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섬에 네 번째 불빛이 켜진 날, 소금뜰 마을의 아이들은 그걸 새 놀이로 만들었다.
그는 그 문장을 보는 사람의 표정을 오래 살폈다.
“네 번 깜박이면 밥 먹으러 와!”
노아도 따라 웃었다. 릴리는 동생이 쉬어야 할 시간을 확인하느라 먼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이가 두 발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잠시 더 지켜봤다. 윤재하는 그 옆에서 네 번째 신호의 뜻을 고민했다.
“기록에는 세 번까지만 있었는데요.”
“사람이 새 신호를 만들었을 수 있잖아요.” 릴리가 말했다.
“그럼 누가, 왜?”
“그걸 이제 찾아야죠.”
재하는 웃었다. 릴리는 예전에는 그가 기적 하나만 일으켜도 모든 일이 해결될 것처럼 바라봤었다. 지금은 그의 질문에 다시 질문으로 답할 줄 알았다. 그런 변화를 누구보다 소중하게 느끼는 사람은 재하였다.
하지만 웃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원시 분류원의 옛 회선이 마을 공지판에 이상한 통지를 붙였다.
[첫 회신 채권 보상 신청 안내]
[증빙: 최초 발화와 유사한 기도 기록]
[신청 혜택: 우선 치료 배정 또는 수로 보호]
사람들이 공지판 앞에 모여들었다. 글을 모르는 노인은 옆 사람에게 대신 읽어 달라고 했다. 몇 사람은 치료와 수로 보호라는 말을 보고 곧장 신청서를 받아 갔다.
“이거 어디에서 보낸 겁니까?” 재하가 물었다.
아라가 문서를 뒤집어 살폈다. 발신 기관은 생소한 ‘원시 수신권 조합’이었다. 무진 분지에서 만났던 외부 보관조합과 문양이 비슷했지만 같은 조직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서류 하단에는 가장 중요한 한 줄이 작게 적혀 있었다.
[유사 기도 제공자는 장래 발화 기록의 사용 동의자로 간주됩니다.]
“또 이런 식이군요.” 아라가 말했다.
재하는 서류를 뒤집었다. 치료 혜택 신청 하나로 앞으로 무슨 말을 하든 기록으로 모을 수 있게 만든 조항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신청하는 순간 그들을 기존 신앙 계약에서 이탈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그는 통지서를 찢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미 자기 손으로 신청서를 받았다.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주는 것이 먼저였다.
그날 마을회관에서 열린 설명회는 예상보다 시끄러웠다. 치료소에 약이 부족한 사람이 있었고, 수로가 무너지면 밭이 망가지는 주민도 있었다. 그들에게 미래 발화 동의 조항은 멀게 느껴지고, 눈앞의 혜택은 급했다.
“당장 아이가 아픈데 그깟 문장 하나가 무슨 대수입니까?” 젊은 아버지가 물었다.
재하는 대답을 망설였다. 옛날 릴리 역시 동생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계약이 왜 부당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 문장 하나가 앞으로 아이의 말까지 계약서에 넣을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치료가 필요한 건 다른 문제죠. 저희가 확보한 공급 일정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릴리는 치료소 기록을 가져왔다. 당장 응급처치가 필요한 사람은 공동 의료계획에 따라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수로 문제는 마을 작업조와 미라가 점검하기로 했다. 모든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검증되지 않은 계약의 대가로 의료를 파는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때 어느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는 신청서에 서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험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치료 혜택이 더 필요할 수 있어요.”
재하는 그를 설득하려다 멈췄다. 선택권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자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선택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었다. 세리아는 해당 계약의 적법성과 고지 방식이 문제 되는 것과 개인의 의사 표현을 듣는 것은 별개라고 설명했다. 남자는 충분히 설명받을 권리와 상담을 요청할 권리를 얻었다. 그러나 아직 서명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마을회관 밖에서 에반이 어두운 표정으로 기다렸다. 그는 계약서의 작은 글씨를 읽더니 혀를 찼다.
“이건 내가 예전에 쓰던 방식과 닮았어.”
“복제품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구조가 같아. 무료 혜택을 먼저 주고 나중에 수익 범위를 넓혀 놓는 것. 다만 내 시절에는 이렇게 노골적이지 않았는데.”
“자랑입니까?”
“반성하는 거야.”
에반은 조합의 홍보 경로를 추적했다. 마을 공지판뿐 아니라 주변의 세 마을에도 같은 통지가 붙어 있었다. 조합은 첫 번째 기도 기록의 공개를 막으면서 그와 비슷한 말을 계약 자산으로 모으려 하고 있었다. 진실이 알려지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을 묶으려는 움직임처럼 보였다.
“확실합니까?” 세리아가 물었다.
“의도를 단정할 증거는 없지. 다만 배포 시점과 계약 조항은 확인됐어.”
그는 자료를 정리해 감찰 기록에 첨부했다. 과거의 에반이었다면 상대보다 먼저 멋진 광고를 만들어 대항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민들이 내용을 쉽게 비교할 수 있는 표를 만들었다. 혜택, 실제 공급 가능 여부, 미래 기록 수집 범위, 철회 조항, 담당자 연락처. 정작 조합에는 마지막 두 항목이 없었다.
“광고는 원래 사람 눈을 홀려야 하는데.” 에반이 중얼거렸다.
“표가 훨씬 도움이 되네요.” 릴리가 말했다.
“나도 이제 알 것 같아.”
수신권 조합의 홍보물은 종이로만 전달되지 않았다. 에반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지판 오른쪽의 작은 금속판이 밤마다 문구를 바꾸고 있었다. 낮에는 '치료와 수로 보호'만 크게 보이다가 해가 지면 아래쪽에 '미래 발화 동의' 문장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주민들에게는 같은 서류라고 설명했지만, 읽는 시간에 따라 보이는 내용이 달랐다.
“그럼 누가 내용을 읽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네요.” 세리아가 말했다.
“맞아. 서명할 때의 문구는 어떤 버전인지 모를 가능성이 있어.” 에반이 답했다.
재하는 분노를 억눌렀다. 상대가 교묘하다고 해서 곧장 모든 신청서를 무효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무엇을 보고 서명했는지 사람마다 달랐을 것이다. 그는 주민회에 설명할 자료를 요청하고, 이미 신청한 사람도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돕기로 했다.
이다는 작은 책상을 공지판 옆에 마련했다. 글을 모르는 주민도 있었다. 토렌은 종이에 적힌 모든 문장을 크게 읽어 주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릴리는 급하게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신청서 검토 때문에 병원을 늦게 찾지 않게 안내했다. 부당한 계약을 의심하는 일과 환자의 시간을 지키는 일은 나뉘어야 했다.
어느 노인은 자기는 조합을 믿지 않지만 신청서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게는 수로를 가꿀 힘이 없었고, 조합이 내건 보조금이 필요했다. 재하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숫자로 보면 신청자 한 명이지만 실제로는 겨울이 오기 전 지붕을 고쳐야 하는 사람이었다.
“신전에서 전부 도와줄 수 있습니까?” 노인이 물었다.
“전부라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재하가 답했다. “대신 어떤 부분을 함께 도울 수 있는지는 확인하겠습니다.”
미라는 노인의 집에 가서 지붕을 살폈다. 지붕 전체를 새로 얹을 필요는 없었고, 물이 새는 부분을 보강하면 한동안 버틸 수 있었다. 마을 작업조는 이틀 뒤에 인력을 보내기로 했다. 노인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영원한 보호 계약이 아니라 빗물이 들어오지 않는 집이라는 사실에 웃었다.
에반은 기록의 판매 방식을 조사하다 또 다른 이상을 발견했다. 조합의 신청 페이지에는 신청하지 않은 사람의 명단을 별도로 만드는 기능이 있었다. 서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단순한 목록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 담보청의 방식과 비슷하게, 거절한 사람도 잠재 고객 자산으로 등록할 가능성이 있었다.
“왜 거절한 사람까지 세죠?” 릴리가 물었다.
“마케팅에서는 거절한 사람도 다시 설득할 대상이거든. 나도 예전에 그렇게 했어.”
“그게 지금도 괜찮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에반이 짧게 답했다. “그 사람들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뜻으로 거절했을 수도 있잖아.”
세리아는 조사 범위를 좁혔다. 실제로 기록을 수집했는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범죄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대신 신청서에 어떤 데이터가 남고 삭제나 열람 요청을 어디에 할 수 있는지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조합의 담당자는 규정상 답변 기한까지 검토하겠다고만 했다.
그날 저녁, 자신이 신청서를 썼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은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는 개인 사정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서류를 확인받고 싶다고 했다. 재하는 자리를 비웠다. 주민회가 지정한 상담 담당자가 내용을 확인했고, 결과는 개인에게만 전달됐다. 누구도 그녀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신전 장부에 적지 않았다.
재하는 창문 너머로 그 여자가 돌아가는 모습만 봤다.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절차가 생겼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세상이 커다란 진실을 찾아 움직이는 동안, 조용히 자기 이름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 밤 카르도가 직접 경계 순찰에 나섰다. 조합 측 사람이 마을로 들어올 수는 있지만, 무단으로 옛 회선을 건드리는 것은 막아야 했다. 병사들은 출입을 기록하고 주민의 왕래를 방해하지 않는 규칙을 지켰다. 소금뜰 사람들은 전쟁신의 군인이 자기 밭을 지켜 주는 광경이 영 어색했다.
“예전 같으면 전쟁이 시작된 줄 알았겠죠.” 이다가 말했다.
카르도가 대답했다. “지금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이다는 그날 상담 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지만, 동의 없이 목록을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상담 창구에서 어떤 질문이 반복되었는지 비식별 형태로 적었다. 가장 많았던 질문은 ‘지금 신청하지 않으면 다시는 치료받을 수 없나요?’였다. 릴리는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급한 사람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선택한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민회는 신청 기한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확인되지 않은 마감 압박은 안내문에 쓰지 않기로 했다.
저녁 늦게 신청서를 쥐고 돌아오던 노인이 다시 이다를 찾아왔다. 그는 지붕을 보수해 주겠다는 마을 작업조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신권 조합이 실제로 제공할 수 있는 다른 혜택이 있다면 그것도 비교해 보겠다고 했다. 이다는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누군가를 도운 대가로 반드시 신전을 믿어야 한다는 식으로 행동했다면 조합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에반은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한마디 했다. “광고에서 가장 어려운 문장은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군.” 재하가 웃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문장을 빼먹지 마세요.” 에반은 고개를 끄덕이고 새 안내문 마지막 줄에 크게 적었다.
바위섬의 불빛은 밤새 네 번씩 깜박였다. 누리는 신호의 간격을 바위섬에서 발견된 종의 기호와 비교했다. 네 번째는 기록에 없지만 앞의 세 신호를 규칙적으로 반복한 뒤 일정 시간 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암호 아닙니까?” 재하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사용된 암호표를 알 수 없습니다.”
토렌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던 노래를 다시 떠올렸다. '들리면 대답해 줘. 여기 있다. 건너오지 마. 내가 갈게.' 네 구절이었다.
“네 번째는 '내가 갈게'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누가 이쪽으로 옵니까?”
“그걸 확인해야죠.”
그들이 바위섬을 바라보는 동안 기초실의 오래된 수로 장치가 움직였다. 수문 하나가 천천히 열리자 소금밭 위로 물길이 드러났다. 낮에는 없던 얕은 길이 만들어졌다. 미라는 곧장 사람들을 물렸다. 갑자기 생긴 물길은 안전할 리 없었다.
그때 섬에서 움직이는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남자처럼 보이는 형체였다. 그는 불빛을 들고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흰 소금밭에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유령입니까?” 재하가 물었다.
누리가 답했다. “물리적 실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형체는 강 중앙에서 멈췄다. 그리고 마을을 향해 손을 들었다. 손가락은 다섯 개였다. 여섯 개도, 신의 황금 표식도 없었다.
“들리면 대답해 줘.”
형체가 말했다.
토렌은 무심코 노래의 다음 구절을 따라 했다.
“여기 있다.”
그 순간 소금밭 위로 밝은 선 하나가 뻗었다. 오래전에 배달되지 못했던 편지가 돌아갈 길을 기억해 낸 듯한 빛이었다.
하지만 그 빛의 끝에서 검은 인장이 나타났다.
[원시 수신권 조합: 최초 회신 전달 절차에 대한 긴급 집행 신청]
형체가 손을 내렸고, 바람 속에서 누군가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늦으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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