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기록실 봉쇄는 폭발 소리 없이 시작됐다.
거리마다 서 있는 검은 기둥에서 종이 한 번 울리더니, 광장 바닥에 눈부신 선이 그어졌다. 그 선의 안쪽은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됐다. 반대 의사를 표시하려던 주민들은 갑자기 기록실 앞에 갇힌 모양이 됐다.
카르도는 본능적으로 검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그러나 칼을 뽑지 않았다. 그는 먼저 광장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을 봤다. 그다음 유모차를 끄는 사람, 저녁 배급을 받으러 나온 아이, 가게에서 피난로를 살피는 상인들을 봤다.
“이곳을 봉쇄한 자가 누구냐?”
검은 기둥이 답했다.
[원시 수신권 조합의 긴급 기록 보전 명령]
[출입 차단은 물리적 위해를 최소화합니다.]
“여기서 사람이 못 나가고 있는데 최소화라고?” 재하가 물었다.
[기록 보전을 위한 필수 조치입니다.]
에반이 기록창을 살폈다. 기둥들은 장벽이라기보다 특정 구역을 무단으로 넘으면 신앙 포인트를 추심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신격이 많은 권능으로 억지 돌파하면 피해는 돌파자가 아니라 그 지역의 주민 장부에 부과될 수도 있었다.
“이것도 담보 장치야. 검으로 자르면 주민들 앞으로 빚이 넘어갈 수 있어.” 에반이 말했다.
카르도는 손을 놓았다. 무기가 필요하다고 믿던 시절이라면 이미 눈앞의 기둥을 부쉈을 것이다. 그러나 부서진 뒤 누가 비용을 낼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럼 군사는 쓰지 않는다.”
“군대를 아예 물리시게요?”
“아니. 사람들이 나가는 길을 확보한다.”
그는 병사들에게 방패를 등에 메고 출구마다 안내를 돕도록 명령했다. 금속 방패가 벽처럼 늘어선 광경은 여전히 위압적이었다. 주민 대표가 불편함을 말하자 카르도는 다시 명령을 바꿨다. 병사들은 방패를 바닥에 놓고 밝은 천을 들었다. 누군가 다치면 응급 인력을 부르기 위한 표식이었다.
미라는 검은 선이 모든 길을 막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과거 홍수 대피로로 쓰던 오래된 하부 통로는 법적 봉쇄 도면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다만 지붕이 무너진 구간이 있었다. 기술자 샤브는 그 통로를 안전하게 열기 위해 적어도 두 시간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두 시간이면 늦습니다.” 릴리가 말했다. “아이들은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요.”
“불안전한 길로 보내면 더 나쁩니다.” 미라가 답했다.
그들은 임시 대기 장소를 확보했다. 주민들이 문을 열어 준 빵집과 온실로 사람들이 옮겨 갔다. 뜨거운 물은 한 잔씩 나눠 마셨고, 어린아이와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우선 배정됐다. 아무도 누가 어떤 신을 믿는지 묻지 않았다.
재하는 온실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다 자신이 이상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쪽까지 신의 기원을 찾으러 왔는데, 현재 하는 일은 아이에게 손수건을 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손수건은 릴리의 것이었다.
“반납은 언제 하실 건가요?” 릴리가 물었다.
“신앙 포인트로 결제해도 됩니까?”
“세탁해서 돌려주세요.”
“강력한 계약이네요.”
피난 통로의 첫 번째 위험은 어둠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기록실 봉쇄를 들은 주민 일부는 북쪽으로, 급수소 폐쇄를 들은 주민 일부는 남쪽으로 몰렸다. 누군가는 조합에서 배포한 '남문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문을 들고 왔고, 다른 누군가는 군인이 동쪽을 지킨다고 들었다.
“어느 쪽이 맞는 말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미라는 지도를 펴고 실제 통행 가능한 길을 하나씩 표시했다. 그 결과 오래된 우편로 입구는 눈이 쌓여 사용 불가, 동쪽 회랑은 아이들이 통과할 만큼 넓지만 손수레가 지나갈 수 없었다. 남문은 출입 장벽이 내려와 있었다. 안전이 확인된 길은 하부 통로가 복구되기 전까지 서쪽 광장으로 통하는 회랑뿐이었다.
재하는 사람들에게 '서쪽으로 가세요'라고 외치려다가 멈췄다. 그곳에도 수용 인원 제한이 있었다. 무턱대고 모두 보내면 또 다른 위험이 생길 수 있었다. 그는 주민 관리위원회와 협의해 대피 안내 인력을 길목마다 배치했다. 출입 안내는 잘 보이는 글씨와 큰 방향 표시로 만들었다. 키가 작은 아이들도 볼 수 있도록 바닥 가까운 곳에 표식을 붙였다.
에반은 설명이 너무 길다며 불평했다.
“사람들이 화재 현장에서 긴 문장을 읽겠냐? 한눈에 보여야지.”
“그럼 광고 기술을 쓰세요.” 릴리가 말했다.
“이럴 때야말로 그 기술을 써야지.”
에반은 오래된 천 조각에 화살표를 크게 그리고, '서쪽 온실 / 한 번에 열 명'이라고 썼다. 거짓으로 확신을 주는 문구는 없었다. 대신 각 지점의 안내자가 실제 수용 인원을 확인하며 숫자를 바꿨다. 사람들을 목적지로 몰아넣는 게 아니라 길의 상태를 함께 알리는 광고였다.
한 노인은 안내판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글을 읽을 수 없었다. 릴리는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안내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노인은 지팡이로 땅을 세 번 두드리며 길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소리와 진동을 통해 방향을 확인했다고 한다. 카르도는 사람을 부축하려다 노인이 거절하자 거리를 지켰다. 대신 길의 위험한 턱을 먼저 치웠다.
“군에서 이런 방식도 배우는 겁니까?” 재하가 물었다.
“오늘 배웠다.” 카르도가 짧게 답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통과 여부를 군용 명령어로 외치지 말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병사 하나가 이름과 소속을 적으라고 하자 주민이 불편함을 표했다. 카르도는 안전 확인에 필요한 인원수만 집계하고 개인 신앙은 묻지 말라고 했다. 군의 평상시 통제가 이곳에서 그대로 적용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온실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화분을 옮겨 자리를 만들었지만 통로가 막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아이들이 바닥에 앉자 어떤 여성은 자기 외투를 건넸고, 어떤 사람은 따뜻한 차를 나눠 마셨다. 누가 무엇을 기부했는지 이름을 적으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인은 원치 않았다. 대신 어떤 물품이 부족한지만 공개했다.
재하는 잠깐 창밖을 봤다. 검은 기둥은 여전히 빛났고, 하늘에서는 누가 관리신이 될 것인지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래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첫 번째로 온실 문을 열었고, 누가 계단 앞의 얼음을 깨뜨렸는지였다. 그러한 일들이 장부에서 누락되더라도 실제로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벨른은 온실에 도착하자 주민들의 이름을 묻지 않고 차를 끓였다. 그는 원래 주점에서 가장 비싸게 팔던 차를 이제 무료로 나눠 주고 있었다. 재하가 그 사실을 지적하자 벨른은 얼굴을 찌푸렸다.
“공짜로 주는 게 아니라 내일 장사를 다시 할 수 있게 서로 돕는 거요.”
“장기 투자군요.”
“당신이 신이면 그런 것도 모르오?”
재하는 웃었다. 그는 실제로 모르는 게 많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할수록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그러는 사이, 기둥들은 조합이 정한 시한을 반복해서 방송했다. 두 시간 안에 통합 관리신이 지정되지 않으면 긴급 공급 보전은 종료된다. 관리신을 수락하면 광장 출입과 수도 공급을 즉시 정상화할 수 있다는 제안도 함께였다.
“사람을 가둬 놓고 구해 주겠다는 거군.” 나헬이 말했다.
재하는 수락창을 바라봤다. 그는 기적을 사용해 주민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수락의 법적 효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모른다. 일부 계약은 한 번 서명하면 수십 년 동안 사람들에게 대가를 청구했다.
“수락할 수 없어요.”
벨른이 다가왔다. 주점 주인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럼 우리가 여기서 얼어 죽어도 됩니까?”
재하는 말문이 막혔다. 벨른의 분노는 정당했다.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정치적 원칙 때문에 방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관리신을 수락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갈 길을 찾고 있어요.”
벨른은 못 미더운 눈으로 그를 봤다.
“말만 하지 마시오.”
“맞는 말씀입니다.”
카르도가 두 사람 사이로 걸어왔다. 그는 벨른에게 자신이 책임지고 이 구역의 대피와 물자 이동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하되, 군이 주민의 선택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분명히 했다. 벨른은 전쟁신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그래도 차가운 온실에 남아 있을 노인들을 옮길 인력은 필요했다. 그는 카르도에게 직접 사람 이름이 아닌 작업 구역을 맡겼다.
“동쪽 회랑, 노인 셋, 아이 둘. 그 사람들부터.”
“명심하겠다.”
한 시간 뒤, 하부 통로의 안전 지지대가 세워졌다. 샤브와 미라는 바닥 결빙을 제거하고 난간을 설치했다. 통로가 길지 않았기에 사람들을 나누어 보낼 수 있었다. 나헬은 출입 패를 확인하는 대신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세었다. 실종 여부 확인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임시로 보관했다.
그러나 검은 기둥이 새 통로를 감지했다.
[비인가 우회 이동]
[기록 보전 방해 행위]
[우회 경로 사용자에게 신앙 부담금 부과 예정]
재하의 무상의 약속이 반응했다. 주민들이 강제로 떠안게 될 비용을 자기 권능으로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디까지 유효한 강제 계약인지 판단할 기록이 없었다. 성급하게 사용하면 출입 의무 자체를 없애 검문소의 안전 관리까지 망가뜨릴 수 있었다.
“세리아, 지금 해제할 수 있는 조항이 있습니까?”
“주민의 사전 동의 없는 새 부담금입니다. 다만 일부에 실제 수리비가 포함됐을 수 있으니 구분해야 합니다.”
재하는 그 말을 듣고 금빛 실을 가늘게 뻗었다. 부담금 장부에서 미래의 신앙을 담보로 잡는 부분만 끊어 냈다. 배관 수리와 복구 비용은 별도로 남겨 두었다. 권능은 거대한 폭발 대신 마른 종이 한 장을 떼어 내는 소리와 함께 작동했다.
[무상의 약속: 비동의 신앙 담보 연결 해제]
[실제 시설 피해 비용: 별도 산정]
기둥이 잠시 흔들렸다. 통로를 통해 마지막으로 나온 사람은 벨른이었다. 그는 온실의 문을 닫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신앙을 바쳐야 하는 거요?”
재하는 고개를 저었다.
“물을 가져다준 사람과 길을 고친 사람에게 고맙다고만 해도 됩니다.”
벨른은 어색한 얼굴로 샤브에게 다가갔다.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더니 오늘 저녁 주점에서 따뜻한 국을 무료로 주겠다고 했다. 샤브는 국 대신 고장 난 배관 부품이 있으면 수리용으로 달라고 했다. 두 사람은 작은 말다툼 끝에 모두 받기로 했다.
마지막 대피 확인은 예상보다 어려웠다. 온실에 도착한 인원과 서쪽 회랑에 남은 인원을 합치면 한 사람이 모자랐다. 군인들은 곧바로 수색하려 했지만, 누군가 거주지 명단을 모두 펼쳐 놓자고 주장했다. 나헬은 필요한 범위에서만 확인하자고 했다.
수색 결과 모자란 한 사람은 아침부터 도시 외곽의 친척 집에 있었다. 대피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위험 구역 안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재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명단이 맞지 않을 때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괜한 수색을 크게 벌이지 않을 수 있었다.
카르도는 부하에게 말했다. “사람 수를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아무 집이나 뒤져서는 안 된다. 실제 위험에 맞는 방법을 먼저 찾아라.”
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터라면 군인에게 당연해 보였던 행동도 평화로운 도시에서는 다시 배워야 하는 일이었다. 재하는 그 변화를 보며 자신이 왜 카르도를 처음보다 믿게 됐는지 이해했다.
사람들의 대피가 끝난 뒤 카르도는 광장 한가운데 검을 내려놓았다. 검을 포기하는 의식이 아니라 더는 필요 없는 순간까지 검을 뽑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신성 창에 이상한 통계가 떴다.
[전쟁신 카르도: 교전 없이 대피 완료]
[승전 기록: 해당 없음]
카르도는 창을 한동안 바라봤다.
“기록되지 않아도 되는 승리도 있군.”
에반은 검을 내려놓은 카르도에게 물었다. “전쟁신에게 전투 없는 하루라니, 실적이 마이너스가 되진 않겠어?” 카르도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오늘 누가 살아 돌아왔는지 세었다. 그 숫자는 내 장부에 없었지만 내일도 세고 싶다.” 재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중앙 기록실에서 은빛 불빛이 번쩍였다.
[000000 원본 대조 절차 시작]
[참석 가능: 기록의 당사자 및 동의받은 대리인]
재하는 그 문구를 보고 웃지 못했다. 지금까지 찾은 모든 길이 마침내 한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그 원본의 당사자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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