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으로 향하는 마차가 마지막 이정표를 지나자 글자가 사라졌다.
'북부로 20리'라고 적혀 있던 푯말은 '20리'만 남겼고, 그다음 푯말에서는 숫자마저 흐려졌다. 길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너무 많은 길이 생겼다. 눈 덮인 벌판을 가로지르는 수레바퀴 자국이 열두 갈래로 벌어졌는데 어느 쪽에도 목적지가 쓰여 있지 않았다.
윤재하는 길가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지도를 펼쳤다.
[북방 무명도시]
[현재 거리: 측정 불가]
[주소 제공자: 없음]
[통행 자격: 미확인]
“가까이 오면 거리가 줄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에반이 두꺼운 모피 옷깃을 세우며 말했다.
“그건 정상적인 지도 이야기야. 여기선 이름을 기준으로 거리를 계산했거든. 도시 이름을 없애 버렸으니 길찾기부터 망가졌지.”
“사람들이 선택해서 없앤 겁니까?”
“그게 문제야. 누가 지웠는지 아직 아무도 몰라.”
재하는 소금뜰에서 받은 보존 문서와 무진 분지의 우편 경로도를 다시 비교했다. 두 문서 모두 북쪽 끝에서 멈췄다. 원시 분류 기록 000000은 최초로 신에게 보낸 기도보다 오래된 것으로 보였지만 그 원본이 정말 여기 있는지도 불확실했다. 확실한 것은 원시 수신권 조합이 이 도시의 출입을 긴급 봉쇄하겠다고 신청했다는 사실뿐이었다.
카르도가 행렬 뒤쪽에서 걸어왔다. 오늘 그는 갑옷 대신 검은 외투를 입었다. 검은 외투 아래의 검은 갑옷까지 가린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은 상당히 민간인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정찰병을 먼저 보내겠다.”
“신님, 여기서는 일단 주민 허락을 받는 게 먼저입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정찰만 하는데도?”
“이곳이 군사 작전 지역이 아니니까요.”
카르도는 자신이 한 말을 잠깐 되짚었다.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병사들을 도로 밖으로 물렸다.
“좋다. 그러면 길을 묻겠다.”
“그게 정찰보다 어려울 겁니다.” 에반이 말했다.
실제로 길을 묻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 행인은 이름을 물어보자 입을 닫았고, 두 번째 행인은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더니 대답을 듣고 돌아섰다. 세 번째 행인은 나이 지긋한 짐꾼이었다. 그가 유일하게 한 말은 이것이었다.
“도시에 들어갈 사람은 누구의 이름으로 왔는지 먼저 내려놓으시오.”
“윤재하인데요.”
“그 이름은 당신 것인가, 당신을 위해 일하는 이들의 것인가?”
“당연히 제 것인데요.”
“그러면 당신만 데리고 들어갈 수 있소. 뒤의 사람까지 그 이름에 묶을 수는 없지.”
재하는 흠칫했다. 신도로 등록한 사람도, 같은 길을 걷는 사람도 그의 이름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짐꾼은 복잡한 원칙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는 낡은 나무패를 내밀었다.
[방문 신청: 임시]
[신청인: 본인의 말로 답할 것]
[대리 서명: 금지]
“사람마다 따로 적으면 되겠군요.”
“꼭 글자를 적을 필요는 없소.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손짓으로도 신청하지.”
릴리는 노아의 손을 잡고 물었다. 아이에게 이 길이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짐꾼은 날씨와 길 상태는 설명했지만 어느 신이 지켜 주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곳에선 그런 보증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릴리는 동생을 돌아봤다. 노아는 용감한 척했지만 새하얀 벌판의 끝을 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저는 마을에 남아 있을래요.” 아이가 말했다.
“잘 결정했어.” 릴리가 말하자 노아는 당황했다.
“말리려고 하지 않아요?”
“왜? 네가 무서운 이유가 있는데.”
노아는 잠깐 생각하더니 도로 관리소에서 편지들을 정리하는 일을 돕겠다고 했다. 릴리는 북쪽으로 함께 갈지, 그를 안전한 관리소에 맡길지 짐꾼과 보급 담당자에게 확인했다. 재하도 신이라며 결정을 대신하지 않았다. 결국 노아는 익숙한 하심의 우편국 연락망을 이용할 수 있는 중간 거점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들이 길을 찾는 동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카르도의 보급 마차가 길을 잘못 들어 작은 눈구덩이에 빠진 것이다. 마차를 끌던 말은 다치지 않았지만 바퀴 축이 부러져 짐이 한쪽으로 쏠렸다. 병사는 신성으로 바퀴를 들어 올리겠다고 했으나 미라가 먼저 상태를 확인했다. 축이 고정되지 않은 채 들어 올리면 목재가 튀어 나갈 수 있었다.
“급할수록 안전하게 해야 합니다.” 미라가 말했다.
“군용 마차는 이런 것쯤 견딘다.” 카르도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미라가 부러진 축을 보여 줬다. 손목만 한 나무가 가운데에서 깨끗하게 갈라져 있었다.
“마차가 견뎠으면 이게 둘로 나뉘었을까요?”
카르도는 마치 전장에서 처음 패배한 사람처럼 말이 없어졌다. 재하는 그 표정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거대한 전쟁신이 배관 기술자와 목수 앞에서 계속 배우는 중이었다.
짐꾼은 가까운 길 대신 돌아가는 길을 권했다. 눈길의 경사와 얼어붙은 강의 두께를 알고 있다는 이유였다. 카르도는 군용 지도를 내밀며 지름길이 더 빠르다고 주장했으나, 지도에는 최근 무너진 돌다리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 결국 일행은 짐꾼의 안내에 따르기로 했다.
“정찰병을 먼저 보낼 수도 있었잖아.” 에반이 중얼거렸다.
“정찰병은 다리가 무너져도 서류에 '경로 변경'이라고 적고 돌아오겠지.” 릴리가 대꾸했다.
부러진 마차를 수리하는 동안 그들은 근처의 작은 보급 초소를 방문했다. 초소에는 북쪽 주민들이 사용한다는 자가 기록판이 걸려 있었다. 기록판은 누구나 길 상태를 적을 수 있었지만, 내용의 책임을 누가 확인했는지도 함께 표시하도록 돼 있었다. 길 하나에 '통행 가능'이라는 표식이 다섯 개나 붙어 있어도 오늘 확인한 표시가 없으면 안전한 길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길 안내 하나에도 이렇게 절차가 필요합니까?” 재하가 물었다.
“겨울마다 사람이 죽었으니까요.” 초소지기가 대답했다. “누군가가 어제 건널 수 있었다고 오늘도 건널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재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까지 자신은 오래된 세계의 비밀을 찾겠다고 눈보라를 헤쳐 오면서 실제 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지 않았다. '북방 무명도시'라는 이름만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 믿었다.
초소지기는 이동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보급 수단도 소개했다. 도시와 마을 사이를 오가는 공동 썰매였다. 썰매를 관리하는 이들은 자신이 누구에게 빚을 지게 하는지보다 어느 시간에 어디에 도착할 수 있는지 알려 주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만 날씨가 나쁘면 취소되므로 출발할 때마다 다시 확인해야 했다.
릴리는 노아가 여기서 더 가기 싫다고 말한 이유를 이해했다. 모르는 길에 동생을 억지로 데려가 함께 고생시키는 일은 용기와 다를 수 있었다. 그녀는 중간 거점에서 연락할 수 있는 담당자 이름을 받아 적고, 노아가 사용 가능한 우편함과 연락 기호도 확인했다. 어떤 결정은 영웅적인 행진보다 조용한 귀환에서 더 큰 용기를 요구했다.
마차의 축을 새 것으로 바꾼 뒤 짐꾼은 보수 비용을 적은 종이를 건넸다. 카르도는 대뜸 군 인장을 찍으려다가 멈췄다. 보수비를 실제 비용으로 지불하겠다는 뜻인지, 군이 그 비용을 국가에 청구하겠다는 뜻인지 구분해야 했다. 군 인장 하나로 사적인 대가를 떠넘기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내 개인 비용으로 처리하겠다.” 그가 말했다.
에반이 감탄했다. “전쟁신이 개인 지갑을 여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전쟁신도 지갑이 있다.”
“많이 열어 보진 않으셨겠죠.”
카르도는 반박하려다 도로관리인들이 들고 있는 수리비 장부를 보고 조용히 돈을 냈다. 재하는 영원히 기억할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르도의 이름을 적어 기념하지는 않았다. 그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을 다시 출발할 무렵, 초소지기는 한 가지를 더 알려 주었다. 이름이 사라지는 지점부터는 하늘의 목소리가 개인의 기도를 추적하기 어렵다는 것. 누군가를 부르려면 상대가 들을 수 있는 거리에 가서 말해야 한다는 것. 신의 전령 대신 서로의 위치를 직접 확인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재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사람이 만든 관계가 시스템에 다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기가 책임져야 할 것이 숫자보다 넓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신이라는 이유로 알아서는 안 될 것까지 볼 수 없게 된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을지 몰랐다.
입장 문서가 작성되자 길은 한 줄로 모였다. 벌판 끝에서 도시가 나타났다. 낮고 뾰족한 지붕이 길게 이어지고, 바람을 피하려 만든 붉은 벽돌 회랑이 건물들을 연결했다. 탑은 있었지만 현판이 없었다. 광장에는 조각상도 있었다. 그런데 조각상의 얼굴은 의도적으로 깎아 냈는지 형태가 남아 있지 않았다.
“훼손됐군.” 카르도가 말했다.
“아니요.” 짐꾼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소.”
재하는 도시 정문 앞에 섰다. 문틀에는 오래된 글귀가 하나 남아 있었다.
'이곳에 온 사람의 이름은 본인이 돌려 달라고 할 때까지 맡지 않는다.'
재하는 가슴이 조금 뭉클해졌다. 그 순간 정문 양쪽에서 검은 종이 울리고 하얀 기록창이 나타났다.
[미등록 신격 접근]
[윤재하: 방문 거부 권고]
[동반 신격 카르도: 군사적 개입 가능성]
[동반 악마 에반: 기록 거래 전력]
“왜 제 직업만 이렇게 구체적이죠?” 에반이 항의했다.
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문지기처럼 보이는 한 여자가 나타났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회색 머리와 얼어붙은 장갑을 낀 그는 문서를 펼치지도 않은 채 재하에게 물었다.
“당신이 처음으로 만난 신도는 누구였습니까?”
“릴리요.”
“그 사람은 오늘도 당신 신도입니까?”
재하는 릴리를 돌아봤다. 릴리가 먼저 말했다.
“그건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렇습니다.”
여자의 얼굴에 아주 작은 미소가 스쳤다.
“좋습니다. 다음 질문. 내일도 그럴 겁니까?”
“모르죠.” 릴리가 말했다. “내일은 내일의 제가 정하니까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리는 듯했지만 곧 멈췄다. 여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찾는 000000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질문의 기록으로 추정합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그 기록의 주인을 알고 있습니까?”
“아직 모릅니다.”
“그럼 왜 당신이 열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재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북쪽까지 왔으니 볼 자격이 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것은 자격이 아니라 노력의 목록일 뿐이었다.
“여기서 기록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안 된다고 하시면 우선 이유를 듣겠습니다.”
여자가 말했다.
“저는 문지기 나헬입니다. 이 도시에 오는 신 가운데 그렇게 대답한 이는 오랜만이군요. 하지만 정문이 열린다고 기록실도 열리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출입패 여섯 개를 내놓았다. 재하는 하나씩 나눠 주려다가 멈췄다. 누가 원해서 들어오는지, 누가 관리소로 돌아갈지 다시 확인하는 편이 맞았다.
그때 에반이 주변을 둘러보며 손가락을 들었다.
“잠깐. 안내판이 정말 하나도 없습니까? 상점도? 우편국도? 어디 가서 숙소부터 잡아야 하는데요.”
“여기선 묻고 대답하는 편이 더 빠릅니다.” 나헬이 말했다.
“그건 마케팅 업계 전체에 대한 도전인데.”
재하가 웃음을 참았다. 그는 드디어 숙소 위치를 물었고, 나헬은 광장 아래쪽의 붉은 지붕집을 가리켰다. 물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러나 문턱을 넘는 순간 재하의 시야가 흔들렸다. 신앙 포인트 창에서 자신의 이름이 통째로 지워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신격 통계 열람 제한]
[도시 내 타인의 발화 자동 수집 기능: 중지]
[지역 법칙: 이름은 동의 없이 기록되지 않음]
“제 능력이 꺼진 겁니까?”
“능력 하나가 멈춘 거겠죠.” 나헬이 대답했다. “남의 말을 자동으로 듣는 일이 정말 당신의 권능이라고 믿었습니까?”
재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시 안쪽에서는 장작 패는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이 들렸다. 신의 창에는 보이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시험받는 것은 신의 힘이 아니었다. 신이 자기에게 허락되지 않은 말을 듣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날 밤, 숙소 문 아래로 오래된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기록 000000의 열람 요청은 받지 않습니다.]
[대신 마지막 질문에 답할 사람을 구합니다.]
[기한: 첫눈이 완전히 녹기 전]
재하는 종이를 들고 창밖을 보았다. 북쪽의 첫눈은 아직 한 번도 녹은 적이 없었다.
제71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