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하는 자신이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신성 창으로 들었다.
[북방 무명도시 관리신 지정 절차]
[제1후보: 윤재하]
[동의 신도: 0명]
[후보 등록 사유: 긴급 보전 대상]
“나는 출마한 적이 없는데.”
에반이 창을 쓱 훑어보더니 말했다.
“선거 공약이 아주 강력하네. 물 끊지 않기, 길에 불 켜기, 사람 살리기. 경쟁 후보가 좋아하지 않겠어.”
“공약을 낸 적이 없다고요.”
“그래서 공약 달성률이 백 퍼센트라니까.”
릴리는 웃지 않았다. 어젯밤 수도가 끊긴 구역에서 노인 두 명이 탈수 증세를 보였고, 임시 급수소에는 아직 긴 줄이 있었다. 실제 피해가 생기기 시작한 상황에서 후보 등록 문제만 웃어넘길 수는 없었다.
세리아는 지정 절차의 근거를 찾았다. 오래된 원시 도시 관리 규정에 따르면, 재난 때 관리를 신청할 수 있는 신격이 있으면 임시 관리자를 먼저 지정할 수 있었다. 다만 원문에는 분명한 조건이 붙어 있었다.
[관리 지정은 주민의 자유로운 동의로 성립한다.]
그 아래에 후대에 추가된 조항이 있었다.
[긴급 시 동의 공백은 공익 수요로 간주한다.]
“또 공백을 동의로 읽는군요.” 릴리가 말했다.
“침묵을 찬성표로 세는 구조입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하지만 현재의 법적 효력은 따져 봐야 합니다.”
나헬은 문지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도시 관리위원회를 소집했다. 참석자는 소수였다. 물 공급 작업을 하느라 올 수 없는 기술자도 있었고, 추위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주민도 있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의사를 모으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조합은 바로 그 시간을 무기로 삼았다.
검은 외투의 마티르가 영상 기록창을 통해 나타났다. 그는 원시 수신권 조합이 도시 설비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며, 이름 없는 운영 체제는 비상시 책임 소재를 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통합 관리신을 지정하면 즉시 신성 공급이 정상화됩니다.”
“대신 뭘 가져갑니까?” 에반이 물었다.
“정당한 유지 수수료와 관리 권한을 위탁받습니다.”
“시민의 미래 발화도요?”
마티르의 입꼬리가 굳었다.
“계약 조건은 조정 가능합니다.”
“조정 가능하다는 건 계약서에 들어 있다는 말이군요.”
재하는 감탄했다. 악마는 상대가 쓰지 않은 문장까지 광고처럼 읽어 내는 기술이 있었다. 그 기술이 이제 남의 거짓말을 들춰내는 데 쓰였다.
카르도는 회의 도중 무릎을 굽혀 지도를 펼쳤다. 군이 가진 긴급 화물 마차를 투입하면 남쪽 급수소에 필요한 부품 일부를 운송할 수 있었다. 다만 군의 보급 표준과 민간 설비 규격이 달라 변환 부속이 필요했다. 그는 마티르의 공급망에 무조건 의존하지 않을 방법을 제시했다.
“선거는 선거대로, 물은 물대로 해결해야 한다.”
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물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무 계약이나 서명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회의장 뒤편에서 주점 주인 벨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주점은 나흘째 손님을 받지 못했고, 지하 냉수관이 얼어 저장하던 식재료도 일부 상했다.
“우린 철학 토론하러 온 게 아니오. 물이 오늘 나오면 계약을 검토할 수도 있잖소. 도시가 이렇게 망가지는데 대안이 있기는 합니까?”
재하는 곧장 답하려다 멈췄다. 벨른이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생계가 무너지는 사람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제가 확실하게 약속할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계약 내용과 실제 공급 가능성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말만으로 수도가 고쳐지지 않잖아.”
“맞습니다.”
벨른은 분한 얼굴로 앉았다. 릴리는 그의 집에 필요한 물이 얼마인지 직접 물었고, 미라는 주점의 냉수관을 살펴 주기로 했다. 벨른은 신의 선의가 아니라 실제 기술자 방문을 요구했다.
오후에는 도시 외곽 창고에서 수리 부품을 확보했다. 에반이 오래된 거래 명부를 뒤져 우회 공급 업체를 찾았다. 그는 누구에게서 사 오는지 숨기지 않았다. 공급처 중 한 곳은 과거 자신과 함께 일하던 악마 상회였다. 가격은 합리적이었지만 이용할 경우 외부 데이터가 넘어갈 가능성이 있었다.
“그 상회는 신용이 있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돈을 제때 받으면 있어.”
“어째서 더 불안해지죠?”
세리아가 계약 조항을 대조한 결과 부품을 구매하는 것과 배송 수신인 목록을 제공하는 것은 별개로 처리할 수 있었다. 에반은 목록 제공 조건을 삭제해 다시 견적을 받았다. 가격은 조금 올랐다. 주민회는 추가 비용과 개인정보 보호 비용을 비교한 뒤 구매를 승인했다. 누구도 희생을 감추지 않았다.
회의장을 나온 벨른은 곧장 주점으로 돌아갔다. 재하는 약속대로 미라와 함께 그곳을 방문했다. 주점의 지하 저장고는 서리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냉수관은 얼었지만 한쪽 열 관로는 여전히 따뜻해, 서로 다른 온도로 팽창한 배관이 이음새에서 벌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주점 주인이 치우지 못한 술병과 마른 빵 상자가 쌓여 있었다.
“손님들이 여기서 밥을 먹고 쉬었는데, 이제는 자리가 다 비었소.” 벨른이 말했다.
미라는 먼저 고장 난 관을 촬영하고 벨른에게 사진 보관 범위를 확인했다. 벨른은 영업 비밀이 아니라 배관 문제이니 기술팀과 공유해도 된다고 했다. 다만 가족의 방이 찍힌 부분은 빼 달라고 부탁했다. 재하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그 요청을 들으며 자신이 얼마나 쉽게 남의 공간에 들어오려 했는지 깨달았다.
“수리하면 언제 다시 문 열 수 있습니까?”
“고장 난 관만 바꿔도 영업에 필요한 물이 충분하지는 않아요.” 미라가 답했다. “외부 급수 압력을 확인해야 합니다.”
벨른은 실망했다. 확실한 날짜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대신 미라는 단계별 복구 계획을 설명했다. 지하 저장고의 누수를 멈추고, 식품 보관 구역을 분리하고, 안전한 급수량이 확보되면 제한적으로 다시 영업할 수 있었다. 에반은 그런 임시 영업에 필요한 간판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간판은 됐소.” 벨른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고쳐 놓으면 손님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지.”
“그러니까 정확한 날짜가 정해지면 그때 만듭시다.”
벨른은 악마를 처음으로 조금 덜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날 오후, 주점에 단골손님 두 사람이 찾아왔다. 한 사람은 통합 관리신 지정을 찬성했고 다른 사람은 반대했다. 두 사람은 물 한 잔을 놓고 언성을 높였다. 찬성하는 사람은 지금 계약을 받아들이면 장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했고, 반대하는 사람은 미래의 기도를 팔아 현재의 물을 얻는 일이 두렵다고 했다.
재하는 어느 쪽도 비웃지 않았다. 둘 다 자기 삶에 꼭 필요한 것을 지키려고 하고 있었다. 벨른이 마침내 손뼉을 쳤다.
“내 주점에서 서로를 이단이라고 부르지 마시오. 지금은 보낼 손님도 없고, 남은 따뜻한 차도 둘이 나눠 마셔야 하니까.”
두 사람은 민망한 표정으로 잔을 나눴다. 재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중재자는 때때로 신이 아니라 가게 주인이었다.
저녁 무렵 나헬이 각 가게를 돌며 임시 설문 절차를 설명했다. 문서에는 관리신을 원한다, 원하지 않는다, 판단을 미루고 싶다, 어느 쪽도 모르겠다는 네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조합은 처음 두 선택지만 인정하겠다고 항의했지만 주민회는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대답도 의사 표현이라고 했다.
릴리는 그 서류를 보고 자신이 처음 재하에게 신도가 되겠다고 말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만약 그때 누군가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동생이 치료받지 못한다'고 했다면, 그것을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지금 재하에게 신앙을 유지하는 이유는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까지 존중받았기 때문이다.
“내일 제 신앙이 달라지면 어떡할 거예요?” 릴리가 물었다.
재하가 잠시 생각했다.
“우선 왜 달라졌는지 물어볼 것 같아요.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고.”
“섭섭하긴 하겠네요.”
“많이요.”
릴리는 웃었다. “그렇게 말해 주니까 오히려 더 믿음이 가네요.”
에반은 그 대화를 듣고 말했다.
“좋은 광고 문구다. '떠나셔도 서운해만 합니다.'”
“광고로 쓰지 마세요.”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그날 설문 초안은 어디에도 이름을 저장하지 않았다. 다만 무기명 투표만으로는 도시에 살지 않는 사람이 대량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문제가 남았다. 주민회는 여러 차례 검토 끝에 신분 확인과 투표 내용의 분리 보관을 선택했다. 절차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누구의 마음도 대신 세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지하 배관의 공사 현장에서는 새 부품이 도착했다. 작업자는 조합의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다며 설치를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샤브는 구매 계약서에 적힌 수령 기관과 작업 주체를 확인했다. 부품은 조합이 아니라 주민회가 직접 비용을 지불해 산 것이었다. 작업자가 걱정한 점은 상부의 허가 없이 설치하면 나중에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리아는 즉석에서 작업 승인 서류를 확인했다. 주민회가 관리하는 공공 설비라면 어떤 경우에 승인이 필요한지 조항이 나뉘어 있었다. 이번 작업은 긴급 안전 수리에 해당했고, 검사 완료 뒤에만 가동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작업자는 그제야 설치를 시작했다.
재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멋진 신탁도, 신성의 폭발도 없었다. 하지만 막혀 있던 일이 문서 한 장의 정확한 해석으로 움직였다.
“이게 기적 아닙니까?” 재하가 물었다.
샤브가 웃었다. “기적은 아니고 저희 일입니다.”
재하는 그 답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성과를 자신의 이름으로 받지 않아도 되는 신이라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해 질 무렵, 마티르는 주민들의 동의가 모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용해 예비 심사를 열었다. 조합 측은 위기 상황에서 주민들의 침묵이 사실상의 구원 요청이라고 주장했다. 세리아는 거절 의사를 표시한 이들이 있다는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주민별 신앙 여부를 적은 명단은 내놓지 않았다. 반대의 근거를 입증하기 위해 개인의 신앙을 강제 공개하는 것은 또 다른 침해가 될 수 있었다.
“개별 서명 없이 공익상의 불편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심리관이 물었다.
“수도 결빙과 배송 지연은 공개된 자료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사람들이 아프다는 사실과 특정 신을 원한다는 사실은 다르죠.”
그때 조합의 기록창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잠정 찬성 수요: 5,412]
재하의 눈이 커졌다. 분명 동의는 0건인데 찬성 수요가 오천 건이 넘었다. 에반은 계산 방식을 보는 순간 얼굴이 굳었다.
“이건 기도 수요 추정치야. 과거에 불을 켜 달라고 했던 말, 물을 달라고 했던 말, 길을 열어 달라고 했던 말이 전부 관리신 지지로 바뀐 거지.”
“그게 가능합니까?”
“내가 예전에 만든 광고 모델에서는 가능했어.”
재하가 그를 바라봤다. 에반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더는 남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마티르는 승리를 확신한 듯 웃었다.
“명시적인 반대 의사가 확인되기 전까지 공익 수요는 유효합니다. 그러니 신격 윤재하께서 수락하시면 됩니다.”
재하는 차가운 손가락으로 찬성 수요 숫자를 가리켰다.
“저 사람들이 정말 저를 원한다고 말했습니까?”
“규정상 그렇게 간주합니다.”
“그럼 저는 그 규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가 수락 버튼 대신 정보 공개 요청을 눌렀다. 사라진 도시의 수천 목소리가 어떤 식으로 계산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문서를 요구했다. 조합 측 심리관은 난처한 얼굴로 자료 제출 기한을 정했다.
회의가 끝난 뒤 재하는 잠깐 주민들이 앉았던 의자를 정리했다. 신청서를 내고 싶어 했지만 시간이 없어 돌아간 사람도 있었고, 원하지 않아 자리를 비운 사람도 있었다. 비어 있는 의자는 찬성의 증거도 반대의 증거도 아니었다. 그는 의자를 접으면서 그 단순한 사실을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그날 밤, 급수소에서 돌아온 미라가 보고했다. 군 마차로 들여온 부품 덕분에 남쪽 구역 일부는 물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완전한 복구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조합의 관리신 지정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살아갈 가능성이 생겼다.
그러나 동시에 누리가 새 경고를 띄웠다.
[잠정 찬성 수요에 관한 원시 계산식 발견]
[작성 기관: 천계 신앙 담보청 초기 홍보국]
[초기 설계 참여자: 에반]
에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내 책임이 끝나지 않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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