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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76화
PAYLUA ORIGINAL · 제76화

76화. 악마가 만든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문구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17자

오프라인 책장
에반은 밤새 잠을 자지 않았다. 정확히는 잠이 필요 없는 악마였으니 보통 때라면 그다지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윤재하는 새벽에 그가 세 번이나 같은 계산표를 펴고 접는 모습을 보고 걱정했다. 악마가 피곤해 보이는 때는 정말 문제가 심각한 때였다. “지금이라도 변명하세요.” 재하가 말했다. “그건 도움이 안 될 거야.” “보통은 변명하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기던데.” 에반은 웃지 않았다. 그는 과거 천계 신앙 담보청의 초기 홍보국에서 일할 때 개발한 제안서를 꺼냈다. 제목부터 절망적이었다. [모든 기도를 하나의 서비스로: 누락 없는 신앙 수요 분석] “이름은 참 잘 지었네요.” 재하가 말했다. “잘 팔렸거든.” “그래서 문제가 더 크군요.” 에반은 인정했다. 당시 그는 사람들이 신에게 직접 기도하지 않아도, 도움을 바라는 말과 행동을 신앙의 잠재 수요로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을 구하는 요청, 누군가 무사하길 바라는 부탁, 밤길이 밝았으면 좋겠다는 걱정까지 모두 수요로 분석했다. 처음에는 신들이 공급 자원을 어디에 배치할지 판단하기 위한 도구였다. 문제가 생긴 것은 이 수치를 담보로 거래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예상 수요를 실제 동의로 바꾸는 조항은 내가 쓰지 않았어.” “그 부분을 입증할 수 있습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원본 수정 이력이 남아 있다면.” “그러면 수정 전 원본부터 찾아야겠네요.” 에반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만들지 않은 조항이 있다는 말로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설계한 모델이 그런 사용을 가능하게 했고, 나중에 잘못된 활용을 알아채고도 오랫동안 침묵했기 때문이다. 릴리는 조용히 물었다. “그럼 지금 우리 동생 노아가 병이 나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순간도 누군가의 자산으로 계산돼 있을까요?” 에반은 답을 찾지 못했다. “가능해.” 짧은 대답 뒤에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재하는 예전이라면 에반에게 불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오늘도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어디까지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모르는 채 소리만 질러서는 피해자에게 돌아갈 것이 없었다. “일단 현재 계산식을 멈출 수 있는지 찾아봅시다. 그리고 누가 무엇을 피해 봤는지 조사해야겠죠.” 에반은 재하를 바라봤다. “날 내보내지는 않을 거야?” “책임을 피하고 싶으면 내보내 달라고 먼저 부탁하겠죠. 지금은 일하세요.” 그날 오전, 나헬은 시내 공지판에 관리신 지정 반대 서명을 요청하는 글이 붙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반대하려다가 멈칫했다. 서명판에는 이름, 주소, 신앙 여부, 가족 구성까지 적도록 요구했다.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불안해했다. 특정 신의 지정을 반대하기 위해 그 신에게 자신과 가족의 내역을 통째로 제공하는 셈이었다. “반대 명단이 수집되면 그것도 수요로 쓸 수 있겠네요.” 릴리가 말했다. “정확해.” 에반이 답했다. “그게 모델의 가장 나쁜 부분이야. 거절한 사람마저 다시 설득할 대상으로 계산하는 거지.” 나헬은 대안 절차를 제시했다. 개인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도 주민회에서 무기명 의사를 확인해 집계할 수 있었다. 중복 방지에는 도시 거주 증명과 별도로 발급한 일회용 종이패를 썼다. 단, 방식이 공정한지 외부 검증이 필요했다. 세리아는 주민회와 합의해 종이패가 사람을 추적하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독립 보관하게 했다. 마티르는 회의장을 찾아와 비웃었다. “신앙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무기명으로 증명하겠습니까?” “그래서 아예 남의 마음을 찬성표로 계산하는 짓을 하지 말자는 겁니다.” 재하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신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까?” 재하는 잠시 생각했다. 신도가 0명이던 첫날,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믿어 주길 간절히 바랐다. 지금도 누군가가 자신을 믿는 것은 소중했다. 그러나 그 바람 때문에 누군가의 거절을 못 들은 척할 수는 없었다. “바랍니다. 그래서 실제로 믿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계산기로 만들어진 믿음은 받고 싶지 않아요.” 마티르는 한동안 재하를 살폈다. 곧 그는 에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만든 계산 방식 아닙니까? 지금 와서 부정하다니 우습군요.” 에반은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설계한 건 맞아. 지금도 사용되는 부분이 있다면 검증받을 책임이 있지. 하지만 내가 만든 물건이라고 네가 마음대로 사람 이름을 가져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배신입니까?” “수정 요청이야. 예전에 안 해서 늦어진 수정.” 오후가 되자 도시의 동쪽 회랑에서 작게 충돌이 일어났다. 조합 홍보원들이 물통을 나눠 주며 관리신 지지 표시를 받으려 했다. 몇몇 주민은 필요한 물을 받기 위해 표시를 했다. 나헬은 그 표시가 자유로운 동의로 성립하는지 별도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물통은 이미 나눠 준 뒤였으므로 되돌려 받게 해서는 안 됐다. 재하는 광장에서 물통을 들고 줄 선 사람들에게 말했다. “물을 받은 사실이 어떤 신을 믿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홍보원이 항의했다. “당신은 우리의 선의까지 부정합니까?” “물을 나눠 준 건 좋은 일입니다. 그걸 왜 몰래 찬성표로 바꿉니까?” 홍보원 중 한 사람이 얼굴을 붉혔다. 그는 계약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배부표 뒤에 작은 글씨로 붙어 있는 동의 조항을 확인한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홍보원의 노동도 똑같이 속임수에 이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에반은 그 홍보원을 따로 불렀다. 오늘 급수량과 사용한 동의서 양식을 구분해서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이름은 공개할 필요가 없었지만 어느 현장에서 어떤 종이가 사용되었는지는 중요했다. 홍보원은 망설인 끝에 견본 한 장을 건넸다. 견본의 맨 아래에는 에반 자신이 오래전 만든 문구가 있었다. '귀하의 작은 관심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활용됩니다.' 에반은 오래도록 그 문장을 바라봤다. “내가 이걸 쓸 땐 정말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어.” “지금은요?” 릴리가 물었다. “작은 관심이 뭔지, 누가 활용하는지, 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막는지를 써야 했어.” 에반은 과거의 제안서를 더 뒤졌다. 초창기 연구 자료에는 현재의 착취 구조와 다른 목적이 적혀 있었다. 많은 신이 자신을 믿는 사람에게만 답했기 때문에 신전 밖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통계에서 사라졌다. 이름 없는 노숙자, 종교가 다른 병사,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에반의 첫 제안은 그들을 실제로 찾아가 돕기 위한 수요 지도였다. “시작할 때부터 나쁜 의도였던 건 아니군요.” 재하가 말했다. “그래서 더 위험했어.” 에반이 답했다. “좋은 의도가 명분이 되면 나중에 바뀐 계약을 의심하기 어려우니까.” 그는 가장 오래된 회의록을 펼쳤다. 어떤 신은 신앙 여부를 모르는 사람을 도와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고, 다른 신은 모든 요청을 자신에게 집중하면 더 큰 기적을 계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회의실에서 한 서기관이 말했다. '요청을 들어 주는 것과 요청한 사람의 마음을 소유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나 그 발언은 최종 승인 문서에서 빠졌다. “누가 지웠습니까?” 릴리가 물었다. “기록에는 없습니다.” 에반이 답했다. “지웠다는 흔적은 남아 있는데 이유는 몰라.” 재하는 목이 메었다. 세계의 잘못된 제도가 한순간에 탄생한 건 아니었다. 작은 편의를 위해 누군가의 말을 줄이고, 다음 번에는 비용 절약을 위해 조건 하나를 생략하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원래 목적과 완전히 다른 장부가 생겼다. 릴리는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그 서기관이 그때 끝까지 반대했으면 달라졌을까요?” “모르겠어.” 에반이 말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왜 발언이 빠졌는지도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을 시작했다. 자신이 설계한 부분과 후대에 개조된 부분을 구분해 문서에 표시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도 빠뜨리지 않았다. 초기 모델에서 수집된 익명 요청이 충분히 익명화되지 않았다는 문제, 데이터를 장기간 보관하는 위험을 당시 과소평가했던 사실, 운영기관이 왜 수익화 방향을 택했는지 의심하면서도 고용 계약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사실까지 적었다. “그걸 전부 제출할 겁니까?” 재하가 물었다. “내가 잘못한 걸 줄여 쓰면 사람들은 결국 잘못된 범위를 기준으로 보상받게 돼. 그건 또 다른 거짓말이지.” 세리아는 그 문서를 받아 곧바로 공개하지 않았다. 증거로 사용하려면 기존 문서와의 일치 여부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록의 진위를 검증하고, 아직 피해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정보는 보호했다. 에반이 책임을 인정한다고 해서 모든 사실이 자동으로 사실로 확정되지는 않았다. 오후에는 재하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왔다. 도시 밖의 신전에서 연락이 왔다. 북쪽의 통합 관리신 지정이 성립하면 현재 재하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 통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였다. 누구를 믿는지 스스로 말한 사람뿐 아니라 오래된 계약으로 등록된 신도가 섞여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거 우리 신전부터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재하가 물었다. 누리가 답했다. [동의 없는 등록 가능성이 있는 구형 자료가 확인됨] [개인별 열람: 해당 당사자 동의 필요] 재하는 섣불리 명단을 열지 않았다. 대신 신전의 운영회의에 요청했다. 신앙 등록을 원치 않거나 장부 내용을 알고 싶은 사람이 각자 안전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 달라고. 다른 종교를 믿거나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도 자유롭게 문의할 수 있도록 안내하자고 했다. 릴리가 그 요청을 읽고 말했다. “사람들이 떠날까 봐 무섭지 않아요?” “무섭죠. 그런데 처음 신도 수가 0명이던 때보다 더 무서운 건 누군가가 떠나고 싶은데 못 떠나는 거예요.” 에반이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지 않았다. 자신이 마케팅으로 만들려 했던 것은 떠나지 않는 고객이었다. 윤재하는 떠날 수 있어야 믿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둘의 생각이 완전히 같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간격을 줄이기 위해 에반은 오늘도 자신의 서명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날 밤 에반은 주민회를 찾아가 자발적으로 증언했다. 조합이 보낸 법무 담당자는 그에게 과거의 책임을 인정하면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럴 수도 있겠죠.” 에반이 답했다. “그래도 증언하시겠습니까?” “네. 피해를 본 사람에게 내 이름을 알려 줄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피해를 나 혼자 책임질 수 있다고 허풍을 떨진 않겠습니다.” 에반이 자기 이름을 직접 적는 동안 재하는 기록실 바깥에서 기다렸다. 악마의 죄책감을 신의 기적으로 없애 줄 수는 없었다.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을 실제로 수행하도록 곁에서 돕는 일은 가능했다. 도시의 독립 감찰관이 에반에게 물었다. “과거 제안을 작성했을 때 이해충돌을 신고했습니까?” “아니요. 제가 운영할 광고 사업에 이익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별도 신고를 하지는 않았어요.” 에반이 답했다. 감찰관은 그 문장을 분리해 적었다. 후대 조작의 직접 행위자가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처음 모델을 설계한 사람의 이해관계 역시 조사해야 했다. 에반은 사인했다. 재하는 그 자리에서 대신 변명하지 않았다. 그가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도, 이후 사실을 다투는 데에도 자기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날 저녁 세리아는 원시 계산식의 수정 전후 기록을 확보했다. 원본 홍보 모델과 동의 추정 모델 사이에는 세 차례 개편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 개편 승인란에는 서명자가 없었다. 대신 복잡한 기호가 있었다. [승인 인장: 이름을 갖지 않는 원시 관리자] 나헬이 그것을 보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인장을 왜 조합이 갖고 있죠?” 재하가 물었다. “누구의 인장입니까?”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이 남긴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은 계약에 서명한 적이 없습니다.” 에반이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름을 빌려 승인했는지 찾아야 해.” 그 순간 도시 전체에 조합의 방송이 울렸다. [통합 관리신 지정에 관한 주민 의사 확인을 불법으로 간주합니다.] [도시 중앙 기록실 임시 봉쇄] 재하는 창밖을 보았다. 광장에는 작은 종이패를 들고 모인 사람들이 서 있었다. 표를 세기도 전에, 그들의 목소리를 막을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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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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