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실 앞에 다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윤재하는 처음으로 자기 말이 무서워졌다.
몇 시간 전 그는 주민들에게 '수락하지 않아도 대피할 길이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땀 흘려 통로를 고쳤다. 다행히 대피는 끝났지만, 아직 기둥의 봉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아무 말이나 자신 있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기록실 문지기 라세가 그에게 질문했다.
“000000은 누구의 기록입니까?”
“아마 최초의 신과 그를 부른 인간의 기록일 겁니다.”
라세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아마라는 말을 붙였으니 다행이군요. 하지만 지금 대답도 절반은 틀렸습니다.”
재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릴리가 옆에서 재빨리 말했다.
“틀렸으면 고치면 되죠.”
“맞아. 그런데 어디가 틀렸죠?”
라세는 대답 대신 기록실의 바깥 열람대를 열었다. 그 안에는 원본의 내용이 아니라 보존 절차만 적힌 목록이 있었다. 000000 본문 열람 권한자는 처음 기록을 남긴 사람들의 후손, 원본의 공동보관인,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도록 한 사람의 지정 대리인이었다. 신은 명시적으로 그 목록에 없었다.
“정말 제게 자격이 없군요.” 재하가 말했다.
“신이라서 안 되는 건 아닙니다. 본인이 기록에 연결된 사람임을 입증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럼 신이라는 자격증이 있으나 마나네요.”
에반이 중얼거렸다. “그 자격증은 애초부터 시험도 안 봤잖아.”
재하는 반박하지 않았다. 신격을 이어받던 날 아무런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 기억이 났다. 자신이 만든 세계도 아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계약도 많았다. 이제 그 부당한 승계를 바로잡으려다 다시 모든 비밀을 자기 권한으로 열어 보려고 했던 건 아닌가.
라세는 또 다른 사람을 불렀다. 얼굴에 깊은 주름이 있는 여성, 도시의 기록 보존 대표인 '하나'였다. 그녀가 허락한 부분에 한해 000000의 보존 경위를 공개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자신의 별명을 소개하고 작은 열쇠를 열람대에 올려놓았다.
“이건 원본이 아니라 오래된 열쇠예요. 문을 열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열어 줄 수 있다는 뜻은 아니죠.”
하나는 신앙 계약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을 미워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가족 중에는 신전을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가 지키는 것은 그들 모두가 서로의 편지를 허락 없이 읽지 않을 권리였다.
“제가 아는 걸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는 알고 싶어요.”
재하는 처음 신이 되었던 날부터 설명했다. 신도 0명, 신앙 포인트 0, 폐허 신전 하나. 릴리를 만나고 노아를 도와주며 신도 한 명이 생겼던 일, 담보청의 추심과 제6지역을 찾아간 일, 신도 없는 무진 분지에서 기도를 다시 돌려주려 했던 일을 길게 이야기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하나가 물었다.
“그동안 당신은 몇 사람의 이름을 원치 않는데도 보관했습니까?”
“그건 제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신격 통계가 자동으로 신도를 등록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당신도 모르는 명단이 있다는 뜻이군요.”
재하는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 그랬다. 자동 통계의 일부가 도시에서 막힌 뒤부터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신도가 누군지 전부 알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그 명단을 정리할 수 있을까요?”
“누가 당신에게 맡겼는지 확인한다면요.”
그때 한 남자가 열람대 앞으로 걸어왔다. 주점 주인 벨른이었다. 그는 재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은 분명 주민들에게 아무 계약도 하지 않고 물을 받게 해 주겠다고 말했소. 그런데 내 주점은 아직 물이 끊긴 상태요.”
재하는 깜짝 놀랐다.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렇게 들었소.”
“저는 수락하지 않아도 대피할 길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수도가 바로 복구된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벨른이 이를 악물었다. “말장난하지 마시오. 나한테는 다 비슷한 약속처럼 들렸으니까.”
재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실제로 자신의 표현이 희망을 과도하게 불러일으켰을 수 있었다. 상대가 잘못 들었다고만 하면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벨른에게 공개된 작업 일지를 함께 보자고 제안했다. 미라는 주점 배관은 기술적으로 더 복잡해 수리가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하는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면 사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신앙으로 그 지연을 메우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벨른은 한참 그를 바라봤다.
“그럼 정확한 날짜를 말해 주시오. 모르면 모른다고 하시오.”
“오늘 중으로 기술팀의 예측을 확인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벨른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돌아갔다. 하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른다고 말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지요?”
“신이 되면 제일 쉬운 일일 줄 알았는데요.”
“이 도시에 온 신들은 대개 그 반대로 행동합니다.”
하나가 재하의 이야기를 들은 뒤 그는 예상하지 못한 숙제를 받았다. 도시 주민들이 직접 적은 질문 다섯 개를 읽되, 바로 대답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재하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첫 번째 질문은 '신은 왜 모든 병을 고쳐 주지 않습니까?'였다. 그는 눈을 감았다. 노아가 아팠던 날이 떠올랐다.
“권능이 부족할 수 있고, 신성 공급이 끊길 수도 있고, 원인을 모를 수도 있겠죠.” 재하가 말했다.
“대답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가 지적했다.
“아, 죄송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신이 우리를 사랑한다면 왜 비용을 받습니까?'였다. 세 번째는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도움을 받으면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합니까?'였다. 네 번째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에게 내가 한 약속이 적용될 수 있습니까?'였다. 마지막 질문은 짧았다. '신님은 틀린 적이 있습니까?'
재하는 자기도 모르게 종이를 꽉 쥐었다. 모든 질문에 답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틀린 적이 있느냐는 질문만큼은 정확히 대답할 수 있었다. 수없이 많았다. 기적을 쓸 수 있는 범위를 착각한 적이 있었고, 서류를 읽지 않고 겁먹은 적도 있었다. 누군가의 선택이 자신과 같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 중에 지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까?” 하나가 물었다.
재하는 마지막 종이를 들어 보였다.
“틀린 적이 있다는 건 말할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알았습니까?”
“누군가 고쳐 줬으니까요.”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듣지 않으면 신의 말은 점점 길어지고 사람의 말은 점점 짧아지겠죠.”
재하는 그 말을 마음에 담았다. 릴리는 그가 처음 신이 되었을 때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기억했다. 신앙 포인트 하나를 얻고 나서는 설명보다 기적을 보여 주려 했다. 이제는 대답하기 전에 상대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곤 했다. 늦은 변화였지만 진짜 변화였다.
오후에는 별도의 진술 청취가 있었다. 과거 구조 사건 당시의 생존자 후손이 참석했다. 그는 자기 집안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공개할 수 있는 범위만 말했다. 조상이 어느 신을 믿었는지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조상이 강을 건너던 사람에게 밧줄을 던졌다는 전승과 그 밧줄 일부가 가족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은 증언했다.
세리아는 밧줄의 재질과 도면을 대조했다. 한 종류의 매듭이 수로 작업 장부에 그려진 형태와 비슷했지만, 똑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구조에 참여한 사람이 여럿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늘었다. 후손은 신의 정체를 밝히려는 조사에 자기 집안의 이름이 함부로 이용되지 않도록 요청했다. 재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조상은 영웅이 되고 싶어 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후손이 말했다. “그냥 누군가가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테죠.”
재하는 낮게 말했다. “그걸 그대로 기록하고 싶습니다.”
후손은 웃었다. “그러면 먼저 제가 이야기한 부분과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 주세요.”
세리아는 진술서를 다시 읽어 주고 수정할 기회를 줬다. 아무도 그에게 더 극적인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에반조차 홍보 효과가 떨어진다며 투덜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조용히 남기고 싶은 말을 조용히 남길 수 있게 촬영 장비를 치웠다.
그날 저녁, 재하는 홀로 광장에 앉아 질문 다섯 개를 다시 펼쳤다. 다섯 번째 질문 아래에 그는 조심스럽게 한 문장을 적었다. '틀렸을 때 들을 수 있도록 내 앞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거창한 신탁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것이 지금 자신에게는 가장 필요한 다짐이었다.
벨른의 방문 이후 재하는 도시 관리소에 작은 요청서를 냈다. 신이 주민에게 약속한 내용을 한 사람이 혼자 기록하지 말고, 주민이 직접 정정할 기회를 주자는 내용이었다. 관리소는 흥미로운 제안이라며 시험적으로 회의록을 만들었다.
첫 번째 기록은 '윤재하가 수도를 완전히 복구하겠다고 약속했다'였다. 벨른이 그렇게 이해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재하는 그 표현은 자신이 하지 않은 말이라고 정정했다. 벨른은 '그렇게 들었다'는 진술을 그대로 남겨 달라고 했다. 관리소는 두 문장을 나란히 기록했다. 어느 한쪽의 기억이 다른 쪽을 지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래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네요.” 재하가 말했다.
“대신 다음에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남겠죠.” 벨른이 답했다.
그들은 미라가 제시한 복구 일정을 별도로 붙였다. 이 작업이 기술상의 약속인지, 조건부 예상인지 구분했다. 벨른은 그제야 불만을 말할 상대와 확인할 사실을 알게 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하는 한 사람이 모든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서로 다른 기록을 한 자리에 모으는 일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지만 많은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었다.
오후가 되자 원본 조사에는 뜻밖의 증인이 참여했다. 그녀는 자신을 '거절된 목소리의 보관인'이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그녀는 조합이 첫 기도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과거 대피 기록의 일부가 삭제됐다는 증거를 가져왔다. 삭제된 기록에는 신의 기적이 아니라 주민들의 구조 조가 있었다.
“사람들의 행동이 지워졌다면 되살려야겠죠.” 재하가 말했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공개하면 살아 있는 후손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증인이 답했다.
세리아는 열람을 단계적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공공 구조 활동의 규모와 시점은 공개하되, 특정 가족의 이름과 이동 경로는 동의를 받은 뒤 열람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증인은 그 절차를 받아들였다.
에반은 삭제 전후 수치를 비교하다 이상을 발견했다. 구조 조 열두 명의 이름이 삭제된 뒤 첫 신격의 공적이 같은 수만큼 늘어났다. 원래 여러 사람이 나눈 일을 한 존재에게 몰아준 계산이었다. 숫자는 단순한 홍보 성과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수치가 나중에 담보청의 신격 가치 산정에 사용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누군가 이익을 얻었군.” 카르도가 말했다.
“적어도 그렇게 계산된 장부가 있습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그때 열람대의 낡은 열쇠에서 은은한 빛이 흘렀다. 하나는 열쇠를 들어 재하 앞에 놓았다.
“당신에게 원본을 바로 보여 줄 수는 없어요. 대신 질문 하나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원본의 보관인들이 당신의 대답을 듣고 결정할 겁니다.”
“무슨 질문입니까?”
“최초의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날 구조받지 못했을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재하는 답하려다가 멈췄다. 신이 있었다는 것조차 확실하지 않은데, 없었다면 누가 죽었을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잠깐의 정적 뒤에 그는 말했다.
“모릅니다. 기록을 보지 않고는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는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이제 원본의 일부를 보여 줄 이유가 생겼군요.”
하나는 열쇠를 들기 전에 모든 참석자에게 다시 물었다. “공개할 부분과 하지 않을 부분을 구분한 결정에 동의하십니까?” 누구도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확인할 시간이 주어졌고, 한 사람은 설명을 다시 듣고서야 동의했다.
라세가 오래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신의 이름도, 신앙 포인트도 없었다. 진흙 묻은 천 조각 하나와 부러진 나무 손잡이, 그리고 구겨진 종이가 있었다.
종이에는 어설픈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가지 못하면, 가까운 사람이 먼저 가 줘.'
재하가 숨을 삼켰다. 사람들은 이 문장을 처음 신의 명령으로 기억해 왔다. 그러나 원본에는 명령한 신의 이름이 없었다. 오직 도움을 청했던 사람의 목소리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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