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 관리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른 표정을 지었다.
나헬은 오래된 친구의 목소리를 들은 듯 눈을 감았고, 검사관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에반은 녹음 장치를 먼저 찾았다. 윤재하는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역사적 순간이라도 악마의 첫 반응은 저작권 확인이구나.
“이건 누구의 녹음입니까?”
“녹음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요.” 미라가 말하며 송수신기의 뒤판을 열었다. “코일은 움직였지만 전원은 연결돼 있지 않았습니다. 내부 축적 에너지일 수도 있죠.”
세리아가 관리실의 기록 담당자에게 물었다. 그는 이 장치를 한 달에 한 번 점검한다며, 소리가 난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개조했을 가능성도 확인해야 했다. 중요한 질문과 중요한 증거는 다르다. 재하는 이제 그 구분을 함부로 건너뛰지 않았다.
그러나 검사관들은 기다리지 않았다.
“이 장치는 조합의 회수 대상입니다.”
그들이 검은 금속 봉투를 꺼내자 누리가 경고했다.
[원시 기록물의 소유권 주장 감지]
[귀속 근거: 000000-A]
[원본 자료 대조 필요]
나헬은 우체통의 주인들이 구성한 관리위원회를 불렀다. 위원들은 법적 판단 전까지 송수신기를 봉인해 두는 데 동의했지만, 검은 봉투를 씌우는 데에는 반대했다. 봉투 안의 장치가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지우는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세리아와 주민 대표 한 명이 함께 봉인을 붙였다. 검사관에게는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외관과 봉인 번호를 제공했다.
“당신들은 신을 데리고 와서 조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검사관이 항의했다.
재하가 답했다.
“저는 의외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데요.”
“그게 더 수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에반은 웃다가 릴리의 눈총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도시의 남쪽에는 오래된 손 모양의 문장이 붙은 건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여섯 번째 계단'이라 불렀다. 겉으로 보면 다섯 층짜리 창고였는데 마지막 층에 올라가면 꼭 한 층을 더 오른 듯 숨이 찼다. 미라는 구조를 조사해 경사진 지붕 아래 숨겨진 반 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비한 건물이라기보다 설계가 특이했다.
“기적보다 건축 허가가 더 의심스럽군요.” 재하가 말했다.
“옛날엔 그런 허가가 없었대요.” 미라가 답했다.
“더 무섭네요.”
보관 책임자 라세는 손가락 하나가 없는 왼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실제로 다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고 했다. 건물 이름과 그의 손은 우연히 겹친 것뿐이었다. 재하는 괜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라세는 000000 원본을 보여 달라는 요청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여섯 손가락 문양이 찍힌 나무판을 복도 벽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신앙 계약의 소유권 표식이라 여긴 문양이었다.
“이 손에는 원래 손가락이 여섯 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나중에 그려 넣었나요?” 릴리가 물었다.
“아니요. 처음에는 다섯 개였고 그 옆에 손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이어 잡은 손이었죠.”
라세가 낡은 판을 빛에 비추자 선이 보였다. 손가락처럼 보였던 여섯 번째 선은 다른 사람의 작은 손끝이었다. 후대의 복제판에는 그 손목이 지워져, 마치 한 사람이 여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것처럼 변했다.
“사람 둘이 함께 남긴 표시가 한 신의 소유권 인장으로 바뀌었다는 뜻인가요?” 재하가 물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전체 계약을 입증할 수는 없겠죠.” 라세가 답했다. “원본이 왜 이렇게 수정됐는지 보여 주는 문서가 따로 있습니다.”
라세는 자신이 보관 권한을 갖지 않은 기록은 보여 주지 않겠다고 했다. 기록실의 열람 규칙은 냉정했다. 개인이 남긴 흔적은 유족과 지정 보관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공개할 수 없고, 공적 운영 기록만 일정 범위에서 열람할 수 있었다. 재하는 그 원칙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라세는 외부인에게 공개할 수 있는 설비 보수 장부를 내주었다.
[원시 수로 사고 조사]
[구조 신호: '들리면 대답해 줘']
[회신: '기다려. 내가 간다']
[후속 분류: 신격 발생 기록]
[정정 이력: 별도 보관]
“신격 발생이 왜 여기 적혔죠?” 카르도가 물었다.
라세는 수로의 구조 장치를 설명했다. 오래전 북쪽에는 마을마다 다른 말과 종을 사용했다. 누군가 물에 빠지거나 눈보라에 고립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먼저 대답했고, 이어 주변에 소식을 알렸다. 그 일을 반복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대답하는 존재'를 바라기 시작했다. 누구도 한밤중에 혼자 남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 소망이 신을 만든 겁니까?”
“기록에는 그때부터 빛의 응답이 나타났다고 돼 있습니다. 인과관계까지는 단정할 수 없어요.”
재하는 신이라는 직업이 누군가의 답장 업무에서 시작됐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에반은 이마를 치며 말했다.
“업무 범위를 제대로 정하지 않았군. 민원 대응을 영원히 보장하면 이렇게 된다니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까?” 릴리가 물었다.
“경험에서 나온 반성이야.”
그때 라세가 한 장의 도면을 펼쳤다. 도면의 왼편에는 원래 손을 이어 잡은 문양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후대의 여섯 손가락 문양이 있었다. 아래에 '수정 이유'가 적혀 있었다.
[공동 구조 책임: 증명 곤란]
[단일 신격 책임: 신성 담보 설정 용이]
[표식 단순화 승인: 원시 분류원 개편실]
“둘이 손을 잡았다는 걸 지우고, 신 혼자 전부 책임진 것처럼 바꿨군요.” 재하가 말했다.
“그렇게 읽힙니다. 하지만 누가 최종 승인했는지는 여기 없습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카르도는 도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의 이름은 신전 벽에 크게 새겼지만, 부상자를 들것에 실어 옮긴 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방식으로 누군가의 수고를 지워 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전공 기록을 고쳐야겠군.”
“먼저 원본부터 확인하십시오.” 세리아가 말했다.
“그렇지. 원본부터.”
라세가 준비한 다른 자료는 도시가 왜 이름표를 없앴는지 보여 주는 생활 장부였다. 옛 주민들은 한때 집마다 자신의 수호신을 적어 두었다. 어느 집에 불이 나면 어떤 신이 보호해야 하는지, 누군가 아프면 어느 신전의 신성 공급을 사용할지 구분하려는 목적이었다. 처음에는 행정 편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이름표가 없는 집은 보호 대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집 주소가 없으면 마차가 길을 찾기 힘들었겠죠.” 재하가 말했다.
“주소가 문제가 아니었어요.” 라세가 답했다. “누구에게 비용을 청구할지 먼저 정해야 구호가 출발하는 체계가 문제였죠.”
그는 두 장의 장부를 나란히 펼쳤다. 같은 겨울 같은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첫 번째 장부에는 수호신과 신앙 포인트가 적혀 있어 구호단이 빨리 출발했다. 두 번째 장부에는 그런 내역이 없어 결재가 미뤄졌다. 실제로 구조 요청이 도착한 시간은 두 번째가 더 빨랐다. 사고 피해를 기록한 부분은 보관인 승인 범위 안에서 익명 처리돼 있었다.
릴리는 장부를 읽고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그녀도 동생을 데리고 치료소를 찾아다닐 때 돈을 내기 전에는 문조차 열어 주지 않는 곳을 보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관리하는 데 편할 것 같아서 만든 구분이었겠죠.”
“맞아요.” 라세가 대답했다. “나중에는 그 구분을 없애기 어려워졌죠. 불리해질 사람이 생기니까요.”
그날 도시 사람들은 모든 표지판을 한꺼번에 없앤 게 아니었다. 출입 안내와 긴급 대피 표지는 남겼다. 대신 특정 신의 소유물이라는 표식을 떼어 냈다. 그러나 외지인이 '이름 없는 도시'라는 말을 듣고 간판도 주소도 없다고 오해하면서 지도에는 점점 더 빈칸이 늘어났다. 오늘 재하가 겪은 길찾기 문제의 일부는 도시의 선택 때문이었지만, 일부는 외부 기록자가 그 선택을 잘못 이해한 결과였다.
“당신네 도시에도 도로 이름이 있군요.” 에반이 말했다.
“물론이죠. 다만 공식 지도에 우리 도시를 통째로 지운 기관이 있을 뿐.”
세리아는 그 설명을 확인하기 위해 외부 도로국에 등록된 옛 지도를 요청했다. 실제로 한 시기부터 도시명이 삭제됐지만 개별 도로 번호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외부 신앙 관리 체계가 도시를 '미지정 수요지'로 분류하던 때와 일치했다. 그 분류가 의도적인 불이익이었는지, 서류 누락이었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했다.
재하는 지도를 책상 위에 놓고 말했다.
“혹시 여기 사람들은 도시 이름을 갖고 싶어 합니까?”
라세는 그를 보며 웃었다.
“어떤 사람은 원하고, 어떤 사람은 지금이 좋아요. 이름을 정한다면 우리가 정해야지, 신이 와서 붙여 줄 일이 아니죠.”
“알겠습니다. 이름 공모전은 취소.”
“공모전 준비했습니까?” 릴리가 물었다.
“아뇨. 지금 막 생각했어요.”
에반은 아쉬운 듯했다. 그는 이미 '무명도시를 위한 최고의 이름 열 가지'라는 전단지를 머릿속에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세는 방문객들이 도시 이름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는 동안 실제 겨울 난방 장치가 낡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기록실을 지키는 일과 주민의 생활을 지키는 일은 분리할 수 없었다. 미라는 기록실의 위치가 지하 열 관로 위에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봉쇄가 오래 이어지면 원본을 보존하기 위한 습도와 온도까지 흔들릴 수 있었다.
“서류를 지키겠다며 건물을 얼려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미라가 말했다.
카르도는 라세에게 자신이 보유한 야전 난방 장비의 수량을 알려 줬다. 라세는 군수 장비가 민간 기록실에 들어오는 것을 걱정했다. 군이 기록을 통제하는 구실로 쓰지 않을지, 난방 연료는 누가 책임질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카르도는 제안이 거절되더라도 강제로 장비를 넣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전쟁신이란 신분을 밝힌 뒤엔 늘 그런 질문을 받는군.”
“받으실 만한 일을 하셨으니까요.” 재하가 대답했다.
카르도는 잠깐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는 과거를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 어떤 장비를 어디까지 들일 것인지, 어떤 기록을 볼 권한이 없는지를 정하는 일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도시 관리위원회는 외부 난방 장비의 조건부 대여를 승인했다. 대신 연료 사용 내역과 대여 기간을 공개하고, 원본 열람 권한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문장을 넣었다.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일 기록실이 얼어붙지 않도록 할 작은 방법 하나가 생겼다.
방문이 끝나려 할 때 라세는 재하에게 작은 나무 조각을 보여 주었다. 조각에는 여섯 번째 손가락 자리에 아주 짧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이 손이 놓이면 다른 손이 잇는다.'
재하는 속으로 그 말을 되풀이했다. 신이 없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답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기록 000000은 신의 탄생 이야기가 아니라, 그 전부터 존재했던 사람들의 약속일지도 몰랐다.
한편 재하의 신격 안내창에는 뜻밖의 알림이 도착했다. 자신이 묻지도 않은 '도시 이름 후보 자동 추천'이었다. 천계 지도청이 빈칸을 메우기 위해 통계상 가장 인지도가 높은 신의 이름을 도시명으로 제안한다는 내용이었다. 후보의 첫 번째가 윤재하 시였다.
“내 이름을 붙이면 세금이라도 줄어듭니까?” 재하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에반은 종이를 훑었다. “안 줄어. 대신 이름이 있으면 광고 노출은 좋아지겠지.”
릴리가 머리를 저었다. “사람들이 아직 이름을 정하지도 않았는데요.”
재하는 추천을 거부했다. 거부 버튼을 누르자 시스템은 '도시 홍보 기회 상실'이라고 경고했다. 그 경고는 아무 신도 없는 시절이라면 상당히 무서웠을 것이다. 지금은 달랐다. 그는 도시의 주인이 아니었고 이곳의 이름을 붙일 권한도 없었다.
나헬은 그가 거절했다는 말을 듣고 짧게 고맙다고 했다. 그렇지만 도시의 어떤 주민은 이름이 없는 데 불편을 겪는다는 사실도 알려 줬다. 그러니 언젠가는 주민들이 충분히 논의해 새로운 이름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재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빈칸을 지킨다는 이유로 빈칸을 영원한 규칙으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도시 종탑이 예고 없이 울렸다.
[원시 수신권 조합 긴급 통보]
[북방 무명도시 통행 보전 기간 종료 예정]
[보전 종료까지 48시간]
[보호 설비를 유지하려면 통합 관리신 지정 필요]
창문 너머로 붉은 회랑의 신성등이 하나씩 깜박이기 시작했다. 재하는 이번에는 서류보다 먼저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름이 없다고 해서 추위를 덜 타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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