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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74화
PAYLUA ORIGINAL · 제74화

74화. 이름 대신 물 한 잔

신도가 한 명도 없는 신이 되었다 · 6,077자

오프라인 책장
도시의 첫 번째 신성등이 꺼진 뒤로,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대신 남은 등불을 셌다. “서쪽 회랑 열둘, 북쪽 양수장 다섯, 남쪽 보행로 아홉.” 관리소 직원이 수첩을 읽자 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하는 그 옆에서 유리병에 담긴 물을 만져 봤다. 표면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등불은 그냥 밤길을 비추는 장치가 아니었다. 지하 관로를 데우고 수로의 결빙을 막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모두 꺼지면 물이 먼저 끊길 터였다. “조합이 협박하는 게 아니라 실제 고장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두 문제가 겹쳤습니다.” 미라가 답했다. “노후 설비가 전력 경고에 반응해 자동으로 출력을 낮추고 있어요. 누가 조작했는지와 별개로 지금 당장 수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수리부터 합시다.” 재하가 소매를 걷자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신이 소매를 걷는 모습이 낯설어서가 아니었다. 소매 끝에 달린 금빛 장식이 기계 톱니에 걸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릴리가 말했다. 에반이 낡은 작업복을 내밀었다. 가슴에는 자그마한 글씨가 붙어 있었다. [임시 배관 보조 / 초보자] “왜 초보자까지 써 놨습니까?” “안 써 놓으면 사람들이 네가 배관을 고칠 줄 안다고 믿을 거잖아.” 재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작업장은 남쪽 광장의 지하에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열 배관이 뱀처럼 이어졌고, 기계실 바닥에는 전날 누수가 만든 얼음이 얇게 깔려 있었다. 동네 기술자들은 이름 대신 자신의 작업 표시를 남겼다. 어떤 사람은 작은 나사 모양, 어떤 사람은 별표, 어떤 사람은 왼쪽으로 기운 선을 그렸다. 이름을 숨기는 도시이지만 누가 무엇을 맡았는지 책임은 분명히 남기는 방식이었다. “이름 없이 어떻게 수리 내역을 추적합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작업 표시마다 담당자가 있습니다.” 기술자 샤브가 말했다. “본인이 공개 범위를 정하고, 감사가 필요하면 보관인이 열람하죠. 아무나 집 주소와 가족 정보까지 알 이유는 없으니까.” 재하는 설명을 듣고 감탄했다. 천계의 장부는 그와 반대로 모든 사람의 이름을 알고도 책임질 사람은 못 찾는 경우가 많았다. 오후가 되자 수도가 끊긴 구역에서 주민들이 몰려왔다. 식당의 국물은 반쯤 얼었고, 아이를 씻기려던 젊은 아버지는 빈 양동이를 들고 서 있었다. 재하는 마을 광장에서 가지고 온 물통을 직접 나눠 주기 시작했다. 신성 포인트가 사용되지 않는 평범한 행동이었다. 물통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재하의 허리는 생각보다 쉽게 아팠다. “신님은 물을 무한히 만들 수 없는 거예요?” 아이가 물었다. “오늘은 생수 공장에 취업하지 못했거든.” “신인데도요?” “자격증이 없어서.” 아이는 웃었지만 그 어머니는 웃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있었다. 하루치 물을 들고 계단을 오르기 힘들다고 했다. 릴리는 다른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두 사람이 계단을 함께 올랐다. 누군가에게 물을 나르는 것도 선택을 묻고 허락을 받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낯선 남자를 불편해한다며 여성이 함께 오게 해 달라고 했다. 지원조는 순서를 조정했다. 그 사이 카르도는 군 병참 장비를 가져와 대형 수통을 옮겼다. 그러나 전쟁신의 군마가 좁은 회랑에서 미끄러지자 주민들이 모두 소리쳤다. “군마는 밖에 세워요!” 카르도는 순간 얼굴을 붉혔다. 전쟁터에서는 군마가 길을 만들었지만 여기서는 누군가의 가게 창문을 부수기 직전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말을 넓은 광장에 세웠다. 병사들은 수통을 여러 개로 나눠 손수레에 실었다. “하루 사이에 전쟁신이 배달 신이 되셨네요.” 재하가 말했다. “내 이름을 함부로 바꾸지 마라.” “본인이 동의해야 하죠. 맞습니다.” 카르도는 웃으려다 실패했다. 기술자 샤브는 외부 신의 신성 공급이 없어도 작동할 수 있는 옛 수동 펌프를 발견했다. 그러나 축이 녹슬고 패킹이 삭아 있어 가동하려면 위험했다. 미라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부품을 분해하고 손상된 부분을 설명했다. 부품 일부는 시내에서 구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전날 끊긴 외부 공급로를 통해 들어와야 했다. “우리가 자재를 가져오겠습니다.” 에반이 말했다. “대가를 뭘로 받을 건데요?” 샤브가 물었다. “운송비와 실제 자재값이죠.” 샤브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에반이 악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에반은 손바닥을 들며 설명했다. “이젠 계약서 뒤쪽에 숨은 글씨가 없어요. 나도 그걸 배우는 중이야.” 샤브는 계약서를 세리아에게 먼저 보여 달라고 했다. 에반은 흔쾌히 건넸다. 그날 오후부터 두 사람은 작업장 구석에서 비용표를 놓고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비용이 적게 적혔다고도, 배송 지연 책임이 불분명하다고도 다퉜다. 재하는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이해가 안 되는 문서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명할 때보다 훨씬 나은 소리였다. 정오 무렵에는 급수 배분을 두고 갈등이 벌어졌다. 온실 주인은 식물을 살리기 위해 추가 물을 요구했고, 세탁업자는 위생 때문에 물을 쓰지 않으면 손님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빵집은 반죽을 만들 수 없어 오전 영업을 포기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급수소의 남은 물은 그 이유들을 모두 감당할 만큼 많지 않았다. 나헬은 사람들을 좁은 회의실에 모았다. 벨른은 물을 먼저 받는 가게가 다른 가게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한 노인은 사람에게 필요한 물과 가게 운영에 필요한 물을 분리해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도 쉽게 양보하지 않았다. 재하는 신이니까 결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저요? 저는 오늘 물통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요.” “신이면 공정하게 나눌 수 있잖소.” 벨른이 말했다. “공정하게 나누는 데 물통을 든 경험보다 사람들 상황을 아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는 미라와 릴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묻고, 주민들에게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제안했다. 먼저 마시는 물과 위생용 급수 최소량을 확보하고, 남은 물을 지역별로 나누어 업무용 사용량을 제한하는 방안이었다. 그러자 온실 주인이 손을 들었다. 식물이 죽으면 며칠 뒤 시장에 채소가 없어져 주민들이 더 곤란해진다는 주장이었다. 재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공정함이 며칠 뒤의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미라는 온실에서 재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을 확인했고, 샤브는 세탁업자에게 임시로 쓸 수 있는 폐수 정화장치가 있는지 점검했다. 두 사람은 실제 가능한 대안만 적었다. 아직 시험하지 않은 기계를 쓸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회의 끝에 한정된 물을 하루 단위로 재배분하기로 했다. 아픈 사람이나 어린아이를 돌보는 집은 별도로 요청할 수 있었고, 가게들은 장부에 공개된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적인 의료 사유는 공개하지 않되, 필요한 물의 총량은 감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겠죠?” 재하가 물었다. “이미 보고 있어요.” 나헬이 대답했다. “그래서 손해를 숨기지 않고 서로 조정할 방법을 남기려는 거죠.” 재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신이 한 번 기적을 일으켜 무한한 물을 쏟아내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현실에서는 누가 얼마만큼 어떤 이유로 물을 쓰는지 알아야 했다. 사람들의 삶은 신앙 포인트로 정리되지 않는 수많은 비용과 노력 위에 서 있었다. 오후에는 샤브가 낡은 펌프의 설계 원본을 가져왔다. 도면에는 오래전 누군가 손으로 적은 수정 사항이 있었다. 배관에 압력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물을 외부 수로로 빼내는 장치였다. 후대의 개조 과정에서 외부 수로가 봉쇄되면서 그 장치의 통로가 막혀 있었다. 기계가 단순히 낡아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안전 설계의 일부가 계약상 경계선에 잘렸다는 뜻이었다. “수로의 경계를 누가 바꿨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원시 수신권 조합이 토지를 통합 관리하면서 선을 새로 그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샤브가 말했다. “다만 실제 공사를 지시한 사람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리아는 수로 경계를 변경한 계약의 적법성을 확인하기로 했다. 당장 관로를 고치기 위한 기술적 대책과 사후 책임 판단은 별개였다. 미라는 설계 원본을 참고해 압력 방출 경로를 확보하는 임시 계획을 세웠다. 샤브는 그 계획이 구조적으로 가능한지 현장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재하는 도면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래된 계약의 잘못은 장부 속 숫자에만 남지 않았다. 잘못 그은 선 하나가 지금 사람들의 물을 막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신의 이름으로 그 선을 지우는 것만이 아니었다. 기술자들이 안전하게 새 길을 만들 수 있도록 실제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도 있었다. 문제는 해 질 무렵 터졌다. 남쪽 지하 펌프의 압력계가 갑자기 치솟았다. 관로 어딘가에서 얼음 마개가 빠지며 물이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샤브가 긴급 차단 밸브를 잠그려 했지만 손잡이가 녹슬어 움직이지 않았다. 두꺼운 관에서 쇳소리가 났고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전원 뒤로!” 미라가 외쳤다. 재하가 손을 뻗었다. 그의 '무상의 약속'은 강요된 계약의 부당한 귀속을 해제하는 힘이었다. 쇠붙이를 고치는 만능 기적은 아니었다. 손끝에 금빛이 잠시 맺히다가 사라졌다. [개입 대상 불일치] [권능 발동 불가] “하필 그럴 때 원칙적이네요!” 카르도가 큰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방패로 관로를 떠받치되 직접 틈을 막지 않았다. 미라의 지시대로 지지대를 고정하고 압력이 빠질 때까지 사람을 물렸다. 샤브는 예비 압력 방출 밸브를 열었고, 뜨거운 김이 기계실 천장으로 치솟았다. 한참 뒤 소음이 잦아들었다. 모두의 얼굴에 얼음가루와 먼지가 묻었다. 장치는 고장 났지만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다만 보급용 물통 하나가 터져 바닥에 물이 흘렀다. 누군가 탄식했고 재하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지금 그 물 한 통도 귀했다. “안전하게 멈췄다는 게 먼저입니다.” 미라가 말했다. 샤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펌프실을 폐쇄한 뒤 수동 공급조를 꾸리자고 제안했다. 지하의 마지막 물탱크에서 배급하려면 겨울철 위생 기준을 지켜야 했다. 릴리는 손을 씻는 물과 마시는 물을 분리해 두자고 했다. 에반은 작업조가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홍보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수리를 마친 뒤 샤브는 안전 점검서를 작성했다. 작업한 사람의 표식과 교체한 부품, 재가동할 수 없는 이유가 적혔다. 재하는 문서 맨 아래에 자신이 맡은 일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샤브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썼다. '양동이 운반, 지시받은 대로 수행. 설비 조작하지 않음.' “말이 너무 박한데요?” 재하가 항의했다. “정확한 게 좋잖아요.” 샤브가 말했다. 재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신이 되어 처음으로 자신의 업무 실적에 과장이 하나도 없는 평가를 받았다. 한쪽에서는 벨른이 동네 사람들에게 물통을 빌려 주고 있었다. 자기 가게도 물이 부족하지만 집에 환자가 있는 주민이 사용하고 나서 돌려주면 된다고 했다. 주점이 재개장하면 물통을 필요로 하는 손님들에게도 빌려줄 생각이었다. 벨른은 그런 일을 신앙으로 계산하지 말라고 미리 선을 그었다. “그냥 동네에서 오래 장사하려는 거요.”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돕는 모든 행동을 신앙으로 계산하면 그 사람의 친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오늘은 그 사실을 숫자보다 무거운 물통으로 배웠다. 그날 밤, 재하는 붉은 회랑에 앉아 아이에게 물 한 잔을 건넸다. 아이는 물을 마신 뒤 빈 컵을 보며 말했다. “정말 신님이 만든 물 아니네요.” “맞아. 너희 기술자들이 지킨 물이지.” 아이는 의외로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럼 내일도 물을 받을 수 있어요?” 재하는 대답하기 전에 관리소의 배급표를 확인했다. 예정 물량이 적혀 있었지만 운송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그는 그 사실까지 설명했다. 소년은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와서 다시 물어볼게요.” “그래. 내가 몰라도 다른 사람이 알려 줄 거야.” 멀리서 종이 울렸다. 누리가 차갑게 알렸다. [통합 관리신 지정 예비 심사 개시] [후보 신격: 윤재하] [도시 주민 동의 기록: 0건] 재하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또 제 이름을 마음대로 올렸어요?” 그날 밤 누군가 도시의 수도 문제를 이용해, 신에게 거절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새 관리신을 선임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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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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