. 지상에선 시간이 더 빠르게 흘렀다. 조합은 새 통지를 보냈다. 지정 시한이 다가오면 도시의 모든 신성등을 끄겠다는 위협이었다. 카르도는 나헬과 미라의 대리 기술팀이 마련한 수동 급수 계획을 실행하고, 군용 등불을 필요한 구역에 배치했다. 에반은 동쪽 회랑에 남긴 보급품의 출처와 비용을 모두 공개했다. 도시 사람들은 두려워했지만 이전처럼 '신이 오면 전부 해결해 주겠지' 하고 손을 놓지는 않았다. 하나는 지하의 보관인 연락망을 열었다. 각자 다른 위치에 있던 보관인들은 하나씩 동의를 전했다. 누구는 문 전체를 열어선 안 된다고 했다. 누구는 안전을 위해 설비 기록만 확인하자고 했다.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조급한 침묵이 이어졌다. 재하는 그 시간을 참았다. 마침내 승인된 범위에서 문이 열렸다. 안에는 금빛 신상이 없었다. 낡은 탁자와 작은 의자, 사람들의 작업 수첩뿐이었다. 벽에는 처음 응답한 사람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대신 빈칸 아래 이런 글이 남아 있었다. '이 자리에 내 이름을 적지 마시오. 다음에 들을 사람의 자리를 남겨 두시오.' 릴리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녀가 처음 윤재하를 믿게 됐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동생 곁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가진 신이 무슨 권능을 가졌는지 몰라도, 누군가의 옆에 남아 듣는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에반은 기록을 복제하지 않았다. 대신 보관인들이 공개에 동의한 짧은 문장과 연혁만 따로 적었다. 카르도는 지상에서 그 내용을 전달받았다. 그는 자신의 승전 장부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오래 생각했다. 이름 없는 노동이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개인이 원치 않는 정보는 보호할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그때 세리아는 규칙 0 재가동에 필요한 마지막 요건을 확인했다. 최초 응답자 동의란은 특정 인물의 서명을 요구하는 구조가 아니었다. 원본에 있던 공동 응답 약속을 후대가 잘못된 한 사람의 소유권 양식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였다. 보관인들의 원본 대조와 공적 수정 요청이 함께 제출되면 이 부분은 정정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즉시 전부 고칠 수 있는 겁니까?” 재하가 물었다. “아니요. 심사를 열 수 있습니다.” “현실적이군요.” “그래도 지금까지 닫혀 있던 문입니다.” 재하는 미소 지었다. 이전에는 한 번의 기적으로 모든 계약이 깨지고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제 그는 무엇이 가능한지 확인하면서,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 고치는 과정이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마티르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하 기록실의 열람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하나가 승인 서류를 내밀자 마티르는 그 서류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새로운 심판을 요구했다. 재하는 그를 바라봤다. “그럼 심판을 받죠. 다만 이번에는 누가 무엇을 실제로 동의했는지부터 확인합시다.” “천계 전체의 신격 가치가 흔들릴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재하는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틀린 기록으로 계속 값을 매기게 할 수는 없잖아요.” 하나는 도시의 공개 방송에 보관인들이 승인한 한 문장만 전했다. 과거에는 수천 명의 이름이 지워진 채 단 한 신의 이름으로 알려진 이야기였다.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이 대답하고, 다음 사람에게 길을 알려 준다.' 방송 뒤로 환호가 터지지는 않았다. 도시의 수도 일부는 여전히 끊겼고, 회랑의 절반에는 임시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신에게 기도할 사람은 기도했고, 기도하지 않을 사람은 물통을 들고 급수소로 걸어갔다. 누구도 둘 중 하나를 강요하지 않았다. 재하는 잠시 외벽에 기대었다. 갑자기 자신의 신성 창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원시 규칙 0: 정정 심리 접수] [천계 전역의 신앙 통계에 영향 가능] [긴급 심리 소환: 모든 등록 신격] [안건: 신앙 수요와 자유로운 동의의 구분] 그 아래 더 놀라운 문구가 떠올랐다. [소환 신청인: 최초의 신] [신격 상태: 확인 불가] [추가 회신: 나는 처음부터 한 사람이 아니었다.] 에반은 화면을 보더니 잔뜩 굳었다. “저게 무슨 뜻인지 알아?” 재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세계의 가장 오래된 비밀을 조금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모르죠. 그러니까 물어봐야겠네요.” 그는 멀리 천계에서 울리기 시작한 종을 들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두려워하던 첫날과는 다른 종소리였다. 이번에는 신들 전체가 누군가의 질문 앞에 서게 됐다. 재하는 마지막으로 출입 기록을 살폈다. 지하에 내려온 사람들의 이름과 역할은 각자가 허락한 범위로만 남겨졌다. 가장 중요한 기록을 찾는 날에도 남의 이름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지켜져야 했다. 그리고 누구도 그 질문에 대신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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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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